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려 있는 뼈

오래된 진심은 끝내 말해지지 않았다

by 적적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 남은 열은 쉽게 식지 않는다. 미골은 천천히 식어가는 그 온도를 오래 기억한다. 쿠션의 감촉보다, 천의 마찰보다 오래 남는 건 그 온도가 품고 있던 무게다. 무게는 뼈에 닿은 감정의 총량이다.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기관이다. 미처 말로 옮기지 못한 애착, 앉아 있는 동안 휘청였던 마음의 중심, 엉덩이와 등뼈 사이 어딘가에서 갈피를 잃은 긴장과 욕망이 내려앉는다.


직립보행의 흔적은 끝에 남는다. 목이 어긋나거나 척추가 휘는 것은 종종 바깥의 문제지만, 통증은 안쪽에서 온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골짜기, 몸의 가장 아래에 붙어 있지만, 어쩌면 마음의 가장 깊은 뿌리로 연결된 그 부위를 의식하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진짜 고요는 언제나 그곳에서 자란다. 요동은 미골을 따라 번지고, 숨겨진 것들은 그 곡선의 끝자락에 오래 머문다.



사람들은 앉는다. 걱정 위에 앉고, 기다림 위에 앉고, 벗어나고 싶은 기억 위에 앉는다. 의자는 무표정하지만, 미골은 그렇지 않다. 매끈한 표면 위에서도 불편함은 곧장 감지된다. 작은 찔림에도 반응하고, 얇은 쿠션 아래로 스며드는 감정의 불균형을 읽는다. 척추가 긴장하는 순간, 저릿한 전율처럼, 순간적인 낙하처럼.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경계가 신경에서 자라난다.



뼈는 말이 없다. 뼈는 증언하지 않는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항의한다. 오래된 의자, 금이 간 바닥, 찌든 공기 속에서 오래도록 버티며 고백의 순간을 기다린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것들이 쌓일 때, 고통이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기억보다 정직하다. 거짓을 허락하지 않는 부위. 억누를수록 또렷해지는, 무의식의 형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고백의 말단.


미골이 반응하는 날은 있다. 어떤 계절의 습도, 오래된 냄새, 유리컵의 결, 음악의 잔향.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순간, 그곳은 움찔하며 반응한다. 전혀 무관한 장면 속에서도 통증은 되살아난다. 엉덩이를 살짝 틀고 앉는 자세,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버릇, 오래전 익숙했던 누군가의 앉은뱅이 습관. 그것들은 모두 아로새겨진다. 그리움보다 오래 남는 건 앉은 자세의 기울기다.



가장 인간적인 자세는 앉아 있는 모습이다. 직립이 자랑이라면, 착석은 부끄러움이다. 감정은 서서 흐르지 않는다.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휘어진다. 등뼈를 따라 내려간 생각은 그 마지막 마디에서 방향을 바꾼다. 돌아가지 못한 말, 끝내 발화되지 못한 욕망은 그곳에 눌린다. 무게를 안다. 사랑은 어깨에 지워지지만, 끝내 말해지지 못한 사랑은 쌓인다. 굳은살처럼, 앉을수록 깊어지는 침묵처럼.



어떤 마음은 늘 어긋난다. 허리를 펴도 펴지지 않는 의지처럼, 중심이 어디인지 몰라서 흔들리는 감정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마음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미골은 알고 있다. 마음은 늘 거기 있다. 허리 아래, 숨이 닿지 않는 곳, 지지받지 못한 시간이 굳어 있는 그 아래. 눈으로 보이지 않아 없다고 착각되는 자리.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기억을 놓치지 않았다. 눈물처럼 길게 남아버린 긴장, 닿지 못한 채 남겨진 욕망, 기댈 수 없는 허공의 끝.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아파서 말하지 못한 것이다.



침묵의 자세는 미골에서부터 시작된다. 등을 펴는 것도,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도, 다리를 꼬는 것도 모두 미골의 피드백이다. 그 모든 작은 조정은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한 몸의 기술이다.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척하는, 앉아 있으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의 기술. 그런 자세를 오래 유지하면 아프다. 감정을 억누른 자리는 결국 통증으로 돌아온다. 뼈는 기억의 증명서다. 어떤 척추는 너무 일찍 무너지고, 어떤 미골은 너무 늦게 아프다.


아무도 그 자리를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는 통증의 원인을 설명하고, 해부도는 그 끝마디를 ‘꼬리뼈’라 부른다. 하지만 꼬리의 방향은 앞으로 말려 있다. 도망치려는 마음이 아니라, 감추려는 본능이다. 보호가 아니라, 삭제다. 말의 꼬리를 자르듯, 감정의 마지막 문장을 없애듯. 미골은 자신을 숨긴다. 그러므로 아프다. 말하지 않는 자리는, 끝내 고백하지 않은 마음의 형태다.



그곳은 굴절된 진심이 가라앉는 웅덩이다. 부끄러움, 체념, 경계, 그리고 애틋함. 그것들은 말보다 오래 남아 미골을 눌렀다. 끝내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그 아래로 흐르고, 서서히 굳는다. 누구의 등도 의자에 완전히 닿지 않는다. 허리와 등 사이엔 늘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통해 자신만의 귓속말을 수신한다. 말할 수 없었던 그날의 표정, 고개를 돌리던 목덜미의 긴장, 문을 닫던 손등의 냉기. 그 모든 감각이 한 점으로 모인다. 뼈는 말을 삼킨다.



아무도 앉은자리를 되돌아보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대부분의 것들은 잊힌다.

그러나 미골은 다르다. 그 자리를 끝까지 기억한다. 가장 무의식적인 감정이 지나간 길. 표정보다 정직한 자세. 뼈는 반복된 감정을 외운다. 의자가 휘는 것보다 먼저, 마음이 휘고 있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다시, 같은 자세로 앉는다.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미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가장 끝, 가장 아래, 가장 말 없는 곳. 감정을 버티는 가장 마지막 곡선. 누가 다가와도 말하지 않고, 누가 떠나도 움츠러들지 않지만, 혼자일 때마다 천천히 진동하는 기억. 그것은 뼈의 언어다.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지만, 모든 감정은 거기를 지나갔지만, 결코 떠나지 않았다. 마음의 마지막은 항상 뼈의 말단에 숨어 있었다. 말보다 먼저 아프고, 눈물보다 늦게 반응하는 그 곡선. 그것이 그녀 마음의 미골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미골을 본 적이 없다. 거울 속에서도 그것은 스스로를 비껴 선다. 그것은 뼈의 안쪽에 감추어진 구부러진 침묵이며, 의식의 마지막 곡절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똑바로 세운 존재라 말하지만, 가장 내밀한 뼈는 안으로 말려 있다. 단 한 번도 펴진 적 없는 곡선, 누구에게도 펼쳐 보인 적 없는 내향의 기록. 그것은 욕망이 남긴 가장 오래된 서명이며, 고백하지 못한 감정의 곡선이다.



앉는다는 행위는 그 침묵 위에 몸을 포개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보다 오래 남는 건, 끝내 도달하지 못한 채 남겨진 미세한 감각의 앙금일지 모른다. 말의 형태로 떠오르지 못한 무수한 기척들, 허공을 스친 손끝의 방향, 웃음 뒤의 움찔거림. 그것들이 고스란히 미골로 내려간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축적한다.


사랑은 늘 척추의 곡선을 따라 흘렀고, 상실은 미골에 앉았다. 반복된 자세, 무의식적인 습관, 그 모든 것들은 말보다 정직하다. 바르게 앉지 못하는 건 자세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다. 바르게 앉으려는 그 순간마다, 말려 있는 뼈가 부드럽게 저항한다. 어느 문장도 끝내 닿지 못했던 진심,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자세의 곡률. 그 모든 게 거기 있다. 그래서 미골은 아프다.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 거기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마음은 말해지지 않았고, 가장 오래된 감정은 미골을 지나갔다. 사람은 앉고, 일어나고, 잊는다. 그러나 뼈는 잊지 않는다. 잊지 못하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말려 있는 단 하나의 뼈다. 그 뼈는 증언하지 않지만, 증오도 사랑도 그곳을 피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조용한 중심, 말없이 떠는 마음의 끝단이다. 그리고 끝내 누구도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미골은, 진심이 아니라.


진심의 실패를 기억하는.기관이기 때문이다.


혹은.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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