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8화

나는 은유의 왕이다.

말보다 깊은 통치를 한다.

by 적적

* 글을 쓰는 일보다 음악을 고르는 일이 더 길게 느껴집니다. 너무 오랫동안 듣지 않은 것일 수도 맘에 들지 않은 음악을 들은 건지, 다른 소음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건지.

https://www.youtube.com/watch?v=vXrpFxHfp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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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는 진작에 바래 있었다. 낡은 비유처럼 들뜨고 일어난 자국들이 세월을 대신 설명했다. 무엇과도 직접 닿지 않는 것들만이 끝까지 남아 있다. 물건은 부서지고, 표정은 잊히고, 말은 증발한다. 그러나 은유는 죽지 않는다. 한 번 들은 문장은, 어떤 말보다 오래 사람을 따라다닌다. 아프다는 말보다, 고요히 젖는다고 말하는 쪽이 오래 남는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가슴에 벚꽃을 먹였다고 말하는 쪽이 더 잊히지 않는다. 은유는 감정을 해치지 않고 파괴하는 기술이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발설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왕좌는 그러한 문장 위에 놓여 있다. 누구도 곧장 가지 않는 길, 그 안에서만 발견되는 유일무이한 경로. 바로 그 자리에서 은유는 왕이 된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로 떨어진 햇살을 보는 사람의 눈에, 여름이 묻어난다. 누군가는 그것을 ‘계절’이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빛의 무게’라 말한다. 햇살이라는 단어가 뜨거움을 말하는 순간은 거의 없다. 그것은 대체로 부드럽고, 오래되고,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등 뒤에서 내려앉는 감정의 그림자 같은 것. 실질이 없는 감각의 집합체. 그것이야말로 은유의 본령이다. 실체를 훼손하지 않고, 감각을 새롭게 열어젖힌다. 하나의 문장이 삶을 다시 설명한다. 그것은 때때로 신보다 오래된 믿음처럼 작용한다.



거울 앞에서 손톱을 다듬는 행위에도 서사가 흐른다. 손톱이 아니라 시간을 정리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실제보다 더 정직한 표현은 실재의 껍질을 벗긴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아니라, 타인의 피를 문 듯한 입매. 커튼 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아니라, 방 안을 들쑤시는 무형의 손길. 사람들은 종종 실체보다 더 날카로운 묘사를 허락받고 싶어 한다. 정직한 감정보다 은유의 포장지를 더 오래 곱씹는다. 결국은 상처도 그 위에서만 설명된다. 예컨대, 그 사람은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맥박이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는 문장. 이별은 말이 아니라 체온의 순서로 먼저 다가온다는 문장. 무릎에 얹힌 손보다, 무릎 아래 깔린 말이 더 따뜻했다는 문장. 그것들이 비로소 마음의 기록이 된다.

은유는 피를 묻히지 않고 피를 말한다. 날을 세우지 않고도 벨 수 있는 방법이다. 살해 없이 죽음을 그리는 기술. 가장 완전한 은유는 말보다 침묵에 가깝다. 어떤 문장들은 읽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는 그냥 오지 않는다.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다. 고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억하고 내려앉는다. 빗물은 마중 나오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이기도 하다. 그런 문장 앞에서 인간은 잠시 멈춘다. 이해보다 감응이 먼저 온다. 감탄보다도 느린 감정의 응고. 말의 속도는 거기서 느려지고, 마음은 거기서 오래 머문다.



식탁 위의 사과는 이미 과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시간표 위에 올려진 하나의 점. 한 번도 베어 물지 않은 채 수요일을 건너는 방식. 날마다 조금씩 말라가는 표면 아래에서, 누군가의 결심이 썩는다. 가장 조용한 은유는 부패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하는 상태. 침묵하는 감정은 대부분 그 상태로 썩어간다. 누구에게도 옮기지 못한 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부풀어 오른다. 부패는 무기보다 오래 기억된다. 그건 폭력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의 조각이다.



책장은 빛의 방향으로만 기울어진다. 읽히지 않는 책들이 가장 무겁다. 언젠가 읽을 거라는 약속은 늘 배반당한다. 책은 사유가 아니라 가구가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문장은 그 안에서 숨 쉰다. 예컨대 이런 문장. ‘사랑은 굴절된 빛처럼 아프다.’ 혹은 ‘눈을 감는다는 건 눈이 아니라 마음을 접는 것이다.’ 문장의 각도가 삶의 각도를 조정한다. 방향이 없던 날에도, 방향처럼 보이게 만든다. 은유는 방향 없는 사람에게 풍향계가 된다. 삶에 방향이 있는 척하게 만든다. 방향은 거짓이지만, 감정은 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욕망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은유로 말한다. 꿈은 대개 직설을 두려워한다. ‘사랑해’보다 ‘당신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가 오래 남는 이유다. 욕망은 직접 발화되었을 때 부끄러움을 초래한다. 그러나 은유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위엄을 갖는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가 아니라,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 비틀어 말하는 것이다. 은유는 마음의 자물쇠가 아니라 봉인이다. 쉽게 열리길 바라지 않으면서도, 언젠가는 읽히길 바라는 그런 글.



광장은 늘 구체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광장에서 외치는 말은 추상이어야 한다. 구체가 들리는 순간, 그건 신념이 아니라 논쟁이 된다. 은유는 구체를 추상으로 전이시켜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 나라는 거대한 입원실이다’라는 문장이 직접적인 항의보다 오래 기억된다. ‘당신의 무관심이 내 장례식보다 조용했다’는 문장은 설명보다 더 큰 진술이 된다. 은유는 저항의 다른 얼굴이다. 검열이 들어서지 못하는 틈새. 누구도 검거할 수 없는 진심의 밀수로 작동한다. 목소리가 아니라 침묵에 잠긴 외침이 더 먼 데 닿는다. 그래서 시는 혁명보다 더 오랫동안 사람을 흔든다.



문장의 리듬은 호흡을 조절한다. 호흡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거친 숨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감정을 호흡한다. 은유는 말을 전하지 않는다. 감각을 이식한다.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서를 체험하게 만든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문장은 독자의 것이 된다.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은유는 공유될 때 비로소 살아 있다. 감정의 독점은 오래가지 않는다. 공유된 감정만이 언어를 횡단할 수 있다. 읽는 사람이 살아내야 완성되는 문장. 그것이 은유다.



왕이라는 말은 권력보다는 구조에 가깝다. 은유는 모든 문장의 중심에 앉아 있다. 그러나 가장 은밀하게 존재한다. 누구도 그 자리를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감정이 그에게 복종한다. 말보다 더 오래, 눈물보다 더 깊게, 상처보다 더 정확하게 감정을 조율하는 것. 문장이 죽어도 남는 것. 작가가 사라져도 살아 있는 것. 언어가 진부해져도 여전히 처음처럼 작동하는 것. 감정의 보존 장치. 그 모든 이름 위에, 은유는 왕이다.

물속에 잠긴 말은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 목소리는 떠오르다 이내 사라지지만, 은유는 그 물의 바닥에 가라앉아 형태를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그 말이 처음 조형되었을 때의 떨림이 그대로 남는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비유는 깊은 밤의 별처럼 스스로 빛난다. 은유는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보다 더 깊은 층위에 존재한다. 감각과 감정 사이의 틈, 직설이 감히 건너지 못하는 심연의 다리 위에 놓여 있다. 그 다리를 건너는 자만이 타인의 내면에 무언가를 남긴다. 금박을 입힌 슬픔, 밀봉된 고백, 절단된 기쁨의 조각들. 은유는 말의 화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박동이다.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식. 그것이 바로 은유의 계율이며, 왕좌를 지탱하는 원리다.



이해되지 않는 말은 흔적을 남기지 못하지만, 감응된 문장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 사라짐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탐미적인 영향이다. 손에 닿지 않아서 더 오래가고, 입에 닿지 않아서 더 깊이 스민다. 문장은 종종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적절한 감정과 결합될 때 은유가 된다. 그 순간부터 문장은 문장이기를 멈춘다. 하나의 세계가 되고, 하나의 시간대가 되며, 한 사람의 삶을 뒤틀 수 있는 방향이 된다.



은유는 어떤 왕보다 강하다. 통치하지 않지만 지배하고, 명령하지 않지만 잠식하며, 증명하지 않지만, 진실이 된다. 은유는 말의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고요한 폭력이다. 그리고 그 침묵의 칼날 위에, 왕관은 언제나 반짝인다.



은유가 사라진 날, 말은 다시 소음이 되었고, 감정은 계량 단위로 환산되었다. 그날부터 인간은 침묵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문장은 왕이 아니라.



그냥 문장이 되었다.


이 글은 오늘 발행될 멤버십글과 관련된 예고편입니다.

긴 글 한께 해주신 것에 존경을 표합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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