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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Feb 27. 2021

미스터 증조할아버지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셨다.

그의 일대기가 기록된 문서를 읽어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데 위인전기를 읽는 것처럼 비현실적고 비장하다.


일본기간  파괴에 주력이라니...


유해조차 찾을 수 없었던 그분을 80년 만에 나라에서 예우를 해주었다. 위패로나마 고국의 국립현충원에 안장이 되신 것이다. 그 후 모이기에 힘쓰고 저장과 기록에 진심인 자손들이 힘을 모아 책을 만들었고(말하자면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세미나를 열고 증조할아버지 일생을 독립 출판하여 나누어가) 비석과 표지판이 세워졌으며, 독립기념관에 자료들을 기증해서 상설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나마 자료가 남겨져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마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그마저도 하기 힘들겠지. 진짜 영웅은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다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갔다 하던데.

아무튼 이러한 증조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그게 마땅한데 사실 별다른 감흥은 없고 그동안 오히려 원망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남겨진 증조할머니의 인생이 너무나 안쓰럽다. 증조할아버지는 휘몰아치는 정세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워야 했는가보다. 결혼을 고 1년도 되지 않아 뱃속의 아들을 가진 아내를 고는 홀연히 만주로 떠나버다. 그곳에서 전투 중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된 후 고문끝에 병을 얻어 죽어갔으니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날벼락 같은 불행이었을까. 


그 험한 시절에 여자 혼자 아들 하나를 키우며 은 고생을 다 했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만주에서 날아든 편지는 이러하다 한다.



독립은 이루지고 못하고 감옥에서 고초로 병들어 죽을 날은 머지않았고 초라한 여관방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들에게 써 내려간 글씨.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아비에게 의존할 생각 말고 자립하여라...



아들에게는 냉정하고 막막했을 한 마디.




마지막으로 이러한 편지를 남기고 증조할아버지 결 사망했다. 남아있는 다른 편지들에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는 문장이 여러번 나오는 것을 보면 죽기 직전까지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을 낙심하고 자책하셨던 것 같다. 전보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아들은 훗날 어렵 만주로 가서 아버지가 머물던 여관 앞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왔.

그때 나이가 21세,

한번도 본 적 없고, 불러보지도 못한 아버지 그렇게 이별한 것이다.




어릴 때 제사 때마다 보는 사진 속 증조할아버지의 모습은 흡사 요즘 드라마 속 독립운동가 남자 주인공 행색 그대로였다. 젊고 잘생긴 얼굴에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콧수염까지 멋들어지게 길렀으며 양복 정장 차림이다. 그에 비해 증조할머니는 암만 봐도 볼품이 없다. 쪽진 머리에 한복 차림. 표정도 어둡고 어딘가 구슬프다. 매캐한 향 냄새 속에서 우리 엄마가 종일 애써가며 올린 제사음식 위에서, 내내 머리를 조아리는 후손들을 내려다보는 증조할아버지의 표정은 마치 "내가 나라를 구했으나 너희는 구하지 못하였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증조할아버지가 그렇게 머나먼 만주 땅에서 돌아가신 이후로 자손들의 형편은 영 좋지 못하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평생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애썼고 자료 소중하게 보관하며 후세에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라 소망하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증조할아버지는 대통령 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로 지정이 되다. 그때부터 보상금과 연금 지급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오직 장남에게만 해된다는 것.

법이 그렇다고 하네요. 할말하않...

고로 차남이었던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남은 5남매 형제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이쯤 되니 독립운동가를 그려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한 마디쯤 해주고 싶다.
있잖아요, 친일을 하면 대대손손 잘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그리들 애쓰고 있나요?


그것은 남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못한 솔직한 나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대한의 청년으로 태어나 누군가는 목숨 걸고 나라를 위해 애쓰다가 쓸쓸히 죽어나가고 누군가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자손대대에게 물려줄 부를 축적한다.

만약 나에게 대의명분을 위한 삶과 나와 가족을 위한 삶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물론 나라를 구해야 가족도 구할 수 있겠지만 그걸 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라 말할 게 분명해.

그런데 몇 년 전 화제 속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화를 시청하다가, 브라운관 너머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코웃음 치며 관망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고야 말았다.


아, 민초들의 삶은 역시 너무 어려워, 고단해, 늘 산 넘어 산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네.

조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그대로 실현해나가는 신념이, 생각하는 대로 살다가 죽는 용기가, 나에게는 결코 없는 생에 대한 뜨거움이,

저 처절함이. 참으로 아름다워.

그리고 그게 바로 나의 증조할아버지, 그분의 인생이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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