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향해 걷는 문장

문장이라는 야생을 뒤쫓는 사냥기록.

by 적적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문장을 사냥하는 일. 그것은 언제나 실패를 예감하며 시작된다. 책상 위 불을 꺼야만 문장들이 걸어 나오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폐 깊은 곳까지 침묵을 들여야 한다. 마음속에서 가장 바깥으로 도망친 감각들을 다시 붙잡아 들여오는 일. 사냥감은 인기척에 민감하다.


조금만 숨이 가빠져도,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든 고개를 돌려도, 그것들은 사라진다. 덤불 뒤로, 안갯속으로, 기척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면 남는 건 침묵이거나, 형체 없는 단어 하나. 흐릿한 잔상처럼, 껍질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 문장들.



늑대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길들여지지 않고, 울타리를 거부한다. 낯선 장소에 익숙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문장도. 쓰려는 순간 손에서 빠져나가고, 구조로 가두려는 순간 몸부림치며 도망친다. 익숙한 리듬을 따르려 하면 오히려 반항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그 문장을 정확히 재현하려 하면 형체를 버리고 흩어진다. 사냥은 늘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그 실패의 끝에서, 간혹 한 줄, 단 한 줄이 남는다. 그것이 다음 날의 사냥을 예고한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그러나 그 헛됨이야말로 문장을 다시 부르는 주문이다.


어떤 날은 늑대가 먼저 다가온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책상 앞에 앉은 것도 아니고, 메모장을 연 것도 아닌데,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등 아래로 문장의 체온이 느껴진다. 어쩌면 꿈에서 흘러나온 말들이, 아직 덜 마른 채로 귀에 맴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땐 손이 먼저 움직인다. 아직 무슨 말을 쓸지 모르면서도. 문장이 나를 통해 흘러나온다는 기분. 마치 그것들이 나를 도구 삼아 이 세계에 도착하는 듯한 순간. 마법처럼 다가오는, 그러나 오래 머무르지 않는 장면.



사냥은 늘 오차로 가득하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조금만 더 빨리 움직여도 놓친다.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 아니, 정확함으로부터 도망친다. 어렴풋하고, 희미하고, 명료해지기 직전의 상태에서 가장 선명하다. 마치 밤하늘에서 별을 직접 보려 하지 말고 시선을 살짝 비껴봐야 하는 것처럼. 직접 응시하면 사라진다. 그러니 사냥은 곧 눈치채지 않는 척하는 기술이다. 문장을 알아보되, 모르는 척하는 기술. 그것을 따라가되, 쫓지 않는 기술.



문장은 본질적으로 야생이다. 길들일 수 없고, 조련할 수 없다. 한 단어라도 외우려 하면 도망가고, 구조를 정해두면 무너진다. 원고는 조감도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는 논리의 선은 오히려 방해물이다. 탁자 위에 앉아 격식을 갖춘다고 해서 문장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탁자 아래, 쓰러진 머그잔 옆, 구겨진 메모지 속, 절망하는 눈빛 사이에 문장이 있다. 버려진 신발의 방향, 지나간 사람이 남긴 냄새, 누구도 보지 못한 표정. 그런 주변부에 문장이 있다.



문장을 쓰는 건 감각의 총동원이다. 냄새, 소리, 망각된 기억, 기이한 감정, 불면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기묘한 환각. 꿈인지 과거인지 모를 장면의 파편들. 마음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한다. 때로는 바닥을 뚫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동굴을 지난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늑대의 눈과 마주친다. 번뜩이는 빛. 그것은 언어 이전의 감각이다.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응시. 문장은 그 응시의 뒷모습이다. 닿지 않지만, 따라가야 한다.



늑대는 문득 사라지기도 한다. 아무런 예고 없이. 방금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다. 그런 날은 텅 빈 숲만 남는다. 사냥은커녕, 문장이 있다는 믿음조차 흔들린다. 모든 단어가 배반하고, 문법은 쓸모없으며, 언어는 낡은 수의처럼 몸을 옥죄기 시작한다. 그럴 땐 포기해야 한다. 쓰려했던 것, 기대했던 흐름, 정해두었던 주제를 모두 지워야 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문장은 다시 다가온다. 욕심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요가 깃든다. 고요 속에서 다시 들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낙엽 위를 지나는 무게. 늑대가 다시 돌아온다.



시간은 여기서 무력하다. 글을 쓰는 일은 시간을 왜곡시키는 일이다. 직선적인 시간으로는 어떤 문장도 붙잡을 수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문장 속에서 뒤섞인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 내일의 감각으로 다가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면이 어제의 냄새로 떠오른다. 늑대는 시간 밖에 있다. 그래서 사냥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빠르게 걷는 자는 늑대의 숨소리를 듣지 못한다.



가끔은 허기가 문장을 만든다.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감각. 그 채워지지 않음이 문장을 불러낸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펜이 아니라 칼이다. 쓰는 것이 아니라 도려내는 것이다. 감정을, 기억을, 오래된 상처를, 마모된 상념을.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길. 문장은 자신의 내부를 해부한 잔해 위에서 피어난다. 자신을 찢어야만 얻을 수 있는 언어. 그것이 진짜 문장이다.



늑대는 두려움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쓸 수 없다. 그 문장을 쓰는 순간, 어떤 균형이 무너질 것만 같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건드리는 일이고, 언젠가의 고통을 끌어올리는 일이며, 어떤 경계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손이 멈춘다. 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쓸 수 없는 상태. 커서는 멈추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써야 한다. 쓰지 않으면 늑대가 먼저 문다.



사냥의 끝에는 아무도 없다. 독자도, 출판사도, 편집자도, 리뷰도 없다. 오직 문장만 남는다. 모든 밤을 망가뜨리고, 모든 통증을 집어삼킨 뒤에야 얻은 단 한 줄. 그것이 모든 것이다. 종이에 남는 건 몇 마디뿐이지만, 그 몇 마디를 얻기 위해 건너야 했던 숲, 버텨야 했던 추위, 맞서야 했던 고요는 지워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은 늑대사냥과 같다. 반드시 실패하고, 반드시 고통스럽고, 반드시 외롭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늑대의 눈을 마주한 적이 있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다시는 평범한 언어로는 살 수 없다. 야생을 알아버린 자는, 그것을 찾기 위해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다시, 또다시. 문장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은 상처가 아니라 향기다. 사라졌으나, 있었던 것. 그 희미한 냄새를 따라 글은 다시 시작된다.



침묵의 숲, 문장이라는 야생, 그리고 매일 밤 도전하는 사냥. 실패가 반복되고, 피로가 겹겹이 쌓이지만, 사냥은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쓰는 일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사냥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이 세계 어딘가에, 나 아닌 어떤 것으로부터 오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늑대를 쫓는 일이다.


결국 총을 버리고 망원렌즈를 손에 쥘 운명.


사진 출처> pinterest

keyword
이전 07화바퀴 자국처럼 쓰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