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은 아이만 피우는 게 아니다
작년 추석 전 언니네 집에 놀러 갔는데 어린이집에 갔던 조카가 손에 무언가 들고 돌아왔다. 어린이집에서 다같이 추석 맞이 송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어린이가 만든 것 같은 송편이라고 하기도 힘든 떡 뭉치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깜찍해서 보고만 있어도 계속 웃음이 났다. 언니는 어린이집에 보내니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만들어 온다며 이름을 새긴 나무도마, 조화 화분 꽃꽂이, 형태를 알 수 없지만 가족을 그린 것이라는 그림 등등을 자랑하며 뿌듯해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째서 남편과 나 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걸까.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자가 되었다가, 부모가 되었다가, 귀여운 자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남편을, 남편은 나를 몹시 귀여워한다. 내 남편은 객관적으로 귀여운 인상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남편에게 가장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셨을 시어머니조차 "내 아들이지만 인물이 잘난 건 절대 아냐" 라고 말할 정도니까.
하지만 내 눈엔 너무 예쁘고 귀엽다. 서로에게 애교와 어리광을 아낌없이 부린다. 관심을 끌기 위해 아이처럼 징징 대기도 한다. 그만큼 허물없이 가까우면서 서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과묵하고 무뚝뚝한 김 과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반전이 더 재밌다.
회사 야유회 때 남편의 부서는 단체로 홍대에서 네온싸인 만들기에 참여했다. 결과물을 각자 집으로 가져왔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네온싸인을 보니 조카의 송편처럼 그 엉성함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다음에 언니가 "어린이 집에 보냈더니 이런 걸 만들어 왔어!" 하면서 조카의 창작물을 보여준다면 나도 "남편을 회사에 보냈더니 이런 걸 만들어 왔어!" 하면서 남편의 네온싸인을 자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