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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인사.

빛은 가장 차가운 온도에서 완성된다.

by 적적


햇살이 강렬할수록 공기는 식어간다.



온기는 더 이상 피부 속에 머물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빛은 여전히 눈부시지만, 그 아래의 그림자는 더 길고 차갑다. 이 계절의 모순은 바로 거기에 있다. 햇살은 뜨거워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식어간다. 사람의 얼굴, 대화의 온도, 손끝의 체온까지도.



10월의 마지막 주는 언제나 조금 늦게 오는 계절 같다. 이미 가을은 충분히 깊어졌고, 나뭇잎들은 제 몸을 내려놓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세상은 잠시 머뭇거린다. 완전히 겨울이 되기엔 아직 이르다고, 아직 눈부신 햇살이 남아 있다고 말하듯. 그러나 그 망설임이야말로 가장 차가운 온도다. 이미 떠나야 하는 것을 붙잡는 손끝에는 더 깊은 냉기가 스민다.



길 위의 나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초록의 기억을 버리지 못한 잎들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것은 생의 마지막 반짝임이자, 스스로를 태워내는 몸부림이다. 한때 푸르렀던 것이 이제는 금빛으로,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사라진다. 그렇게 단풍은 죽음을 아름답게 연기한다. 이토록 찬란한 시든 아름다움이 있을까.



도시의 거리는 여전히 분주하다. 카페의 테라스에는 햇살을 등에 지고 앉은 사람들이 커피를 식힌다. 웃음소리와 대화의 파편들이 공중에 흩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이미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다. 계절의 끝에서 사람들은 알지 못한 채로 약속을 미룬다. 이 계절이 끝나면 만나자, 겨울이 오면 다시 보자, 따뜻한 날에 이야기하자. 하지만 그 따뜻한 날은 언제나 오지 않는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그때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햇살은 무심하게 사람들의 어깨를 스친다. 그것은 온기를 주는 손길이 아니라, 잊어야 할 것들을 더 선명히 드러내는 조명처럼 느껴진다. 빛은 진실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빛 아래에서 거짓은 더 또렷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의 뒤편에는 이미 식어버린 무언가가 있다. 10월의 빛은 그런 것을 숨기지 못하게 만든다.



바람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기억들이 섞여 있다. 오래된 이름, 끝난 대화, 사라진 향기들이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낀다. 그것은 실제의 누군가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그때의 공기, 그때의 자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바람 속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밤이 일찍 찾아온다. 가로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둠을 견디지만, 빛이 강할수록 주변의 어둠은 더 짙어진다. 거리의 유리창 속에서는 각자의 시간이 반사된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컵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전화기 화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모두가 잠시 멈춘다. 멈춤은 사라짐보다 더 큰 침묵이다. 계절의 마지막 주에는 그 침묵이 유난히 또렷하게 들린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지만, 이 주간의 시간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시계는 분을 가르지만, 마음은 그보다 훨씬 느리게 간다. 변화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둔감해진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직 발을 떼지 않는다. 그런 머뭇거림이야말로 가을의 표정이다.



햇살은 눈부시지만, 그 눈부심 속에는 차가움이 숨어 있다. 빛이 사라진 후 남는 잔열은 이미 생의 온도가 아니다. 그것은 작별의 온도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 손끝에 남는 체온처럼,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온기. 그 미묘한 온도 차가 이 계절을 가장 정확히 정의한다.



하늘은 투명하다. 그 투명함이 주는 감정은 맑음이 아니라 공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일수록, 무언가는 사라진다. 거리의 사람들, 낙엽, 대화, 웃음소리 모든 것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이지만, 손을 뻗으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투명함은 결국 비어 있음의 다른 이름이다.


10월의 마지막 햇살은 모든 것을 비춘다. 그 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잃은 것의 형태를 본다. 그것은 오래된 편지처럼 희미한 색을 띠고, 이미 마른 향기를 풍긴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잃어버린 것들은 여전히 그 안에 머문다. 마치 한 문장의 쉼표처럼, 문장은 끝나도 여운은 남는다.



이 계절의 본질은 끝남에 있다. 그러나 그 끝은 소멸이 아니라 변형이다. 떨어진 잎은 썩어 흙이 되고, 그 흙은 다시 생명을 품는다. 사람의 감정도 다르지 않다. 식어버린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꿔 다음 계절의 밑거름이 된다. 다만 그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가을의 끝은 언제나 조금 아프다. 변화가 아니라 변형이기 때문이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다. 하지만 그 눈부심은 여름의 것과 다르다. 그것은 따뜻함의 약속이 아니라, 냉기의 예고다. 빛이 이렇게도 강한 이유는, 곧 다가올 어둠을 견디기 위해서다. 세상은 사라질 준비를 마쳤다. 나무는 잎을 버리고, 사람들은 기억을 내려놓는다. 모든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남긴다. 그것이 가을의 생존 방식이다.



이 시점에서, 모든 온도는 반대로 움직인다. 햇살이 강할수록 공기는 차갑고, 웃음이 커질수록 마음은 비어 간다. 남아 있는 것들은 자신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주의 공기에는 묘한 정직함이 깃든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과장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은 제 온도 그대로 드러난다. 뜨겁지도, 완전히 식지도 않은 채로.



계절의 끝은 언제나 조용하다. 사람들은 그 조용함을 외로움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연의 호흡일지도 모른다. 끝은 소음이 아니라, 정지된 숨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세상은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의 틈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스며든다.



10월의 마지막 주에는 모든 것이 반투명하게 빛난다. 잎사귀, 공기, 사람의 표정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완전히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애매함 속에서 계절은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완전한 끝도, 완전한 시작도 아닌 그 사이. 그것이야말로 삶이 머무는 자리다.


햇살이 눈부셔 더 차가운 날.


그날의 공기 속에는 지난 계절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다.


그 숨결은 말없이 세상을 덮고,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모른 채로, 그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것이 이 계절의 방식이다. 눈부시게 차가운,


차가워서 눈부신 하루의 기록.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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