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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핑크 Jan 14. 2019

아이는 좋아해요

딩크족=아이 싫어하는 사람?

"아이 좋아하게 생겼는데..."


내가 딩크족이라는 것을 밝히면 가장 흔하게 보이는 반응 중 하나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과거 서비스업에 장기간 종사하며 몸에 베고 만 친절한 말투까지. 누가 봐도 사랑이 넘치는 좋은 '엄마'가 될 사람 같다는 것이다. 


맞다. 난 아이 좋아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아이를 좋아한다. 예쁜 아이를 보면 눈을 떼기 어렵고 웃음이 절로 나며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한 가족을 보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을 뿐인데 왜 거의 '아이를 싫어한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까.


올해 4살이 된 조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원래 사이가 좋아 항상 붙어다녔던 언니가 처음 조카를 낳던 날 눈물까지 울컥 날 정도로 생명의 탄생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곧바로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냥 빨간날이었던 어린이날이 큰 이벤트가 되었다. 언니와 가까운 곳에 살던 나는 언니 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육아를 돕고 조카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카를 예뻐하며 물고 빨고 하는 모습을 보면 주변 친척들과 가족은 이렇게 아이를 좋아하는데 왜 낳지 않냐고 빨리 낳으라고 재촉한다. 자기 아기는 더 예쁠 거라며. 

나는 아이를 예뻐하는 것과 낳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예쁘고 좋은 물건이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 물건을 놓을 장소, 아끼고 관리하며 잘 사용할 계획도 없으면서 당장 좋다고 살 수는 없다. 물건도 이런데 하물며 한 생명은 어떨까. 요즘은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다, 원래 자기 밥숟갈은 물고 태어난다 라는 말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나라는, 이 시대는 아이가 살기엔 너무 팍팍하기 때문에 나중에 고생할 아이를 위해서 낳지 않겠다는 말 역시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끊임없이 아이들이 태어나고 소확행이든, 욜로든 각자 행복을 찾아가는 상황 속에서 그건 너무 무책임하고 절망적인 말이니까.  어차피 모두가 완벽하게 행복한 유토피아 같은 곳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 둘다 내향인이라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대단한 야망은 없어도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가 중요했고, 행복하기 위해 우리 둘 말고 그 이상의 것은 필요하지 않아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 중 '아이가 싫어서'는 없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조카도 나를 무척 좋아한다. 내가 놀러가면 조카는 엄마 아빠, 워킹맘인 언니를 대신해 주 양육을 도맡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뒷전으로 하고 나만 찾는다.


그렇게 두시간... 세 시간... 다섯 시간... 조카와 함께 놀다보면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점점 체력이 딸려 지쳐가고...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아쉬워서 우는 조카와 헤어지는 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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