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이름의 진창과 저릿한 어깨 이야기
정오가 지나자 하늘이 흐려진다 점 점 더 낮아진다. 물방울이 유리창에 톡톡 떨어진다. 비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된 듯하지만, 어쩌면 온종일 쌓이고 있었던 것들이 잠시 틈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천천히, 단호하게 세상의 결을 바꿔놓는다. 거리는 젖고, 공기는 무거워지고, 색은 선명해진다. 그런 날, 한 손엔 우산, 다른 한 손엔 유모차를 쥐고 바깥으로 나서는 일은 몸보다 정신이 더 빠르게 젖어드는 일일 것이다. 앞서가던 여자는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자꾸만 가방을 고쳐 들었다. 어깨가 아파 올 것이다. 작은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팔이 한없이 버거울 것이다, 그 순간은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멈추고 싶어 진다는 걸 알 테니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앉아서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가벼운 한 문장이지만, 그것을 끌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팔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글은 절대 가볍지 않다. 마치 유모차처럼, 시작은 단순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실려 있는 것들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우산을 드는 팔이 저리기 시작할 때, 그 고단함이 글쓰기의 중간 지점쯤 되는 지표다.
도심의 인도는 예상보다 울퉁불퉁하다. 평평해 보였던 보도블록은 작은 틈에도 물을 머금고 있고, 그 사이를 빠져나가려면 바퀴를 약간 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손목이 꺾이고, 우산이 한쪽으로 쏠리고, 비는 그 틈을 파고든다. 매끄럽게 흘러가던 문장이 어느 순간 모서리에 부딪히고, 흐름이 끊긴다. 그러면 방향을 바꿔야 하고, 고개를 틀어야 하고, 때로는 문장을 들고 살짝 들어 올려야 한다. 무게중심이 어긋나는 순간, 글은 삐끗한다. 마치 미끄러질 듯한 발바닥처럼.
유모차의 바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가장 많은 말을 건네온다. 글을 쓸 때 문장은 언제나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죽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바퀴가 방향을 바꿔야 할 때, 손은 이미 알고 있다. 더는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그때가 가장 피곤하다. 우산은 내려오고, 어깨는 젖는다. 글에서도, 방향을 바꾸는 순간, 모든 이전의 흐름을 포기해야 한다. 힘들게 쓴 수백 자의 문장을 지우고,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써야 하는 그 순간, 왼팔이 저리고 오른손엔 진창이 튄다.
횡단보도 앞, 비는 유리처럼 얇게 퍼진다.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몸을 움찔한다. 멈추면 안 된다. 멈추면 깬다. 이야기는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얕은 숨이다. 조심스러운 손으로 밀어야 한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중심을 잃지 않게. 그런데 중심이란 건, 계속 흔들린다. 우산을 드는 팔이 떨리고, 뻗었던 손이 무거워질수록 글은 더 예민해진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글은, 언제나 피로를 전제로 한다.
공원 길목, 나무 아래 잠시 멈춘다. 허리를 굽혀 유모차의 덮개를 올렸다 내려준다. 문득 문장이 떠오른다. 급하게 메모 앱을 켠다. 손이 젖어 있다. 터치가 되지 않는다. 빗방울은 전화기 안까지 들어온다. 문장은 늘 가장 불편한 순간에 찾아온다. 팔이 무거운 그 순간, 물에 젖은 손끝에서 뭔가 번쩍인다. 그것은 쓰는 이에게 주어진 짧은 신호일뿐,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 무게를, 그 순간의 피로를,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놓친다.
다시 길을 나선다. 구불구불한 골목, 빗물이 고여 있는 자투리땅. 바퀴가 잠시 멈춘다. 걸리는 무언가가 있다. 내려다보니 쓰레기봉투 조각이 걸려 있다. 빼내기 위해 몸을 숙이고, 우산을 내려놓는다. 그 짧은 순간, 비는 온몸에 닿는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된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멈추고, 방향을 수정해야 하고, 무언가를 들어내야만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때마다 손은 젖고, 옷은 무거워지고, 마음도 함께 늘어진다. 단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걷는 것뿐이다.
비는 점점 더 거세어진다. 머리 위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각도로 떨어지는 비. 유모차를 끄는 손은 이미 감각이 둔해지고, 팔의 피로가 어깨까지 번져온다. 더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빈 문장들. 그런 순간이 지나야, 갑자기 길이 열린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비가 멎고,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유모차의 무게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손에 감기는 감촉이 달라진다.
돌아가는 길, 젖은 신발 속에서 발가락이 불어 간다. 손목이 욱신거린다. 한 편의 글을 다 쓰고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목이 굳고, 손이 아프고, 눈이 흐릿해진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통과한 자에게만 남는 감각이다. 비가 멈춘 자리에 남은 물웅덩이처럼. 그 웅덩이는 어쩌면 그날 하루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밟고 지나온 발자국이 결국 문장이다. 누가 보든 말든, 거기 남는 자국.
글쓰기는 결국 비 오는 날 유모차를 끌고 나서는 일이다. 한 손은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흔들리는 유모차를 밀며,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 바퀴는 어긋나고, 손은 젖고, 어깨는 무거워진다. 그 모든 것을 견디고 나면, 문장은 남는다. 아직 축축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문장 하나. 그것으로 하루가 완성된다.
그런 수고로 글이 살아 있다.
왜 그날 비 오는 날 거리로 나섰는지 그녀와 그녀의 유모차 뒤를 앞서 가지 못한 채 계속 멈춰 서서 앞서가기를 기다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와 그녀의 유모차가 집에 잘 도착했는지 문자를 기다리는 밤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