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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핑크 Jan 31. 2019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해

내가 딩크족이라 들어야 하는 말말말

종합 건강검진 결과에서 부인과 쪽으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나와서 집 앞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다. 시간이 없어서 대기 환자가 제일 적은 선생님께 검진을 받았는데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 의사였다. 할아버지 의사가 내 문진표를 보고 이미 한참 늦은 노산이니 어서 출산을 위한 추가 검사 및 준비를 하라고 자꾸 재촉하시길래 나는 아이 계획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내가 그동안 딩크족이라서 종종 들어왔던 불편한 말들의 종합 선물세트를 받았다.


"아니 애를 왜 안 낳아? 하여튼 정말 문제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면 지금은 좋겠지. 부모님한테 효도 안 할 거야? 애국은 안 해? 나중에 늙고 병들어서 누구한테 의지하려고?  나중에 남들이 고생해서 키워놓은 애들이 이런 사람들까지 부양하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미안하지도 않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자기만 알고 이기적이라더니"


이기적인: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또는 그런 것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과정을 생각해봤다.

나와 남편의 아주 사적인 시간을 통해 임신을 하고 내 영양분을 나누며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키워낸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정성을 갈아 넣으며 한 팔에 쏙 들어오던 작은 아기를 아마 나보다 더 큰 사람으로(난 키가 작으니까) 육체와 정신이 자랄 때까지 몇십 년을 세월을 쏟아붓는다.

이 모든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모두'나'라는 주체를 빼면 설명이 안되는데 당연히 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꾀해야 하지 않을까. 나 말고 어떻게 다른 걸 우선시할 수 있단 말인가.



딩크족은 정말 남들이 고생해서 키워놓은 아이들에게 우리의 미래 부양까지 떠맡기는 무책임한 사람들일까.

일단 미래의 우리 부부의 부양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게 누구보다 철저히 노력하고 준비한다. 내 주변 아이 있는 그 어떤 부부도 우리처럼 촘촘한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매월 나가는 내 보험엔 간병 특약까지 추가되어 있다. 정년 없이 오래오래 일할 수 있도록 내 커리어를 관리하고 끊임없이 공부한다.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내 부양을 맡겨야 할 정도로 노후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국가에서 주는 최저 생계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데 미래에 그런식으로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생산가능 인구와 소비 인구가 줄어들면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지만 많은 일자리가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미래를 걱정하고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사회에서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을 강요해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보다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매년 여름철 내가 사는 도시 시청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무료 어린이 물놀이장에 " 물놀이장은 여러분의 세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족들과 즐겁게 놀다 가세요"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다. 하지만 어린이와 보호자만 이용 가능하기에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나는 입장할 수 없다. 물놀이장 외에도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나는 영원히 받지 못할 혜택과 지원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세금이 한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쓰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기꺼이 낸다. 임산부와 아이를 위한 사회적인 배려도 적극 지지한다.



대체로 늘 간단한 우리 집 식탁


몇 년 전, 우리가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시댁 친척의 결혼식장에 갔을 때 남편의 먼 친척에게서 왜 아이를 안 낳냐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야단맞을 일은 더욱 아니고 그 먼 친척이 무척 무례하고 배려 없는 행동을 했을 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그때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 사건으로 정확히 365일 동안 상처 받고 괴로워했다.


그땐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내가 정말 잘한 걸까?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그래도 나보다 오래 산 어른들이 그렇게 안 좋게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나?'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딩크에 대한 불편한 말들이 비수처럼 꽂히면서 내 멘탈을 사정없이 흔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말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딩크족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내 선택에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딩크족이라서 행복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게 원치 않는 말을 들어도 그냥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진료를 받으며 불쾌했던 기분은 병원 문턱을 넘으면서 잊어버렸다.


하지만 맷집이 아무리 강해도 일단 맞으면 아프다.

불편한 말은 여전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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