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어오르는 문장들.

투명해지는 데 필요한 온도와 실패들.

by 적적

물방울이 모이고, 증발하고, 다시 모인다. 사탕수수밭의 축축한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칼날의 노래. 가지런히 벤 줄기들이 나무 트럭에 실려 도시로 운반되는 동안, 생은 단맛을 품고 조용히 발효된다. 그 한 줄기에서 시작된 무수한 반복과 변형, 삶의 단면이 정제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문장은 결정을 향해 나아간다.



처음의 문장은 덩어리 지고 탁하다. 사탕수수를 쥐었을 때 손바닥에 남는 거친 섬유질처럼. 거기엔 뿌리의 냄새, 흙과 비의 혼합물, 열대의 햇빛이 증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모든 글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천연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문장은 아직 자기의 결을 모르고, 단맛과 쓴맛이 뒤섞여 있다. 그 문장을 손에 들고 선다. 첫날의 바람은 늘 비릿하다.


정제는 추출로 시작된다. 사탕수수를 쥐어짜듯이, 문장에서 가장 원초적인 진술을 짜내야 한다. 가장 날것의 감정, 정제되지 않은 사유, 문장의 숨어 있는 잔해들. 너무 일찍 손을 대면 그 원형은 깨진다. 그러나 늦게까지 망설이면 탁류가 되어 버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정확한 온도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증발과 농축의 계절이 오기 전에 문장을 걸러내야 한다.



사탕수수즙은 처음에는 연녹색이다. 그것이 여러 번 끓고 식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탁한 노란빛을 띠게 된다. 설탕이 되기까지, 그 즙은 스스로의 쓴맛을 통과한다. 쓰여질 문장은 처음부터 감미롭지 않다. 고백은 항상 쓴맛을 내포한다. 그 쓴맛을 제거하려는 충동은 유혹처럼 다가오지만, 너무 빨리 제거해 버리면 문장은 무미해진다. 단맛을 내기 위해 쓴맛은 필수적이다. 사유가 반환점을 지나야 만, 정제는 가능해진다.



정제소에서는 혼탁한 즙을 가열한다. 거품이 일고, 불순물이 위로 떠 오른다. 뜨거운 시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라앉은 생각들은 부유물로 남아 읽는 이의 시선을 흐린다. 어떤 문장은 몇 번이고 끓여야 한다. 온도를 높이고 낮추며, 중심의 결정을 기다린다. 모든 진술은 반쯤 거짓이다. 진실을 얻으려면, 그 반쪽짜리 거짓을 여러 겹 벗겨내야 한다. 그 작업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 쓴 문장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미세한 거품들. 그것을 걷어내는 데는 어떤 감각이 필요하다. 삶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한, 결을 읽는 눈.



결정이 생기는 순간은 느리다. 열이 빠지고, 긴 시간이 지나야 만, 그 정제된 즙 속에 설탕의 결정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서서히 응고되는 투명한 입자들. 불필요한 장식이 제거되고, 감정의 과장이 걷히고 나서야, 진짜 의미가 바닥에 남는다. 그것은 투명하고 작다. 정제된 사유는 소리 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만의 밀도로 빛난다.


설탕은 한 조각의 결정체로 완성되기까지 여러 번의 체를 거친다. 가끔은 너무 작아서 걸러지지 않기도 하고, 너무 커서 갈라지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채 텍스트의 흐름에 섞여 있고, 어떤 문장은 너무 빛이 나서 문장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때는 손을 들어야 한다. 한 조각의 설탕이 아니라, 전체 흐름의 조화를 선택해야 한다. 설탕은 항상 조리 전체의 균형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정제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전체의 온도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글을 쓰는 일은 노동이다. 생각의 노동이면서 동시에 감각의 노동이다. 단맛을 내는 데 필요한 건 손끝의 기술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내와 실패와 수없이 버리고 덜어낸 결과다. 어떤 하루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끝나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열 번을 고쳐 써도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 날에도 다시 책상을 마주 앉아야 한다. 수수의 즙이 끓는 냄새처럼, 생각은 천천히 다시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설탕이 결국 바닥에서 떠오르듯, 가장 정제된 문장도 반복되는 실패와 무명의 시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완성된 설탕은 무색이다. 모든 색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 진짜 문장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 기억, 환상을 통과해야 한다. 그 끝에 남는 것은 투명한 결정들. 단순하고 정확하며, 불필요한 서사로부터 벗어난. 그런 문장은 오래 남는다. 다 쓴 뒤에도 입 안에 남아 있는 감각처럼, 사라진 뒤에도 잔향을 남긴다. 그것은 더 이상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다. 그저 존재하는 문장. 읽는 이의 삶에서 천천히 녹아드는 문장.

글을 쓰는 일은 설탕을 정제하는 일이다. 반복과 걸러냄, 끓임과 기다림, 투명한 직관의 결정. 모든 문장은 처음엔 쓴맛을 품고 태어난다. 그 쓴맛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들만이, 단맛을 건져 올린다. 어느 날 입안에 남는 그 한 알의 설탕처럼, 어떤 문장은 기억 속에 천천히 녹는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아도 이해되는 문장. 그것은 사탕수수밭의 낮은 바람을 지나, 천천히 독자의 마음 안에 결정을 만든다.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누구에게나 허락된 문장.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해, 오늘도 설탕은 끓고 있다.



모든 단맛은 쓴맛을 지나왔다. 끝까지 끓여내야만 남는 것이 있다. 시간의 불 위에서 타오른 감정들, 과장과 허세가 걷힌 자리에서 비로소 고요하게 남는 결정 하나. 그것은 더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모든 설명을 거부할 때, 그 문장은 살아남는다. 반복해서 읽지 않아도 되는 문장, 시간이 지난 뒤에도 불쑥 떠오르는 문장. 그것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그 이상의 말은 침묵으로 남겨둔다. 단맛은 거기서 온다. 정제된 침묵, 빛나는 간결함, 불필요를 제거한 언어. 그런 문장은 수백 번의 끓임 끝에서 결정처럼 태어난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쉽게 닿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닿으면, 영원히 남는다. 입속에서 서서히 녹는 사탕처럼. 읽고 나서야 울림이 밀려오는, 감정보다 깊은 어떤 감각.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여운. 결국 쓰고자 했던 것은 말이 아니라 그것이었다. 말 너머의 말, 맛 너머의 맛.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끓고 있는



문장을 바라본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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