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용접자의 일기.

글이 태어나는 수압과 불꽃의 밀도에 관하여

by 적적


물의 안쪽에서 불이 튄다.


젖은 심해 속, 산소보다 밀도 높은 고요의 막이 감싸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잇고 고정하고 심는 일. 글쓰기가 그렇다.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에서조차 문장은 이어지고, 사유는 용접된다. 수면 위의 세계는 그 자체로 고요한 무지다. 글쓰기가 일어나는 장소는 항상 그 아래다. 마치 모든 의미는 물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감춰진 깊이 속에서만 불꽃은 유의미해진다.


수중용접은 이중의 위험을 감내한다. 물과 불이 동시에 존재하는 불가능성 속에서, 용접공은 용접봉 하나를 손에 쥐고 가라앉는다. 언어는 불이고, 침묵은 물이다. 언어는 스스로를 태우며 세계를 새긴다. 침묵은 그 불을 곧장 잠식해 버린다. 그 사이를 건너는 것.


수면 아래는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모든 소리는 무음으로 전환된다. 심장의 박동조차 내부에서 울리고, 몸의 진동이 유일한 감각이 된다. 단어들이 형체 없이 출몰하는 순간,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귀가 아니라 뼈다. 생각은 뼈를 두드린다. 관절 사이사이에 침투하고, 골수 안쪽을 떠돌며 문장의 실마리를 묻는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왜 써야 하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질문은 언제나 안쪽에서 자란다. 수면 위로 떠 오르지 못한 채, 심연 안에서 가만히 몸을 불린다.


수중용접사는 손끝으로 기억한다. 보이지 않는 시야 속에서, 불꽃 온도와 금속의 반응을 직감으로 읽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보지 않고 믿는 일이다. 의미는 즉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은 저항한다. 쉽게 움직이지 않고, 피하거나 눌리거나 빠져나가려 한다.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능력. 그 흐름을 가늠하는 감각. 그 믿음만이 글을 쓰는 손을 버티게 만든다.



인간은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숨이 차오르고, 이명처럼 문장들이 밀려오고, 끝내 정적이 피처럼 퍼진다. 더 깊이 내려가야만 한다. 단 하나의 문장을 붙잡기 위해. 단 한 문장을 붙이기 위해. 이 세계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는 증거 하나를 남기기 위해.



용접은 결합의 기술이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금속이 같은 온도로 달궈질 때만 일어나는 일이다.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살아 있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이다. 이 둘을 같은 온도로 끓여야만 한다. 글 온도로 끌어내리고, 글을 삶의 열기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접합이 일어난다. 그 지점에서만 글은 허공에 부유하지 않는다. 삶에 닿는다. 닿은 흔적은 흔히 상처로 남는다.



글쓰기는 상처를 남기는 작업이다. 다듬고 덧칠하며 지워도, 그 흔적은 문장 아래 남는다. 용접 부위가 매끄럽지 않듯, 문장도 정직한 자국을 남긴다. 거기에는 쓴 이의 떨림과 온도, 그리고 실패가 담겨 있다. 실패 없는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단지 그것을 용인하고 감당하는 기술이 있을 뿐이다. 수중용접사들은 알고 있다. 완벽한 용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무너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이어 붙이는 것이다. 완벽한 글은 없다. 다만 무너지지 않을 만큼, 부서지지 않을 만큼, 이어지는 문장이 있을 뿐이다.


물속에서 시간은 왜곡된다. 분 단위로 계산했던 감각은 호흡 단위로 바뀐다. 한 번의 숨이 다할 때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만 집중할 수 있다. 쓸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호흡처럼 짧고 유한하다. 문장을 붙잡을 수 있는 순간은 아주 짧다. 그 틈을 포착해야 한다. 호흡이 가빠지기 전에, 몰입이 끊기기 전에, 의미가 떠오르기 전에 잡아야 한다. 가장 좋은 문장은 언제나 반쯤 의식이 날아간 순간에 온다. 가장 깊은 수압을 견디며, 가장 맨 밑의 진실을 손에 쥐었을 때 온다.



수중용접사들은 외롭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동료는 없다. 무전조차 끊긴다. 모든 판단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마지막에는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다. 아무리 친절한 독자도,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그 문장 하나만큼은 대신 건널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고립된 순간에 홀로 떠올라야 한다. 숨을 참고, 불을 켜고, 한 줄을 적는다. 그것이 글쓰기다. 혼자만의 수압, 혼자만의 온도, 혼자만의 무게로 적는 말.



수면 위에서 누군가는 물을 바라본다. 바다를 배경 삼아 셀카를 찍고, 파도를 배경 삼아 웃는다. 하지만 바다의 진짜 표정은 수면 아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조용한 행위다. 커피잔 옆에 노트북, 어딘가 고요해 보이는 풍경. 하지만 그 속은 다르다. 고통과 망설임, 실패와 절망, 희미한 기대가 소용돌이치는 심해다. 그 안에서 글은 조금씩 쓰인다. 완성은 없다. 다만 수면 위로 하나씩 문장이 드러난다.



그 문장들이 남긴 자국은 녹이 슬지 않는다. 금속은 녹슬어도, 말은 삭지 않는다. 수중에서 용접된 문장은 그 자체로 오래 견딘다. 어려운 환경에서 쓰였기 때문에, 불가능을 통과했기 때문에. 세상 대부분은 그렇게 쓰인 문장으로 지탱된다.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안쪽에는 뜨거운 불과 무거운 물이 담겨 있는 문장들. 그 문장들이 세상을 고정시킨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던 것들을 지탱한다. 문장이 얼마나 위험한 방식으로 쓰였는지. 그 문장이 얼마나 많은 숨을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 그 문장이 얼마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는지를.



언젠가의 밤, 아무도 없는 수조 속에서 문장 하나가 느릿하게 떠오른다. 불빛도 닿지 않는 어둠의 밑바닥에서, 짧고 투명한 숨결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목소리 없는 목소리, 얼굴 없는 존재, 누구의 것도 아닌 문장. 쓰는 자의 몸은 이미 사라지고, 생각의 형체도 분해된 뒤, 오직 그 문장 하나만이 물속을 가로질러 떠오른다. 그것은 어떤 구조물도 지탱하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떠받친다. 고장 난 시간 위에 얹힌 조용한 징후. 찢긴 마음의 경첩에서 떨어져 나온 마지막 불꽃.



누구도 보지 못한 그 문장은, 언젠가 누군가의 내면에 잔잔히 착지한다. 읽는 자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오래전 바다 밑에서 켜진 그 불이, 아주 느린 시간차로 가슴 안 어딘가를 물들인다. 그러니 결국, 글쓰기는 도달이다. 누구에게 닿을지도 모른 채, 수심 깊은 곳에서 쏘아 올린 미세한 신호. 무색의 고요 속에서만 들리는, 언어 이전의 언어. 그런 문장이 있다. 한없이 멀리서 왔는데도 이상할 만큼 익숙한, 낯선데도 오래 기다렸던 것 같은 문장. 그것이 바로, 모든 글쓰기의 끝에서 남는 단 하나의 불꽃이다.


불가능한 환경에서 불가능한 것을 잇는 일. 매번 실패를 전제로 시작하는 일.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을 안고서도, 끝내 한 문장을 완성하는 일. 세상은 그 문장들로 조금씩 이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쓰고, 누군가는 그것을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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