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30화

젖은 공기, 기억의 나선

닿지 않은 것들이 사유가 되는 순간

by 적적

물은 새벽부터 공기를 점령했다. 창틀 아래 고인 물방울이 처음 닿는 곳은 발이 아니라 코끝이었다. 축축함은 늘 냄새로 먼저 도착했고, 숨을 들이마시는 일은 곧 젖는 일이 되었다. 천장 모서리를 따라 천천히 스며드는 것들, 그 느린 침입자들은 옷의 실밥이나 머리카락의 끝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기온은 아직 타협할 만했지만, 그런 점에서는 더 잔인했다. 불쾌하거나 견디기 어려울 만큼도 아니고, 그저 계속해서 스며드는, 딱 그 정도였다.



벽지는 조금씩 들떠 있었다. 하룻밤 사이 문틀의 색이 바래 있었고, 손잡이는 더 차가워졌으며, 젖은 빨래에서 옮겨온 무언가가 방 안을 전염시킨 것 같았다. 이따금 책상에 앉아 글을 적는 손가락마저도 미세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다 써놓은 문장이 눅눅하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 말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아래로 스러지는 순간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



습기는 가장 먼저 사람의 확신을 먹었다. 그것은 말라 있는 사유에 조용히 스며들었고, 한때는 단단하다고 믿었던 생각의 표면을 허물었다. 종잇장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그저 한 점이면 충분했다. 중심에서 가장자리까지 색이 번지듯, 생각은 말없이 허물어졌고, 종국에는 처음 무엇을 쓰려했는지조차 잊게 했다.



그럴 때마다 불을 상상했다. 마른나무 두 개를 서로 비비는 일. 고전적인 방식의 절박함. 가장 오래된 도구로 가장 오래된 감각을 깨우는 일. 그 순간엔 불이라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바른 생각 두 개를 끝없이 마찰하는 행위가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되었다.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피어오른다고 믿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부터 뜨거운 불꽃을 기대하는 자는 대부분 실패했다. 냉정한 건 불이 아니라 기대였다. 마른 껍질을 벗겨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그 안쪽의 은은한 감촉, 부스러지는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가느다란 실선이 연기처럼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눈가에서 먼저 감지되었다. 사선의 흐름, 공기와 공기 사이를 갈라놓는 잔상이 감각의 출구를 열었다.



그걸 벌레라고 불렀다. 작고, 주황색 등을 가진. 불쏘시개보다 더 가벼운 존재. 젖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불이라고 믿는 것. 그 작은 움직임에 온 마음을 거는 일. 위험한 일이지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일이었다.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불은 벌레의 형상으로 출현했다. 다리를 하나씩 옮길 때마다, 젖은 풀잎 위에 남는 점액 같은 흔적이 사유의 시작을 알렸다.


그 벌레를 마른풀로 옮기는 일에는 극도의 조심스러움이 필요했다. 잘못 건드리면 꺼지는 감각, 잠들어버리는 불씨. 그러나 허공에 그것을 흔들어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아이를 달래듯, 혹은 마지막으로 잠들지 않기를 기도하듯. 그런 자세는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다. 무릎을 꿇은 자의 진심만이 만들어내는 균형. 불씨는 그때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마른풀을 훑고 지나가는 곤충의 등 위에, 작은 화염처럼 피어오르는 주황빛. 그것은 생명이었다.



생명은 한 번도 조용히 피어난 적이 없었다. 연기처럼 이리저리 흩어지던 벌레는 어느 순간 날개를 얻었고, 더 이상 지상에 닿지 않은 채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마른풀과 젖은 생각을 동시에 집어삼키며 불꽃이 되었다. 연기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타버린 껍질 같은 문장들이었다. 다 타고 남은 말들, 아무 말도 아닌 것들이 남았다.



불씨를 지켜보던 자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이러니였다. 쓰고자 했던 문장은 타버렸고, 마지막 문장은 끝내 쓰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아마도 불의 기척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는 그 벌레가 마지막으로 날아오르기 전, 미세하게 떨던 날개의 움직임이 남긴 진동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그런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무언가를 정확히 쓰지 않음으로써 도달하는 감각, 모든 걸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것. 축축한 아침에 침묵이 스며들고, 마른 생각 사이에서 불씨가 깨어나는 과정은 언어가 아닌 침묵에 가까웠다. 쓰지 않는 용기, 멈추는 기술, 떠올라버린 것을 지우는 단호함. 그것은 불보다 더 불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불을 본 적이 없다. 다만 불이 있었던 자리, 그 흔적만을 기억한다. 젖은 나무 사이에서 타오르기 직전의 벌레,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생각, 그 모든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잠시 머무는 일. 사유란 끝내 그것을 ‘지켜보는 일’에 가까웠다. 붙잡으려는 순간, 불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입가에 피어오른 웃음뿐이었다. 그것도 곧 습기에 지워질 웃음.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손바닥 사이에 남은 물기가 말라갈 즈음, 축축한 공기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가 깨어난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각, 불이라고도 벌레라고도 말할 수 없는 어떤 움직임. 그것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하고, 늘 사라지는 순간에야 자신을 드러낸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없고, 눈을 감았을 때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아마 그것이 불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단 한 번도 불이 아니었을 가능성조차 떠오른다.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계속해서 생각을 마찰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고, 명확히 지목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다시 손끝을 모으고, 다시 마른 껍질을 벗긴다. 쓸 수 없는 문장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아래에서, 굳게 믿고 싶은 어떤 무언가의 그림자를 좇으며. 언어는 언제나 도달하지 못한 곳에 닿으려 애쓰며 불씨를 흉내 낸다. 그 흉내는 서툴고 어설퍼 종종 허공에 흩어지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 문장이 피어난다. 피어났다가, 다시 꺼진다. 꺼진 자리에 남는 건 종이의 그을음이나 손가락의 열이 아니라, 다만 감각의 여운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증명되지 않고, 어떤 언어로도 완전히 옮겨지지 않으며, 오직 기억의 틈에서만 스치듯 반복된다.



아무도 보지 못한 불을 믿으며, 말라가는 생각 둘을 조심스레 맞댄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꺼질 것을 알면서도, 단 한 번, 그 이름 없는 벌레가 날아오르던 순간의 빛을 기억하며. 언젠가는, 그 빛이 연기가 아닌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



물은 연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불은, 사라지면서도 자취를 남긴다. 그것이 연기다. 연기는 불의 유언과도 같아서, 타오르는 동안 침묵했던 것들이 꺼진 뒤에야 비로소 말을 건다. 흔히 불은 시작이라 말하지만, 연기는 그 끝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감각의 그림자, 한 번쯤 뜨거웠던 무언가의 휘청이는 잔상이다. 불이 자신을 다해 무언가를 밝히는 동안, 연기는 늘 어둠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피어오르며 무너지고, 나선형으로 흩어지는 그 움직임은 곧 사유의 모양을 닮는다. 생각은 늘 타오르기보다 먼저 무너지고, 언어는 연기처럼 흩어진다.



연기는 붙잡히지 않는다. 손으로 움켜쥘 수 없고, 눈으로 좇는 순간 이미 사라진다. 남는 것은 그 향, 그 흔적뿐이다. 불은 존재했지만, 연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만 존재했던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한때 무엇이 타올랐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그래서 연기는 기록보다 오래된 기억의 방식에 가깝다. 사라짐이 남긴 냄새, 지나간 온도의 여운, 다만 어떤 일이 있었다는 증거로서의 흐림.



재는 연기보다 더 조용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던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타지 못한 말들의 껍질이었다. 그 재는 말의 잔해였고, 의미의 껍데기였다. 종잇장을 태우고 남은 회색 가루들, 지문만 닿아도 부서지는 그 가벼운 것들. 그러나 그 무게 없음 속에 한때의 격렬함이 담겨 있었다. 격렬함이 지나간 자리의 정적. 열이 식은 자리에 남은 형상은 언제나 말보다 깊었다. 의미 없는 조각들이, 이상하게도 무엇보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연기는 곧 사유가 떠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재는 그 사유가 얼마나 불완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재로 남은 것들은 원래의 형태를 잃었지만, 그것이 있었음을 더 깊이 증명한다. 오히려 형태를 가졌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존재한다. 불에 닿기 전에는 단지 존재했을 뿐이던 사물들이, 사라짐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 마치 문장이 지워지고 난 후에야 남는 감각처럼. 쓰인 것보다, 쓰이지 않은 여백에서 더 많은 감각이 피어나는 순간.



누군가는 그 재 위에 손을 얹는다. 불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꺼졌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그 체온은 거기 없다. 그러나 손가락 사이로 묻어 나오는 잿빛은, 불이 한때 여기에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문장은 끝났고, 말은 침묵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것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끝났기에, 이제야 들리는 어떤 목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타오르던 시간보다 더 조용하고, 더 오래 지속되었다.



연기와 재는 불의 실패가 아니라, 불의 귀환이다. 타오름은 늘 순간이었고, 사라짐은 지속이었다. 언어는 그 사라짐 속에서 길을 잃고, 연기를 따라 흐르다가 마침내 재가 되어 눕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재를 모아 다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불은 언제나 끝에서 시작되었고, 연기는 언어의 방향이었으며, 재는 침묵의 가장 깊은 문장이었다. 아무 말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는 방식. 타버린 생각들 위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새로운 문장.



그 문장은 다만 연기처럼 흩어지고, 재처럼 흩날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다. 한때 무엇이 있었고, 어떤 불이 지나갔으며, 어떤 감각이 끝내 형체 없이 남았는지를. 사라진 것을 믿는 일, 타버린 것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유의 가장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늘 연기 너머에서 재를 만지는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불은 다시 피어오를 테니까. 누군가 손바닥 사이에 남은 물기를 느끼는 아침이면, 또 다른 사람이 마른 생각 두 개를 마찰하며 벌레를 기다릴 것이다. 그 벌레는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입가에 웃음이 피어오를 그 순간을 위해.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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