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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 판단할 거면

시가 결론을 거부하는 방식

by 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qJ_Tw0w3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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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혀처럼 들어온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은 채. 입술 사이의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하면, 그곳을 기억해 두었다가 어느 날 밤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혀는 늘 촉촉하고, 시도 그렇다. 건조한 사상이나 논증은 입안에서 부서지지만, 시는 침을 동반한 채 들어와 점막을 더듬는다. 그것은 의미 이전의 접촉이며, 해석 이전의 온도다. 혀가 들어오는 순간, 입안은 말을 준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잠시 멈춘다. 침묵은 혀를 위해 마련된 공간처럼 벌어진다.


혀는 단어를 맛본다. 단어는 씹히기 전의 음식처럼 본래의 형태를 유지한 채 입안에 놓인다. 시는 그 단어를 씹지 말라고 속삭인다. 오래 굴리라고, 혀 아래에 숨겨두라고 말한다. 그때 단어는 뜻이 아니라 질감으로 남는다. 단단한 자음의 모서리, 모음이 남기는 미끄러운 잔향, 치아와 혀 사이에서 잠깐 망설이다 사라지는 소리의 파편들. 의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아마도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 혀는 도착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저 머무른다.



혀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혀가 처음 닿았던 음식의 온도, 너무 뜨거워 데었던 순간의 통증, 설탕이 녹으며 남긴 둔한 단맛. 시도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기억은 사건이 아니라 흔적에 가깝다. 무언가 지나갔다는 표시, 한때 여기에 있었다는 얇은 선. 시를 읽고 나면 무엇을 느꼈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무엇이 지나갔는지는 알 수 있다. 혀가 지나간 자리에는 침이 남고, 시가 지나간 자리에는 문장이 남는다. 그 문장은 설명하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혀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입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혀는 늘 같은 궤적을 반복한다. 이 반복은 습관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시도 그렇다. 시는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한다. 반복은 감정의 증폭이 아니라 흔적의 확인이다. 여기가 입안이라는 사실, 여기가 언어의 내부라는 사실을 다시 만져보는 행위. 같은 문장이 돌아오면, 그것은 다시 말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복은 집착이 아니라 잔존이다.



혀는 외부를 모른다. 혀에게 세계는 입안의 크기만큼만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작은 공간에서 혀는 우주를 만든다. 혀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는 진동하고, 그 진동은 소리가 된다. 시는 그렇게 작은 우주를 만든다. 한 편의 시는 방 하나만 한 세계다. 그 안에는 날씨가 있고, 그림자가 있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중력이 있다. 그 세계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문장을 읽고 나서 다시 돌아가면, 그 문장은 이미 다른 위치에 있다. 혀가 같은 자리를 다시 만지지 못하듯, 시도 같은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다.



혀는 상처를 알고 있다. 혀는 가장 빨리 다치고, 가장 늦게 잊는다. 날카로운 뼈 조각에 베인 자리, 잘못 씹은 치아의 압력. 시에도 상처가 있다. 시는 완결되지 않은 문장, 일부러 남겨둔 공백을 통해 상처를 보존한다. 그 공백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형태를 유지한다.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흔적이 된다. 시는 아물지 않기를 선택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혀는 말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혀는 말하지 않는다. 말은 혀를 통과하지만, 혀는 늘 한 박자 늦는다. 시도 그렇다. 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을 더 오래 붙잡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행과 행 사이의 공기. 그 공기는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다. 혀가 잠시 멈출 때 침이 고이듯, 시의 공백에는 시간이 고인다. 독자는 그 시간에 발을 담근다. 젖은 양말처럼, 불편하지만 쉽게 벗을 수 없는 상태로.



혀는 판단하지 않는다. 단맛과 쓴맛을 구분할 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말하지 않는다. 시도 판단을 유보한다. 시는 윤리적 결론을 내리지 않고, 교훈을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상태를 제시한다. 비 오는 날의 창문처럼, 닫혀 있으나 투명한 상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각자의 시력에 맡겨진다. 혀는 맛을 전달할 뿐, 그 맛에 대한 의견을 붙이지 않는다.



혀는 타인의 것이다. 누군가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은 언제나 낯설다. 시도 그렇다. 시는 늘 타인의 언어로 다가온다. 아무리 익숙한 단어라도, 시 속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름을 알고 있지만 성격은 알 수 없는 상태. 그 낯섦이 시의 윤리다. 시는 이해되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혀가 서두르지 않듯, 시는 천천히 입안을 점령한다.



혀는 사라지지 않는다. 잠들어도, 침묵해도, 혀는 그 자리에 있다. 시도 읽히지 않는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책장 사이에서, 메모장 한 구석에서,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가능성이라기보다 잠복에 가깝다. 언제든 다시 입안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 혀는 언제나 입안의 중심에 있고, 시는 언제나 언어의 중심에 있다.



혀가 빠져나간 뒤에도 입안은 그 감각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침의 온도, 점막의 미세한 떨림, 말이 나오기 직전의 긴장. 시를 덮은 뒤에도 문장은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결론이 아니라 잔여다. 아직 식지 않은 상태,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상태. 입안은 조용히 닫혀 있고, 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남아 있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유지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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