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한창 포도 수확으로 바쁜 계절인 9월, 조지아 와이너리 조사를 위해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진한 크베브리 와인과 차가운 맥주를 며칠 째 연거푸 들이켜다 그만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응급실에 가본 적이 없던 내가 살면서 처음 응급실에 방문한 것이다. 세계 최초 와인의 나라가 나를 최초로 응급실로 보내다니! 조지아 의사와 간호사, 다른 환자들, 그리고 나중에 그 소식을 알게 된 조지아 친구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럴 만했다. 며칠 째 조지아의 혼이 담긴 묵직한 크베브리 와인을 먹으러 다닌 데다가 응급실에 가기 하루 전날은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안주도 없이 집에서 혼자 화이트와인을 쫄쫄 따라 마셨다. 이미 예민한 그 배에 갓 추출한 맥주까지 들이켰으니 이 사달이 난 건 필연이었나 보다. 다 같이 "가우마르조스(გაუმარჯოს, gaumarjos : 조지아어로 건배라는 뜻)"를 외치는데 분위기는 좋고 한국인인 나를 엄청 환영해주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 와인과 맥주를 많이(?) 마셨다고 설명하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간호사분은 친절하게 나를 휠체어에 태워 다녀주셨다. 그러고 나서는 병실로 옮겨졌다. 배는 자꾸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계속해서 식은땀이 났다. 너무 추워서 두꺼운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 링거를 맞으며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이건 인증샷으로 남겨야 해' 생각했는데 핸드폰 배터리는 꺼진 지 오래 었다.
새벽 내내 조지아 친구가 자리를 지켜줬고 간호사분들도 계속해서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다.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조지아 병실에 내가 누워있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살면서 이런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조지아에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하루 만에 무사히 퇴원하였다. 사실 하루 더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동의서를 쓰고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빠져나왔다. 며칠 동안은 흰쌀 죽과 계란국으로 속을 달랬다. 상추도 사 먹었다. 미역국이 없다는 게 조금은 서글펐지만 금세 입맛을 되찾아 다시 감미로운(?) 조지아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와인으로 울고 웃고, 또다시 슬퍼서, 기뻐서 와인을 찾는 조지아인들을 닮아가는 걸까. 그래도 조지아 와인이 좋다며 조지아인들을 따라 벌컥벌컥 마시다가는 나처럼 배가 깜짝 놀랄 수도 있으니 차근차근 마셔보기를 권장한다.
[조지아] 조지아 와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