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웅덩이의 심장

일렁이는 빛의 축제

by 적적


비가 멎는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소리를 가득 채우던 빗방울이 사라지자, 도시는 잠깐 귀머거리처럼 멎는다. 하수구 속으로 삼켜지던 물줄기, 빗물에 젖어 퍼덕이던 나무 잎사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를 서성대던 자동차 바퀴의 수분 섞인 마찰음이 동시에 사라진다. 공기에는 아직 습기가 가득하고, 흙냄새와 철 냄새가 묘하게 뒤섞인다. 마치 오랫동안 잊힌 지하실 문을 열었을 때처럼 눅진하고, 그러나 이상하게 달콤하다.



그 멎은 공백 속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빛이다. 희미하던 붉음이 갑자기 불길처럼 번지고, 눌려 있던 노람이 번쩍이며 터져 오른다. 붉은 네온 간판은 비를 머금은 유리창에 겹겹이 반사되어, 한 글자가 열 개의 그림자로 번진다. 그것들은 마치 물웅덩이 속에서 새끼를 낳는 물고기처럼 끝없이 불어나, 하나의 단어가 수십 개의 의미로 증식한다. 노란 가로등은 젖은 아스팔트를 적셔 금빛 강물로 바꾼다. 지나가는 차의 바퀴가 그 위를 스칠 때마다, 노란 물결은 바닥에서부터 공중으로 튀어 올라 허공에 부유하는 듯하다.


붉은빛은 차갑지 않다. 그것은 젖은 피부에 닿는 순간, 미열처럼 스며든다. 그 빛에 적신 건물의 외벽은 오래된 상처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건물마다 저마다의 흉터가 있고, 빛은 그것들을 은폐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한다. 금이 간 벽돌 틈, 녹슨 철문, 유리창에 비친 낯선 그림자까지 모두 붉게 채색된다. 마치 도시 전체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 피는 절망의 피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분출되는 열기처럼, 도시는 붉은빛으로 자신의 생을 고백한다.



노란빛은 더 불안하다. 그것은 따스하면서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가로등 불빛은 바람에 젖은 나뭇잎을 타고 깨끗이 부서지며, 그 조각들은 땅 위에서 다시 모여 번쩍거린다. 이 노람은 안정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경고등처럼, 잠시 후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을 품는다. 그 불안이야말로 노란빛의 본질이다. 무너질 듯 불안정하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사라질 듯 흔들리기에 더 눈부시다.



비가 색을 지운 시간 동안, 사람들의 감각도 봉인되어 있었다. 색을 잊은 눈은 빛의 복귀 앞에서 갑작스레 깨어난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물방울 하나조차 과장되게 눈에 들어온다. 흡사 유리병 속에서 긴 시간을 갇혀 있던 이가 문을 열고 나온 순간, 공기의 미세한 입자조차도 새로운 촉감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붉음과 노람이 그토록 강렬한 이유는 단순히 빛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결핍 뒤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비가 멎은 도시를 걷다 보면, 발밑의 웅덩이가 가장 충실한 거울이 된다. 붉은 네온은 그 안에서 파편이 되고, 노란 가로등은 길게 늘어진 금사슬이 된다. 웅덩이는 빛을 단순히 비추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찢어 조각낸다. 그 조각들은 흔들리는 표정처럼 일정하지 않고, 바람 한 줄기에도 갈라졌다 합쳐졌다 한다. 빛은 물 위에서 스스로를 해체하고 다시 합성하는 존재가 된다. 마치 하나의 붉음과 노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작은 생명으로 나뉘어 부유하는 듯하다.


이 순간 도시의 얼굴은 과장된다. 붉은 미등을 켠 택시가 지나가면, 그 불빛은 젖은 도로 위에서 두세 배로 길어져 뒤따라온다. 신호등의 노란 불빛은 사라지기 전의 단말마처럼 강렬하게 깜박인다. 작은 카페 창문 너머의 노란 전구 불빛조차 한 폭의 그림처럼 과잉된 온기를 발산한다. 평소에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장면들이, 비가 멎은 직후에는 극장의 무대처럼 보인다. 일상은 잠시 연극적 과장 속에 들어선다.



붉은빛은 감각의 가장 깊은 층을 자극한다. 그것은 단지 시각의 사건이 아니라, 후각과 청각까지 동반한다. 붉은 네온 불빛은 희미하게 달군 철 냄새를 떠올리게 하고, 붉은 간판에 비친 그림자는 심장이 뛰는 소리를 환기한다. 그 빛은 사람들의 몸에 숨어 있던 원초적인 기억, 피와 열, 입술과 상처를 소환한다. 노란빛은 다르다. 그것은 불안의 미세한 진동이다. 오래된 전구가 곧 꺼질 것 같은 불안, 낯선 골목길을 걸을 때의 신중한 발걸음. 그 노람은 단지 눈에만 머물지 않고, 피부 위에 미세한 떨림으로 내려앉는다.


이 붉음과 노랑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존재의 은유다. 붉음은 상처받음을 감수하고도 살아내는 용기의 색이다. 노람은 무너질 가능성을 품고도 따스함을 포기하지 않는 불안의 색이다. 비가 멎은 도시가 더 붉고 더 노랗게 빛나는 이유는, 삶 자체가 그런 구조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억눌림 뒤에 폭발, 소멸 뒤에 생성, 침묵 뒤에 고백. 비는 단지 색을 지우는 사건이 아니라, 색을 되찾는 감각의 장치다.



도시는 곧 다시 평온해질 것이다. 물기는 증발하고, 네온 불빛도 다시 평범해지고, 사람들의 눈동자는 익숙함에 무뎌진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삶이 잠시 다른 얼굴을 허락한다. 그친 비 사이로 스며든 붉음과 노람은, 덧없음 속에서만 가능했던 찰나의 축제다. 그 축제는 사라지지만, 사라졌기에 더 깊이 새겨진다.



그리고 다시 비가 내릴 것이다. 또다시 색은 지워지고, 도시는 회색의 스크린 속에 잠길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올 것을 이미 안다. 더 붉게, 더 노랗게. 억눌림 뒤에 돌아올 폭발, 침묵 뒤에 이어질 고백.



삶은 늘 그친 비 사이에서 빛을 얻는다.



사진 출처> pinterest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부재의 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