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5화

감정은 발.등에서 시작된다.

한 켤레뿐인 마음으로 걷는 일에 대하여

by 적적



물웅덩이는 어제보다 더 얕았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멈췄고, 축축한 공기 사이로 흐릿한 햇살이 잔뜩 엉킨 구름을 비집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빗물은 회색빛 하늘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검은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것인지, 벗겨진 채로 떠밀려온 것인지, 물가에서부터 정확히 여덟 발자국 거리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감정의 물웅덩이를 밟고 만다. 피할 수 없는 흐름. 알고도 빠지는 함정. 그것은 고의가 아니라 구조다. 맑은 하늘 아래서도 사람은 젖는다. 혼잣말처럼 튀어나온 질문이 마음을 가르고, 끝내 답할 수 없는 말이 혀 밑에 고인다. 감정은 늘 뒷모습으로 다가오고, 신발은 그때쯤 잦기 시작한다. 눈치채지 못한 채 한참을 걷고 나서야, 발이 무거워졌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젖은 신발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대책 없이 조용한 기다림, 건조한 공기를 끌어와야 하는 일이다. 그 안에서 물은 천천히 빠지고, 형태는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마른 신발이 처음 같지는 않다. 굳고 변형되고, 어느새 낡아 있다. 감정도 그렇다. 처리된 감정은 처음의 그것과 같지 않다. 그러나 그 변형은 불필요하지 않다. 모든 감정은 젖었다가 굳은 이후에야 자신만의 결을 얻는다.



누군가는 젖은 신발을 비닐봉지에 넣어 두고 외면한다. 냄새가 나고, 마를 기미가 없고, 손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물기는 곰팡이로 바뀌고, 내버려 둔 감정은 트라우마로 변질한다. 어떤 감정은 바로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된다. 급하게 열을 가하면 신발이 뒤틀리듯, 마음도 제 모양을 잃는다. 오랜 시간, 공기와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말려야 한다. 손이 닿지 않되, 관심은 있어야 한다. 건조와 외면은 다르다.



비에 젖은 신발을 꺼내는 일은 하루는 걷는 것 자체가 실패로 느껴지고, 어떤 감정은 고작 물웅덩이 하나로 시작해 전신을 잠기게 만든다. 젖는 일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감정이 없다면 발도, 마음도, 닿는 바닥도 확인할 수 없다. 젖는다는 것은 닿았다는 증거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감각, 흡수된 기억. 그 모든 것은 결국 감정의 윤곽을 형성한다. 감정 없는 사람은 신발조차 젖지 않는다. 그들은 물웅덩이를 건너뛴다. 빠지지 않는 대신, 다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젖은 신발은 그 자체로 삶의 밀도다. 어쩔 수 없는 마찰, 불가피한 접촉, 견딜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 삶의 증거가 된다.



누군가는 신발이 젖으면 곧바로 빨래집게로 입구를 고정하고, 창가에 널어둔다. 그 위로 햇살이 비치고, 시간이 흐른다. 감정도 그런 식으로 다루어진다. 다정한 정리. 무른 마음을 꺼내놓고, 언어로 말리는 일. 무엇이, 언제,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를 천천히 복기하는 일. 그것은 타인을 위한 설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기록이다. 젖어든 것은 잊히지만, 처리 방식은 남는다.



가장 나쁜 방식은 젖은 채로 다시 신는 것이다. 이럴 땐 무조건 더 젖게 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다시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고스란히 전염된다. 물기처럼 번지고, 냄새처럼 잔류한다. 감정은 내 것이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젖은 감정을 안고 들어온 사람은 방 안의 습도를 바꾼다. 그저 침묵으로도. 그 무게가 공기를 압박하고, 말보다 진한 징후로 남는다.



그렇기에 감정은 혼자 말려야 한다. 혼자라는 말은 고립이 아니라 고요다. 나를 방해하지 않는 시간, 나를 응시할 수 있는 틈. 감정은 쉽게 발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떠들수록 진짜 감정에서 멀어진다.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보다, 그 직전의 숨죽임이 더 깊은 감정이다. 감정을 처리한다는 것은 그 직전의 순간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다. 눈물은 끝이지만, 젖음은 시작이다.



누군가는 이따금 젖은 신발을 버린다. 감정을 처리하지 않고 제거하는 일. 기억 자체를 없애버리는 선택. 그것은 언젠가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재발한다. 떠나간 사람이 남긴 신발처럼, 잊힌 감정은 언제고 무심한 구석에서 발견된다. 냄새를 풍기고, 다시 묻힌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흡수되거나, 굳거나, 재해석될 뿐이다. 이따금 신발장 안에서 오래된 젖은 냄새가 나곤 한다. 그건 특정한 하루가 처리되지 않은 채 남겨졌다는 신호다. 기억은 신발처럼, 감정은 물처럼 남는다.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썩어간다.


처리된 감정은 더는 흘러넘치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한 형태로 자리를 잡는다. 이전과는 다른 무게로, 그러나 무너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마른 신발처럼. 한 번 젖은 이후, 더는 가볍지 않지만, 더는 무르지도 않다. 그래서 감정은 신발처럼, 걷는 일의 일부다. 젖는다는 사실만으로 겁먹을 이유는 없다. 그건 지나가는 날씨이고, 남는 건 걸음이다.



누군가는 지금 창가에 신발을 말리고 있다. 그가 누구든, 그는 지금 자기감정을 다루고 있는 중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것을 마르게 두고 있다. 어쩌면, 내일쯤이면 다시 그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감정 위로, 낯선 물웅덩이 사이로. 젖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런 식으로, 감정은 반복되고, 신발은 삶의 모양을 닮아간다.



신발이 한 켤레뿐인 사람은 젖는 순간부터 시간을 잃는다. 갈아 신을 예비가 없다는 건, 젖은 채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문 앞에 벗어두고 맨발로 하루를 보낼 수도 없다. 삶은 멈춰주지 않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젖음을 신고 나아간다. 발목부터 차오르는 축축한 감각, 걸을 때마다 들리는 찰박이는 소리, 그 소음은 감정의 숨구멍처럼 작고 확실하게 존재를 증명한다.



한 켤레뿐인 신발을 가진 사람은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발끝을 감춘다. 최대한 마르도록 벽에 바짝 기대어 놓고, 드라이어 바람을 쐬거나, 신문지를 구겨 넣는다. 그러나 그런 응급조치로는 완전히 마를 수 없다. 축축한 속살은 계속해서 바깥의 건조함을 흡수하며 버틴다. 그는 온종일 걸을 때마다 발등이 젖는 기분을 느끼며, 그 느낌을 무시하는 기술을 익힌다. 젖음을 참는 일이 곧 삶의 방식이 된다.



가끔은 양말 대신 휴지를 덧댄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서다. 허술한 대책이지만, 그래도 발등이 그리 아프지 않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상 마음에 무언가를 덧대며 산다. 말 대신 침묵을, 눈물 대신 농담을, 외로움 대신 일정표를. 젖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않도록. 그러나 그 속은 언제나 눅눅하다. 말려지지 않은 채, 잠깐의 온기만 흡수하며 하루를 버틴다.



한 켤레뿐인 사람은 신발을 버릴 수 없다. 버린다는 건 더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폐기하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무용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조용하게, 더욱 끈질기게 그것을 말리는 법을 배운다. 해가 조금이라도 비치는 시간에 창을 열고, 바람이 드는 방향을 외운다. 때로는 신발을 벗고 걷는다. 아주 잠깐, 땅의 감각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젖은 신발을 다시 말리고, 다시 젖는 걸 반복하면서, 그는 삶의 무게를 익힌다. 신발이 하나뿐이기에, 그는 더 단단해진다. 감정을 다룰 수밖에 없는 사람은 감정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안다. 젖은 신발도 끝내 마른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이 신발이 낡아 떨어질 때쯤엔, 이 젖은 기록들이 발밑에서 꺼지지 않는.



기억의 체온으로 남는다는 것을.


사진 출처> pinterest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24화섬세한 것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