글이 되기까지, 말보다 느린 공정에 대하여.
물에서 건져 올린 흰 덩어리는 처음엔 아무 말이 없다.
온기가 남아 있지만 스스로 식어가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그것.
두부는 태어날 때부터 고요하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고, 비우는 과정을 거쳐야만 그것은 모양을 가진다.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건 본질적으로 어떤 ‘비움’에 가깝다.
윙윙거리는 기계음, 뜨거운 증기, 소리 없는 기다림이 겹쳐져야만
허물어지지 않는 직사각형이 완성된다.
마치 글 한 편이 완성되기 전의 시간을 닮았다.
글을 쓰는 일은 두부를 만드는 일과 흡사하다.
처음엔 형체도 없는 생각의 콩들이 무수히 떠다닌다.
그것들은 잡히지 않는다. 너무 딱딱해서 씹히지 않고, 너무 작아서
문장 안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불린다.
오래도록 마음속의 물에 담가둔다.
누군가의 말, 가만히 켜놓은 음악, 버스 창밖의 그림자들, 그런 것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부푼다.
어느 순간, 삶는다.
삶는다는 건 다듬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온전히 데워지는 일이다.
속까지 열이 닿도록, 중심이 미세하게 흔들릴 만큼.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서서히 떠오르고,
망설이던 기억이 조용히 표면을 두드린다.
말이 되지 않던 것들이 언어의 기체 속에서 조금씩 형태를 얻는다.
아직 문장은 아니지만, 문장에 가까워진다.
뜨거운 증기 사이로 과거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손에 쥐고 있었던 감정이 그제야 미온으로 변한다.
삶는 동안에는 손댈 수 없다.
덜 삶기면 덜 익은 문장이 되고,
과하게 끓이면 본래의 감촉을 잃는다.
적당한 불, 적당한 시간.
그 균형을 찾아야만 마음속 조각들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글은 바로 써지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숨어 있던 고통과 기쁨, 분노와 그리움이
모두 같은 온도로 데워져야 한다.
그제야 하나의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중요한 건 간수다.
간수는 말로 하자면 ‘문장의 의도’ 같은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은 끝까지 남기고 무엇은 버릴지.
그 결정을 하지 않으면 글은 그냥 콩물처럼 흩어진다.
간수는 마법처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이 응고될 수 있게 돕는다.
흐르던 물이 갑자기 그 자리를 잡는다.
생각은 더 이상 떠다니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더 이상 허공을 떠돌지 않는다.
생각이, 감정이, 기억이 명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것은 그저 조용히,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변화를 느껴야 한다.
너무 많으면 강박이 되고, 너무 적으면 혼란만 남는다.
간수는 적당해야 한다.
의도가 너무 드러나면 글은 부담스럽고,
의도가 너무 없으면 글은 어딘지 흐릿하다.
이 적당함, 이 순간의 온도에서 문장이 진짜 모습을 찾는다.
간수는 소량이어야 한다.
너무 많은 간수는 응고된 덩어리만 남긴다.
너무 적은 간수는 흐릿한 물이 될 뿐이다.
그 미세한 비율을 맞추는 일이 바로 문장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간수는 언제나 최소한으로, 가장 섬세하게, 그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제 글은 틀에 들어간다.
마치 두부처럼, 그 형체를 잡고,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
그것이 글을 정리하는 마지막 과정이다.
틀에 넣고, 그 안에서 조금 더 시간을 준다.
글은 아직 부드럽고, 조금은 미지근하다.
그럴 때가 있다.
우리가 쓴 글을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는 오직 기다림만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스스로 자리를 잡게끔 해야 한다.
식혀두면, 처음엔 흐물거리던 글이 조금씩 그 형태를 잡고,
단단한 틀을 만들어낸다.
글이 식고 나면, 그때는 다르게 읽힌다.
막 쓴 글은 여전히 뜨겁고, 감정이 껴있는 자국이 남아 있지만,
식어야만 그 감정이 부드럽게 정리된다.
비로소 문장이 제 자리를 찾는다.
서둘러서 다 쓴 글은 온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거나 해서,
완벽히 마르지 않는다.
그때의 글은 마치 익지 않은 두부처럼,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흐릿하게 흩어져 버린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조급해할 수 없다.
부서진 두부처럼, 급히 써 내려간 글은 쉽게 무너진다.
속이 단단하고 겉은 부드러워야 한다.
말이 너무 많으면 중심이 무너지고, 말이 너무 적으면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적당히 부풀고, 적당히 단단하며, 적당히 뜨거워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두부처럼 글을 만드는 일이 된다.
어떤 글은 순두부처럼 부드럽게 읽히고, 어떤 글은 단단한 부침 두부처럼 묵직하다.
어떤 글은 끓이면 진하고, 어떤 글은 그대로 떠먹어야 진심이 느껴진다.
모두 다르고, 모두 시간이 걸린다.
두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두부를 만드는 일은 그 시간을 인정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쓰는 동안은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끝났다고 생각해도, 그 속에서는 여전히 변화를 계속 겪고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진짜 두부를 만들 수 있다.
부드럽고 단단한 글을 얻을 수 있다.
두부는 먹기 위해 만든다.
글은 읽히기 위해 쓴다.
그러나 먹는 사람도, 읽는 사람은 그 과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얀 덩어리 앞에 앉아, 누군가는 그 깊이를 느끼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뿐이다.
그 차이는 과정이 아니라 온도에 있다.
온도를 아는 사람은 두부를 다르게 대한다.
무심하게 써 내려간 문장 속에,
불린 밤들과 끓는 낮들과 고요한 기다림이 스며 있다.
그것을 알아보는 독자는 많지 않지만,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글은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두부 한 모처럼, 작고 조용하게 남는다.
그것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