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부부의 아주 평범한 주말
친하게 지냈던 옛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왜 갑자기 내 생각이 났을까?
그 친구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6세 딸이 있는데 얼마 전 수두에 걸렸다고 한다. 전염성 때문에 어린이집에 못 보내는데 친구는 회사를 나가야하니 1주일간 온전히 친정에 맡기기로 했다고 한다. 친구 입장에선 육아에서 잠시 해방되어 1주일간의 저녁 자유시간을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친구 말로는 기뻤던 마음도 잠시, 아이없이 남편과 단둘이 있자니 너무나도 어색하다고 했다. 쉴새없이 재잘대던 아이가 없는 집이 너무 조용하고 휑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몰라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단다. 친구가 물었다.
"너는 7년 동안 대체 남편이랑 뭘 하면서 지냈어?
설마 매일매일 이렇게 조용히 사는 거야? "
아이가 있으면 아이에게 거의 모든 관심이 쏠리고 대부분의 생활이 아이 위주로 돌아간다고 한다. 오랫만에 갑자기 생긴 부부만의 시간이 소중하면서도 어색하다고 하는 친구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반대로 우린 처음부터 둘밖에 없었으니 친구의 걱정과 달리 둘 사이에 무궁무진한 주제가 차곡차곡 쌓이며 가지를 뻗어나간다. 7년이란 시간을 양분으로 삼아서.
그럼 우린 평소에 뭘 하면서 지내더라. 우리의 무수한 주말 일상을 되돌아봤다.
우린 가급적 각자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주말은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온전히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주말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잠이 많은 우리 부부는 둘다 아침 10가 될 때까지 늦잠을 잔다. 그리고 내가 먼저 일어나 브런치를 만든다. 남편이 만들 때도 있고 브런치 카페에 가기도 하지만 난 아침에 일어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내리고 브런치를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주로 내가 한다. 브런치는 빵일 때도 있고, 계란 요리일 때도 있고, 중국 유학 시절 아침으로 즐겨먹던 만두와 공심채 볶음일 때도 있다.
둘이 앉아서 하염없이 떠들면서 천천히 브런치를 먹고 남편이 뒷정리를 하면 소화도 시킬 겸 간단히 집 근처를 산책한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도서관을 가서 책을 빌리기도 한다. 너무 춥거나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생략. 반대로 날씨가 좋을 때는 도서관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도서관 앞 공원에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우리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된 채로. 간단한 간식거리를 싸들고 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차를 마시면서 잠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며 여유를 부리다가 늦은 오후가 되면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할 차례다. 바로 간식 먹으면서 수사물 드라마 몰아보기. 둘다 평일에는 TV를 전혀 안 보지만 주말엔 흥미로운 드라마를 신중히 선택하여 정주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둘다 추리 수사물을 좋아하여 다른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요즘은 봐도봐도 끝이 없는 무궁무진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에 빠져있다.
TV를 보며 먹는 간식은 집 근처 전통시장에서 파는 옛날 통닭일 때도 있고 제철 과일일 때도 있고 가래떡 구이거나 김치전일 때도 있다. 휴일의 충만한 기분을 한껏 느끼기 위해서 그날의 계절, 날씨, 상황에 맞는 간식 역시 신중히 엄선한다. 함께 손을 꼭 잡고 옆에 앉아서 범인 맞추기 내기를 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신나게 떠들다가 대사를 놓쳐 다시 돌려보기도 하면서 주말의 시간이 흘러간다.
주말 저녁은 남편이 특식을 만드는 날이다. 창의적인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듣도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음식을 내놓는데 신기하게도 맛은 좋다. 평소엔 귀찮아서 최대한 간단한 음식만 만들지만 주말은 남편이 주가 되어 삶고, 끓이고, 튀기고 설거지 거리가 산더미처럼 나오는 요리를 푸짐하게 차려 오래오래 먹는다.
그리고 또 드라마를 이어서 보는데 보통 자정을 가볍게 넘겨버린다. 다음날 일정이 있으면 일찍 자기도 하지만 보통은 저녁먹은지도 꽤 되어 출출하니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나 순대국집, 또는 설렁탕집에 간다. 우린 수시로 내기를 하기 때문에 내기에 진 사람이 햄버거나 설렁탕을 사주며 또 하릴없이 수다를 떤다.
그리고 천천히 집에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지만 늦잠을 잔 탓에 잠이 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한참동안 장난을 치며 놀다가 보통 남편이 먼저 곤히 잠든 숨소리를 내면 나도 내일 브런치는 뭘 만들까 고민하며 잠이 든다.
주말에 드라이브를 갈 때도 있고 미술관 전시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친구 부부와 당일치기로 근교 여행을 떠날 때도 있다. 예쁜 카페나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새롭고 신나는 경험과 이벤트도 물론 즐겁지만 우리에겐 바로 이런 일상이 가장 평범하고 완벽한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