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자위로 실핏줄이 지나간다.
아침은 언제나 한 번 더 태어나는 시간이다. 두꺼운 어둠의 막이 걷히고, 아직 덜 깨어난 몸 위로 공기가 스며든다. 굵고 싱싱한 아침이 도착했을 때, 세상은 그 자체로 계란 껍데기처럼 반투명하다. 길 위를 지나가는 계란 장수의 외침은 아직 껍질을 깨지 않은 무수한 세계들이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의 목소리다.
모든 새는 제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해 둥지를 만든다. 그 둥지 안은 단단한 알처럼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세계다. 아침의 부엌에서, 그 작은 세계가 뜨겁게 달궈진 팬 위에 쏟아진다. 기름을 두른 금속의 표면은 우주처럼 고요하고 무심한데, 그 위로 흰 껍질이 부딪히는 소리가 터진다. 충돌과 동시에 내부의 고요한 우주가 흘러나와 지상에 흩어진다.
노른자는 살아 있는 행성처럼 팬 위에 안착한다. 탄력 있는 구체는 동맥을 흘러가는 피처럼 진하고 선명하다. 흰자는 얇은 막을 뚫고 번져 나와, 세상 가장자리를 지배하는 투명한 식물의 뿌리처럼 퍼진다. 고요했던 세계는 끓는 듯한 시간 속에서 흰 빛으로 질려가며 변색한다. 그 질려가는 흰색을 걷어내고 남은 것은 붉고 탄력 있는 작은 반구의 우주. 흔들리면서도 결코 흩어지지 않는 세상, 그 고유의 중력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세상.
두 번째 계란은 달랐다. 노른자가 이미 풀어져 있었다. 세계는 자기중심을 잃은 채 흩어져버렸다. 형태를 지키지 못한 우주는 이미 도착하기도 전에 무너져 있었다. 어쩌면 오늘 아침 굳이 계란 프라이를 원했던 이유는 이런 대비를 경험하기 위해서였을까. 탄력으로 살아 있는 세상과 이미 흩어진 세상의 기억을 동시에 품기 위해서였을까. 모든 것은 의도되지 않은 선택 속에서 흔적처럼 남는다.
병아리가 될 계획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생명은 부재 속에서도 세계를 구성한다. 깨지지 않은 껍질 안에서, 깨져버린 껍질 위에서, 세계는 다른 방식으로 열린다. 어쩌면 생은 언제나 부화하지 못한 알의 잔해에서 더 많은 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침의 부엌은 이미 작은 난항으로 가득했다. 불을 끄고, 팬을 치워두고, 문을 나서자 초가을의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겉옷을 걸치지 않은 몸이 계절의 경계들을 통과한다. 그늘은 초가을, 양지는 초봄, 손끝은 초겨울. 하나의 아침에 세 계절이 공존한다. 여름은 이미 몸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도깨비풀처럼 기억 속에서 따끔거린다.
문밖으로 나온 모란은 새로워진 공기를 맡는다. 세상은 한순간에 달라진다. 모란은 문 앞까지 다가왔다가 곧장 다른 쪽으로 달아난다. 붙잡아 집 안으로 던져 넣고 길을 걸으면, 지나온 모든 길이 봄으로 변한다. 오래된 코트 하나만 걸쳐도 계절은 바뀐다. 온도의 변화는 정온동물만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이다. 몸의 외피 하나로 세상의 계절을 바꾸어 체험할 수 있는 특권.
계절과 계절 사이의 좁은 틈에서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억지로 등록된 태권도 학원. 늘 쉬어 있던 관장의 목소리. 품띠 시험날, 장난처럼 날린 뒤돌려차기에 맞아 코피를 쏟던 아이의 얼굴. 그 이후로 붉은색은 오래도록 죄책감의 빛깔이었다. 미안함은 한 번 흘러내리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날의 피는 아직도 기억 속에서 마르지 않았다.
걷는다.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멈춰 서면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걸을 수밖에 없다. 앉으면 결코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안다. 그래서 걷는다. 발걸음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깨진 알 속에서든, 풀어진 노른자 속에서든, 붉은 죄책감의 기억 속에서든, 결국 삶은 걷는 동작으로만 이어진다.
샤워 후의 몸은 현실로 돌아온다. 꿈이 아니다. 그러나 꿈처럼 지루한 현실이 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아침을 챙겨 먹은 날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되돌아오지 않은 금요일 아침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길 위에 머물러 있다.
아침은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싱싱한 기운으로 도착한 하루는 껍질이 깨진 알처럼 불안정하고,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품는다. 팬 위에서 흩어지는 노른자와 흰자처럼, 계절의 틈에서 겹쳐지는 시간처럼,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형태를 잃는 동시에 또 다른 형태로 태어난다. 그 불안정함 속에서 삶은.
가장 단단하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