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뒤편에서 자라는 감정
견갑골은 등을 닮지 않았다. 어깨와 팔 사이의 틈, 감정이 흘러나오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긴장하는 부위. 목덜미의 부드러움이 감정의 유입이라면, 유출을 감시하는 보초였다. 그곳은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움츠린 자리에 생기는 두 개의 날개뼈, 도망치지 못한 날개들의 흔적. 누구도 그 뼈로 날 수 없지만, 누구도 그 뼈를 부정할 수 없다. 한 번 움츠러든 감정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 붙어 식어간다.
견갑골은 말보다 먼저 반응한다. 목소리는 유예되지만, 뼈는 곧장 기울거나 굳는다. 미세한 비명을 내며 기울어지는 그 뼈의 경사에는 모든 대화의 원형이 숨겨져 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예감은 언제나 그곳에서 시작된다. 접촉 이전의 순간, 아무 말도 없이 등을 돌리는 뼈.
타인의 손이 닿으면 가장 먼저 움찔하는 것도 그곳이다. 거기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고이 앉아 있다. 어릴 적 병원에서 맞은 주사, 교실에서의 수치, 욕실 거울 앞에서 지나간 손가락. 기억들은 뼈를 지나가지 않는다. 단지 거기에 눌러앉는다. 견갑골은 말하지 않는다. 기억이 거기서 쪼그라들고 굳는 동안, 어떤 탄식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그곳은 장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심장은 고백을 원하고, 위장은 거절을 원하며, 폐는 한숨을 지지한다. 그곳은 단지 모든 감정을 통과시키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피하지도, 부르지도 않는 태도. 말없이 짊어진다. 손에 닿지 않는 뼈의 언어.
누군가의 등을 본다는 것은 견갑골을 읽는 일이다. 걷는 사람의 뒤편, 셔츠 사이로 솟은 윤곽이 흘러가는 걸음, 버스 손잡이를 쥔 손 위로 튀어나온 음영, 아무 말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의 굳은 각도. 거기에는 수백 번의 비밀이 드러난다. 피로, 침묵, 미세한 분노, 감춰야 했던 사랑.
등은 솔직하지만 견갑골은 냉소적이다. 등은 전체를 내어주고, 견갑골은 의심한다. 무게가 실릴까, 손이 닿을까, 누군가 기댈까. 그래서 늘 옆을 본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팔의 세계다. 주변을 감시하며, 감정을 조율하는, 뒤편의 관절.
사랑은 경유한다. 접촉이 없는 연애는 견갑골을 놓친다. 말로만 이루어진 사랑은 등 아래로 미끄러지고, 견갑골 위로는 닿지 않는다. 사랑이 등을 지나가야 비로소 반응한다. 왼쪽이 먼저 들리고, 오른쪽이 뒤따라 눕는다. 그러고 나서야 감정이 흐른다. 견갑골은 물꼬와 같다. 사랑의 방향을 결정짓는.
침묵하는 사람에게도 견갑골은 있다.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가끔 그 침묵은 눌려 있다. 너무 오래 그곳에 기대어 버린 어떤 무거운 말들이,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뼈의 온도를 따라 굳어간다. 그들은 말을 삼킨 자가 아니라, 말을 뼈로 이식한 자들이다.
말을 잃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돌계단 위로 쉬고 있는 그림자에도 견갑골은 있다. 거기에 앉은 기억은 소리 내지 않는다. 몸이 먼저 구부러지고, 뼈가 삐걱대며 반응한다. 공포보다 먼저 굳는 건 뼈다. 그 모든 감정 이전의 몸, 그 시작은 경련이다.
어떤 고백은 견갑골을 향한다. 눈빛이나 입술이 아니라, 등을 향한 고백. 뼈를 어루만지지 않으면 닿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그 모든 섬세한 두려움, 말로는 포착되지 않는 거절의 전조. 등 뒤에서 등을 쓰다듬을 때에야 경계를 허물고, 언어의 전조를 수락한다.
침대 위에서 등을 맞대는 사랑은 견갑골끼리의 대화다. 목소리 없는 감정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충돌하는 순간. 입맞춤보다도, 손보다도 솔직한 뼈의 교류. 거기에는 무수한 말이 피어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견갑골은 음소를 거부한다. 의미 없는 몸짓을 통해서만 의미를 전달하는 구조물.
영화 속 슬픔은 눈동자에 담기지만, 현실 속의 슬픔은 견갑골에 앉는다. 등을 돌리는 순간, 그것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돌아서지 않아도 이미 떠나버린 뼈의 방향. 그 방향은 거절도, 수락도 아닌 어중간한 각도. 사랑은 늘 그 어중간함에서 망설인다.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어 머뭇대는 그 사이, 긴장하고, 무너진다.
피곤한 날의 끝에서 가장 먼저 처지는 것도 견갑골이다. 어깨가 늘어지고, 팔이 무너질 때, 뼈는 흘러내린다. 그 안에 남은 감정의 잔해들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고독은 견갑골에 눌러앉는다. 고독한 사람은 등을 세우지 못하고, 뼈를 펴지 못한다. 단단하게 고개를 들고 있어도, 등 아래의 뼈는 굽는다.
모든 관계는 견갑골의 소묘다. 다정한 사람은 그 뼈를 다치지 않게 안고, 폭력적인 사람은 그 뼈부터 내리친다. 말보다 먼저 닿는 폭력이 향한다. 그래서 그곳은 상처의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견갑골을 한 번도 쉬게 두지 않는다. 뼈마저 긴장한 삶.
유년의 공포도 견갑골에 남는다. 밤마다 등을 돌리고 자야 했던 두려움, 베개에 눌린 감정들, 울음을 삭이던 그 자세. 성장하는 동안 뼈는 굳는다. 감정은 가라앉고, 기억은 음영으로 남는다. 견갑골은 울지 않는다. 울지 못한 감정의 두꺼운 막.
누군가를 완전히 떠올릴 수 없는 이유는 견갑골 때문이다. 얼굴은 기억되지만, 뼈의 음영은 잊힌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감정은 언어가 아니라 촉각의 기억, 등을 향한 손의 기억. 그 손이 지나간 뼈는 입을 다문다. 어깨뼈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기억을 보존한다.
어깨뼈는 은밀하다. 안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련을 숨기고, 단단한 외피로 감정을 가둔다. 그곳에 눌린 말들은 언젠가 다시 움직이겠지만, 결코 말로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등을 떠올릴 때, 그 뼈의 기울기, 그 침묵의 각도는 다시 몸 안으로 침투한다. 단어로 바꿀 수 없는 무게로.
사랑이 끝날 때, 사람들은 얼굴을 기억하지만, 등은 놓친다. 가장 마지막에 놓치는 것은 견갑골이다. 등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뼈는 이미 등을 굽히고 있었다. 그래서 이별은 늘 예감보다 빠르다. 뼈는 입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어느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누군가의 뼈가 침묵을 풀지 못한 채 숨을 죽일 때, 거기에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남는다. 말을 잃은 고백. 그것은 여전히 견갑골에 눌려 있다.
견갑골은 영원히 정면을 모른다. 등은 한 번도 앞을 향해 열린 적 없고, 그 뼈는 오직 지나간 것들, 떠나간 감정들, 닿지 않은 손의 기억만을 품는다. 얼굴이 발화라면, 견갑골은 발화를 삼킨 자리. 말로 터뜨릴 수 없었던 감정의 농도들이 가라앉아, 조용히 결절을 만든다. 수많은 말들이 뼈를 지나지 못하고 무너졌다. 하지만 모든 진실은 그곳에 닿아야만 비로소 실재한다. 고백보다 늦게 도착한 손, 혹은 너무 일찍 등을 돌린 손. 감정은 시간보다 뼈에 더 민감하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품었던 사람은 등을 펴지 못한다. 말 대신 뼈로 기억한 감정은 쉽게 녹지 않는다. 누구도 그 뼈를 정확히 위로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뼈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다. 언어는 늘 전방을 향하지만, 견갑골은 오직 후방만을 기억한다. 거기에는 뒤돌아선 이들의 체온, 다신 오지 않을 목소리, 말하지 못한 수백 개의 사과가 눌려 있다. 너무 늦은 애도처럼, 뼈는 늘 한발 늦다. 하지만 정확하다. 등에서 무너진 감정만이 진짜다.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를 기억할 때, 언어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뼈의 각도다. 눈길이 아닌 무게, 말이 아닌 기울기. 그리고 그 기울기엔 말보다 더 많은 것이 남는다. 고개를 돌렸다는 사실보다, 그때 등을 보였다는 기억. 말로 건넬 수 없는 후회의 총량이 그 뼈에 앉는다. 슬픔은 어깨 위로 흐르지 않는다. 슬픔은 견갑골 아래에서 엉긴다. 그곳에서 식은 감정은 굳고, 굳은 감정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다. 뼈가 받아들인 감정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발화의 실패가 아니라, 침묵의 완성이다.
사랑의 잔해는 얼굴이 아니라 등에서 발견된다. 그 사람이 걸어가던 방식, 기다리던 자세, 문득 굽은 뼈의 음영. 누구도 사랑의 끝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뼈의 기울기로 예감했다. 견갑골은 정직했다. 말로 끝나지 않는 감정들만이 거기에 남았다. 그래서 등은 가장 오래된 기록지이며, 견갑골은 모든 침묵의 보관소다. 버려진 말들, 가라앉은 눈빛들, 외면한 손길들이 모이는 곳. 말로는 닿지 못한 사랑이, 뼈에 눌린 채로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마침내, 완전히 등을 돌린 밤이 온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목소리를 남기지도 않고, 그저 뼈를 닫은 채 지나가는 사람. 그 뼈를 안았던 손은 오래전 온도를 잃고, 뼈를 바라보았던 눈은 감정을 해석할 수 없다. 하지만 견갑골은 알고 있다.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말하고 싶었던 어떤 애도의 형태였다는 것을. 그저 끝내 말이 되지 못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누군가는 등을 기억한다. 얼굴도, 이름도, 대화도 잊었지만, 어느 저녁, 지하철역의 불빛 아래, 가볍게 솟은 뼈의 실루엣. 다시는 닿지 않을 거리에서 무너졌던 감정의 단면. 그것이 날개뼈의 언어다. 한때 그 뼈에 실렸던 무게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이해하는, 침묵의 방언. 단 하나의 고백조차 없었지만, 모든 고백이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
견갑골은 말을 믿지 않는다. 언어는 흐르고, 표정은 변한다. 하지만 뼈는, 말이 되지 못한 감정만을 남긴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가장 오래 남는 사랑의 형태다. 아주 오래된 밤처럼, 잊힌 척하며 남아 있는 것. 누군가의 손이 다시는 닿지 못할 그 뼈의 경사 위에서, 여전히 멈추지 못한 고백 하나가.
기울어진 채 식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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