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으면 효도를 못할까
딩크족인 내게 던지는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부모님을 그 중에서 특히 시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부모님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충분히 고민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 "부모님이 허락했어요?"라는 질문. 사실 부모님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정말 딩크족이 될 수 없을까. 아무도 내 몸에서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을 물리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내 몸을 이용해 억지로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아마 범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압력이 없어도 부모님들의 허락과 이해 여부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역시 손자 보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간절한 바람에 상충되는 결정을 내림으로서 발생하는 갈등이 무척 괴롭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내 몸의 임신과 출산은 오롯이 내가 결정해!'라고 자신 있게 외쳤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부모님들의 기대를 깡그리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우리 부모님께 말했을 때 엄마는 약간 슬퍼하셨다.
"엄마는 너 같은 딸이 있어서 참 좋았는데... 정말 자식이 없어도 괜찮겠어?" 엄마로서의 롤모델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 내가 오히려 미안해졌다.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 좋은 부모님이었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 행복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건데...
처음엔 얘네들이 그냥 지금 실컷 놀고 여행 다니는 게 좋아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 많던 우리 부모님도 지금 우리가 큰 트러블 없이 차근차근 인생을 설계해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누구보다 기뻐할 분들이란 걸 알고 있다.
반면에 시부모님께 우리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내게 큰 난관이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신 시부모님은 훨씬 보수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형제 중에 아직 결혼 못한 노총각 아들을 위해 베트남에서 신붓감을 데려온 분도 있는데 제사를 지내고 대를 잇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여기시고 '딩크'라는 말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시부모님께 우리 의견을 전달할 땐 나도 적잖이 긴장했다. 무슨 반응을 보이실지 몰라 무서웠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늘 '좋은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신다는 걸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희망고문을 할 수도 없었다.
시부모님께 우리의 의견을 말씀드리자 시부모님은 말그대로 충격을 받으셨다. 너희가 뭐가 문제라서 애를 안 낳냐며 나중에 후회한다고 펄쩍 뛰셨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대로 우리와 의절을 한다거나 불같이 화를 내시는 일은 없었다. 무척 서운해하셨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며 내 엄마, 아빠처럼 우리의 행복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란 걸 알고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을 갖고 계시단 걸 알고 있다.
남편의 누나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우리까지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하면서 어쩌면 시부모님은 영원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기회를 잃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아파서 다른 방법으로 시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죄송한 마음은 갖지 않는다.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효도지 속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가고 고스톱을 친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제 4살 된 손녀의 재롱을 보며 웃음꽃이 아주 그냥 활짝 피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손녀 시집가는 것까지 보고싶다며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걸 보면 손주를 안겨주는 것이 어째서 가장 큰 효도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가장 1순위로 바라는 건 자식의 행복일 것이다. 아이가 없어서 행복한 우리. 남편과 둘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며 효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