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7화

아무도 보지 못한 연대

이름 없는 선의가 도시를 지탱할 때.

by 적적

살고 있는 건물의 1층엔 포차가 있다. 작은 주황색 천막, 바람을 막기 위해 덧댄 투명 비닐, 등줄기처럼 드리운 노란 전선과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조명. 평일 밤이면 제법 늦도록 술기운과 웃음소리가 번지지만, 일요일 밤만은 다르다. 밤이 오기도 전에 조용해진다. 휘어진 철제 의자들이 바닥에 닿는 소리를 내며 하나둘 포개지고, 어설픈 청소의 흔적만 남긴 채 문을 닫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남은 음식들이 나타난다.

밤을 더 검게...밤을 더 붉게


하루 동안 팔리지 못한 분식들은 정성스럽게 진공 포장된다. 모서리가 각진 투명한 비닐팩 안에서, 포장지 위에는 가격도 없고 설명도 없다. 그 음식들은 매번 같은 자리에 놓인다. 휑하니 닫히지 않는 찰재 프레임 위로 위태롭게 떠 있는 음식들은 아직 훨씬 뜨거운 체온을 지닌다. 누구나 지나치며 볼 수 있는 곳, 누구도 오래 바라보지 않는 곳.



그 음식들이 언제 놓였는지, 누가 가져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CCTV도, 경고문도 없다. 아무도 지키지 않지만,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누군가는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서 그 음식이 사라지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장면’을 본 사람은 없다. 항상 이미 사라진 후의 풍경만 존재한다. 어둠 속에서 음식만이 자취를 감춘다.



다음날 아침이면, 자리는 깨끗하다. 박스는 제자리에 있고, 포장지는 없다. 음식이 놓였던 흔적조차 없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온기와 누군가의 허기를 조용히 채워주고 사라진 자리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벽 햇빛만이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그 음식들을 누가 가져가는지에 대한 추측은 종종 이야기로 떠돈다. 인근 고시원에 사는 학생일 수도 있고, 늦게 귀가하는 택배 기사일 수도 있다. 새벽 청소를 마친 알바생이나, 출근길에 오르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들은 대체로 말이 없다. 가져갔다는 이도, 봤다는 이도 없다. 묻는 사람도 없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다. 음식은 소리 없이 놓이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 침묵이 마치 오래된 합의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말하지 않기로 한 계약. 누가 그 계약을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장면에는, 어딘가 이상한 질서가 있다. 가끔은 그것이 도시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 같기도 하다. 유통기한이 지나기 직전의 음식들, 아직 따뜻함을 지니고 있는 식은 시간들, 그 위태로운 유예가 아무 말 없이 건네지고 있다는 사실. 아무 대가도 없이 주고받는 그 짧은 순간 속에,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희미한 연민으로 이어져 있는지 엿보인다.



불평등하고 각박한 도시의 구조 속에서, 그 음식들은 작은 구멍 같은 존재다. 제도나 정책, 복지가 아닌, 익명성의 틈 사이에서 작동하는 비공식적 배려. 의도되지 않은 나눔. 더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증명되지 않는다. 그것을 가져간 이가 감사 인사를 남기지도 않고, 그것을 놓은 이도 ‘좋은 일 했노라’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익명으로 놓이고, 익명으로 가져가며, 그 익명이 모두를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매번 그 자리를 바라본다. 직접 손을 뻗지는 않지만, 그 사라짐을 목격한다. 아니, 사라진 ‘후’를 인식한다. 음식이 없는 아침, 달라진 건 없지만 무언가가 일어난 흔적을 감지한다. 사라짐의 풍경은 때로 등장보다 선명하다. 그런 장면은 사람의 의식에 이상한 흔적을 남긴다. 현실은 각진 사물과 숫자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중 일부는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움직임은 너무 작고 너무 조용해서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런 움직임이 도시에 남아 있는 온기다. 삶의 증거는 늘 공식 기록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다. 이름 없는 음식들이 사라지고, 이름 없는 사람들이 그 허기를 채운다. 증명되지 않는 행위는 언어보다 오래 남는다.



모두가 각자의 방 안에서 각자의 냉장고를 열고, 각자의 그릇에 담아 먹는 시대. 누군가에게 건네는 식사는 사라졌다. 식탁은 해체되었고, 공통의 시간을 나누는 행위는 드물어졌다. 하지만 일요일 밤마다 놓이는 그 음식은 아직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불이 꺼진 포차의 조명 아래, 식지 않은 온기를 가진 음식. 그것은 누군가의 밤을 버티게 해 줄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 기댈 어깨도, 말 붙일 사람도 없는 이에게, 이름 없이 따뜻한 대화처럼 남겨진다.



음식은 사라지고, 자리는 비워지고, 날은 다시 밝는다. 그러나 그 사라짐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도시의 밤은 매일같이 자신을 소비하며 살아남고, 그 속에서 어쩌다 한번 비워진 빈자리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놓여 있다. 포장된 음식, 그 안에 담긴 것은 식은 양념이 아니라, 말없이 견디는 마음이다. 아무도 몰랐지만, 누군가는 그걸 먹고 오늘을 버틴다.



밤의 유통기한은 짧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새로이 갱신된다. 남은 음식을 포장하는 손길, 그것을 조심히 꺼내는 손길, 아무도 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그 손길들은 긴 도시의 밤 속에서, 가장 작고 조용한 구조 요청과 응답이다. 언젠가 누군가 말했었다. “세상은 아주 작고 사적인 선의로 지탱된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밤의 사물들 사이에서,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떤 도시의 윤리는 완성된다.



아무도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래 남는다. 모든 것이 즉시 소비되고, 모든 행위가 즉시 촬영되고 기록되는 세계에서, 아무도 목격하지 않은 ‘사라짐’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다. 그 부재의 풍경 속에 어떤 온기가 있다. 음식이 사라지고 난 자리는 깨끗하게 비워지지만, 그 공백은 냉담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한 배려가 남아 있다. 누군가는 배가 고팠고, 누군가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혹은 너무 잘 알아서, 식은 음식을 포장했다. 그것을 먹은 이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고, 포장한 이는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나치듯 스쳐가며 이어낸 익명의 연대. 그것은 가난하거나 선하다는 말로 환원되지 않는다.



말보다 오래 머물고, 제도보다 먼저 작동한다. 일요일 밤의 포차 앞, 이름 없는 도시의 틈에서 누군가는 오늘을 견디고, 누군가는 오늘을 건넨다. 침묵 속에서 나누어진 것들은 언어보다 깊고, 자취를 감춘 행위는 종종 오래도록 기억된다.



결국 도시는 이런 식으로 지탱된다.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그러니 이 사라짐은 어떤 증거다. 서로를 직접 보지 않아도, 서로를 위한 일이 가능하다는 작고 확실한 증거. 오늘 밤도 누군가는 그것을 가져갈 것이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나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리는 비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은.




늘 그렇게 조용히 일어난다.


사진출처> 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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