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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휘담 11화

혀가 말을 막을 때

말하지 못한 감정이 남기는 입안의 충돌음

by 적적


서-걱



기압이 낮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분명히 지나갔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실내에 바람을 숨기고 있었다. 뺨을 타고 지나가는 공기마저 예민해져 있었고, 커피잔의 물결은 불안한 빈맥처럼 흔들렸다.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혀는 입안에서 제 자리를 잃었다. 어딘가 도피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이빨 사이에서 미끄러지다가, 결국에는 살점을 찢고 말았다. 그저 무의식적인 실수처럼 보였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의도가 섞인 사고였다. 상처는 생각보다 작고, 피는 생각보다 빨랐다.



혀를 깨무는 일은 반복되었다. 오늘만 네 번째였다.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니며 자꾸 마주치는 누군가와 같다. 문장을 삼키다 만 자리, 침묵이 덜 씹힌 자리, 혹은 무표정한 웃음을 감추던 근육의 뒤틀린 궤적. 그런 곳에 혀는 자꾸 가 닿았다. 불안정한 내면의 평형이 깨지듯, 이빨과 혀는 공존의 협약을 거부했다. 입 안이라는 가장 사적인 밀실에서 일어난 미세한 폭력. 어떤 말은 하지 않았고, 어떤 감정은 애써 삼켜 보냈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었다. 단념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식탁 위에는 식은 피자가 한 조각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입술을 적셨다. 거기에는 배고픔보다 더 원시적인 갈망이 얽혀 있었다. 허기를 속이며 살아온 시간들. 감정을 씹지 않고 삼켜야 했던 밤들. 그 모든 날이 하나의 고깃덩이처럼 입 안을 떠돌았다. 혀는 그 잔해를 조심스럽게 더듬었고, 결국에는 또 한 번, 날카로운 치아와 충돌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이 이상은 안 된다는, 말하지 말라는, 기억하지 말라는 신호. 그러나 그런 신호를 무시하고 나아간 쪽은 언제나 기억이었다. 과거는 제 스스로를 낱개로 해체하며 재등장했고, 익숙한 음악이나 오래된 사진 따위의 위장술을 입은 채로 입 안에 스며들었다. 말 대신 침묵을 삼켰던 순간들, 무표정한 얼굴로 울음을 참았던 복도, 웃지 못한 농담에 남겨진 공허한 웃음들. 모든 장면은 혀의 작은 상처를 통해 재생되었다. 피는 감정의 잔여물처럼 느리게 번졌다.



어떤 문장은 나올 수 없었다. 발화되지 못한 말들이 피부 아래 고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침전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졌다. 손목의 혈관처럼 미세하게 흐르던 감정은, 이제는 혀끝을 찌르는 통증으로 변모해 있었다. 누군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침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건 다른 방식의 소음이었다. 입안에서 일어난 짧은 폭발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입 안은 전장이다. 혀는 때로 무장 해제된 군인이 되고, 때로는 자해하는 전사가 된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단어를 흘리고, 누군가는 그 언어의 조각들로 자기를 찌른다. 피는 말보다 빠르게 흐르고, 고통은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는다. 말의 폭력은 입 밖이 아니라, 오히려 입 안에서 먼저 일어난다. 입술은 닫혔고, 혀는 고립되었다. 그 고립이 고통을 낳았다.



누군가 웃었다. 그 웃음은 상황에 적절했고, 형식적으로나마 예의 바른 톤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혀를 깨문 직후에 나온 것이었고, 잇몸 아래에서 흐르는 피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 웃음은 한 문장의 고통 위에 세워졌다. 씹히지 않은 단어, 넘기지 못한 감정, 말하지 못한 진심. 모든 것이 그 웃음 하나로 봉합되었고, 동시에 터졌다.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혀는 붓기 시작했고, 말은 흐릿해졌다. 발음은 미끄러졌고, 의미는 왜곡되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피로라 했고, 누군가는 우울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이 붙지 않은 감정이었다. 단지 자꾸만 혀를 깨무는 날이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몸을 통해 스며 나오는 날. 웃음 뒤에 숨긴 비명이, 입안의 고통으로 재현된 날. 단지 그런 날.



입 안의 상처는 눈에 띄지 않는다. 붉은 점 하나, 혀끝의 통증, 말을 망설이게 하는 미세한 아픔.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천 개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 아직 쓰지 못한 문장들, 끝내 발화되지 못한 진심, 도달하지 못한 언어. 이빨은 그 모든 것들을 찢어 삼켰고, 혀는 그것을 기억했다. 피는 잠시 멈췄지만,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감정은 침묵하지 않았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날 이후로 천천히 말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감정을 우회했고, 진심을 연기했다. 가장 예의 바른 단어로 가장 날카로운 폭력을 휘둘렀다. 문장은 부드럽게 다가왔고, 단어는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혀를 깨무는 통증이 있었다. 웃으며 건넨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입 안을 피로 물들게 했고, 어떤 대화는 사랑처럼 시작되어 복수처럼 끝났다.



그날, 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이후로, 말은 조심스럽게 바뀌었다. 침묵은 더 깊어졌고, 웃음은 더 얇아졌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알아차렸고, 누군가는 영원히 모른 채 지나쳤다. 그러나 입 안의 상처는 아무도 모르게 아물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감정이 자라기 시작했다. 혀는 여전히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오늘도 입 안 어딘가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은 아직 단 한 번도 혀를 깨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그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혀는 알고 있다. 아주 작은 불안이 생겨날 때, 말하지 못한 감정이 다시 떠오를 때, 그리고 무언가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느낄 때 입 안의 평화는 다시 무너질 것이다.

그날처럼.


자꾸만, 혀를 깨무는 날처럼.



그러니까 결국, 모든 상처는 말하지 못한 진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발설하지 않은 문장들, 입술 앞에서 주춤거리다 되돌아간 마음들, 말로는 닿을 수 없었던 감정의 진앙. 그런 것들이 모여 혀를 물게 한다.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지 않고, 알아차려야 했던 것을 끝내 외면하고, 누군가를 향해 건네야 했던 언어를 집어삼킨 채 돌아설 때, 사람은 입 안의 가장 부드러운 부위를 깨물게 된다. 그건 무언가를 안다는 방식이기도 했다. 논리보다 먼저 도달한 통증, 논쟁보다 더 선명한 침묵의 증거.



혀는 기억한다. 모든 발설되지 않은 슬픔을. 부드럽고 축축한, 그러나 날마다 조심스럽게 다듬어진 육체의 기록. 그 미세한 상처의 누적이 결국 말의 성격을 바꾸고, 사람의 문장을 바꾸고, 결국은 그 사람 자체를 바꾼다. 상처는 흔히 외부에서 시작된다고들 하지만, 어떤 고통은 말이 되지 못한 감정 안에서 스스로 자란다.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찌르고, 스스로 피를 본다. 침묵이란 그런 것이다. 폭력이 없는 고요가 아니라, 폭력을 안으로 밀어 넣는 방식. 조용히 터지는 내면의 충돌음.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는 또다시 웃는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어색하지 않게. 웃음은 오히려 더 정교하게 세공된 침묵의 얼굴이다. 그 아래 숨겨진 혀의 통증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웃음이 다녀간 자리에 붉은 점 하나 남는다. 그것은 비밀처럼 남아, 오래도록 저릴 것이다. 오래도록 저리다가, 어느 날 다시 입 안을 물게 할 것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고요, 침묵보다 먼저 울리는 통증, 그리고 입 안 어딘가에 고여 있는, 발화되지 못한 문장 하나.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혀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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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