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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핑크 Jan 14. 2019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지금도 가끔은 후회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내가 딩크족인 것을 알면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그래서인지 N포털 사이트에 "딩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후회"란 말이 딸려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딩크족으로 살면 당장은 좋더라도 나중에 외롭고 후회할까봐 걱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말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부의 가치관 및 생활 방식은 아이 없는 삶과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든다. 지금 행복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딩크 부부로 살 계획이다. 하지만 단 한번도 후회를 한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며칠전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크게 다투었다. 주제는 부모님의 노후 문제. 


칠순이 넘어도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거침이 없는 우리 엄마 아빠. 그래서인지 '노인'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다. 반면에 시부모님은 대화를 하다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깊은 삶의 지혜를 갖고 있지만 인터넷, 운전 등은 전혀 못하신다. 그런 시부모님이 따라잡기에 현대 사회는 너무 빨리 급변한다.


건강도 우리 엄마, 아빠보다 안좋은 시부모님. 그래서 '부모님의 노후'가 먼 미래의 고민이었던 나와 달리 남편은 늘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무거워도 그렇지.


"내가 결혼 안하고 엄마, 아빠 챙기면서 셋이서 살면 이런 걱정도 안 할 텐데"


이런 말이 남편 입에서 나왔고 나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나와 결혼해서 후회한다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 나와 이혼하고 부모님을 챙기면서 셋이서 살고 싶다는 말일까. 


그때 생각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있었다면 남편은 자신이 꾸린 가정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럼 이런 무책임한 말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딩크족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겁이 났다. 절대 그럴리 없다며 흘려들었던 '딩크족도 마흔이 넘으면 부부 사이가 멀어지며 꼭 후회한다' 는 말이 기억 저편에서 소환됐다. 


남편에게 따졌다. 그렇게 말하면 나의 의미는, 우리가 7년 동안 보냈던 시간은, 결혼 30주년 기념 캐나다 기차여행을 위해 지금부터 모으고 있는 적금은, 서로의 장례 방식까지 꼼꼼하게 계획했던 우리의 미래는 뭐가 되냐며 나는 밤새도록 펑펑 울었고 남편은 잘못했다며 다음날까지 싹싹 빌었다. 문제의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는 자신의 나쁜 버릇 때문에 맘에도 없는 소릴 했다고 했다. 만약 나와 헤어지고 부모님을 봉양하며 살았다면 이번엔 부모님 때문에 아내와 헤어졌다며 부모님을 원망했을 거라고. 이런 자신의 못난 점을 뜯어고치겠다고 거듭 사죄했다. 


밤새도록 그치지 않던 눈물과 우울한 기분은 다음날 남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깐쇼새우를 사주면서 조금 누그러들었다. 


한편으로 참 이상했다. 왜 나는 거기서 아이를 떠올렸을까. 우리가 싸운 이유가 아이 때문도 아닌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는 남편은 아이가 있어도 저런 말을 할 철딱서니인데.


세간의 말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신비감, 두근거림, 신혼 초의 설레던 감정이 사라지면서 소원해지는 딩크 부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부부 사이에 있었던 여러 문제를 제때 적절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단지 '아이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나와 남편이 지난 밤 다투었던 이유가 '남편이 상처 주는 말을 가려서 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이가 없어서가 아니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딩크족인 내가 만약 노후에 정서적으로 외롭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고통받는다면(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것은 금전, 대인관계, 건강, 급변하는 사회에 적절히 대응하기 등 인생 전반에 걸친 노후 준비의 계획과 실천이 미흡했기 때문이지 단지 아이가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무조건 정서적,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다 살아 본 뒤 더 적합한 길을 고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가 정답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때때로 후회하고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 딩크 인생 전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후회하는 마음이 내 인생의 실패를 뜻하지도 않는다. 


"아! 고3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 다시 태어나면 결혼 전에 연애를 더 많이 할거야"  등등 딩크족이 아니라도 누구나 조금씩 인생에 대한 후회를 하면서 산다. 그러니 나도 살다가 아주 가끔은 후회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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