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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i Mar 21. 2021

[조지아] 조지아 와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의 이야기.

이 세상에서 와인을 '최초'로 만들어 먹은 나라는 '조지아'예요.


정수기 통만 한 와인을 마트에서 팔고 있다. 




와인의 고향, 조지아


이 세상에서 와인을 최초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 이탈리아? 아니면 칠레? 정답은 바로 ‘조지아’다! 조지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 ‘크베브리(ქვევრი, Qvevri)’라고 불리는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와인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나라이다. 조지아 지역의 토기에서 와인을 만들어 먹었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오늘날 ‘와인(Wine)’의 용어가 조지아어로 와인을 뜻하는 ‘그비노(Ghvino, ღვინ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조지아는 일상 속에 와인이 늘 함께한다. 오죽하면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ღვინოში მეტი ხალხი იხრჩობა, ვიდრე წყალშიო).’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가우마르조스!(გაუმარჯოს! : 조지아어로 건배!)” 한 마디면 조지아 사람들과 금세 오래된 친구가 될 수 있다. 한국 사람들 역시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민족이지만, 조지아인들의 술 사랑과 주량은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고리(Gori) 지역 근처에 위치한 와이너리. ‘조지아는 와인의 고향’이라고 적혀있다.




와인으로 축배하고 거룩한 땅을 얻다


조지아에는 와인과 관련된 재밌는 전설이 있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각 민족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해 모든 인종을 불러 모았는데, 그때 조지아인이 가장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모든 조지아 사람들이 신을 위해 축배를 하며 와인을 마시느라 늦었으니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이 가장 마지막 땅으로 남겨놓았던 땅을 조지아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이 얼마나 와인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얼마나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이다.




조지아에서 포도의 의미


조지아 사람들에게 포도와 포도나무 그리고 와인은 조지아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조지아에는 포도 및 와인에 대한 용어가 아주 다양하다. 와인 생산에 있어서도 포도 재배, 크베브리 제작, 와인 생산, 판매 및 관리 등 프로세스마다 세분화된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또한, 조지아의 십자가는 ‘포도나무 십자가(Grapevine Cross)’로 상징될 만큼 그 의미가 크며 크베브리 와인은 종교 행사와 의식에서도 사용된다. 결혼식과 같은 큰 행사에서는 온 손님들이 마시고 즐길 수 있게 크베브리 와인을 성대하게 준비한다.


치누리(Chinuri) 또는 치네불리(Chinebuli)라고 불리는 조지아의 청포도 품종.

 

조지아 정교의 포도나무 십자가.




조지아 와인의 특별함, 크베브리 와인


한국에서 매년 배추 수확 철에 맞춰 김장하는 것처럼, 조지아에서는 매년 포도 수확 철이면 온 가족이 모여 한 해 마실 와인을 담근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고 자란 조지아 포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럽다. 조지아 와인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와인을 담그는 ‘항아리’에 있다. 조지아인들은 ‘크베브리’라고 불리는 항아리에 와인을 담가 먹는다. 우리가 장독대에 김치를 담가 먹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에서의 ‘김치’가 조지아에서는 ‘와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지아에는 크베브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들이 있다. 크베브리는 섬세하게 만들지 않으면 균열이 나기 때문에 만들기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크기는 천차만별인데 20리터 정도 되는 크기부터 성인이 몇 명 들어가고도 남을 큰 크베브리도 있다. 지역마다 크베브리를 만드는 법도 다른데, 표면에 찰흙을 덕지덕지 발라서 예쁘지 않은 크베브리도 있으며 조지아 동쪽보다 서쪽의 크베브리가 훨씬 예쁘단다. 흙으로 만든 크베브리의 안쪽은 짤라미(წალამი, Tsalami)라고 부르는 포도나무 가지 장작에 불을 붙여 한 번 지지고 난 뒤 벌꿀집 밀랍을 얇게 발라 와인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한다. 


크베브리 와인을 만들 때 조지아의 포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포도의 알맹이만이 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포도 껍질, 포도 씨, 포도 줄기, 그리고 가끔은 포도나무 잎까지 모두 와인의 재료가 된다. 조지아 친구는 옛날 사람들이 와인을 만들 때 귀찮아서 포도를 한꺼번에 다 넣은 것이 아니냐는 농담(?)을 건넸다. 


한국에서 지역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조지아에서도 지역마다 와인의 맛이 다르다. 지역마다 특화된 포도 품종이 있는데, 조지아 토착 포도 품종만 해도 500 종류가 넘는다. 가장 잘 알려진 레드와인 포도 품종에는 사베라비Saperavi가, 화이트와인 품종에는 찌난달리(Tsinandali)와 르카찌텔리(Rkatsiteli)가 있다. 조지아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사페라비’, 샤르도네는 ‘찌난달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밖에 발음하기 정말 어려운 포도 품종들이 있는데, 치츠카(Tsitska), 키크비(Khikhvi), 므쯔바네(Mtsvane), 스탈린이 가장 좋아했다는 흐반쯔카라(Khvanchkara) 등이 그러하다. 


조지아인들은 손님을 집에 초대하면 환대의 의미로 홈메이드 크베브리 와인을 대접한다. 현대식으로 대량 생산되어 마트에서 팔던 와인만 마셔본 내게 홈메이드 조지아 와인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맛을 선사해주었다. 


통통한 크베브리. 조지아인들은 크베브리가 조지아 남자의 뚱뚱한 배를 닮았다고 말한다.


포도나무 가지 짤라미. 마트에서도 짤라미를 판매한다.


사페라비 레드와인과 찌난달리 화이트와인.


와인을 저장하는 곳인 마라니(მარანი, Marani).



와인을 담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크베브리 세척법


크베브리 와인을 담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바로 크베브리를 깨끗하게 닦는 것이다. 세척을 얼마큼 잘하냐에 따라 와인의 맛과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아에는 크베브리 세척 전문가들이 있으며 예로부터 크베브리를 세척하는 도구도 함께 발달했다. 웬만한 성인 한 명이 들어가도 남을 크기의 크베브리 안에 들어가 청소를 하다 보면 크베브리에 남아있는 진한 와인의 향 만으로 취해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벗나무로 만든 크베브리를 세척하는 도구들. 빗자루와 지팡이처럼 생긴 이 도구들로 크베브리 안을 박박 닦는다.




조지아 만찬의 필수, 타마다 그리고 깐치


조지아에는 ‘만찬’을 뜻하는 ‘수프라(სუფრა, Supra)’라는 문화가 있다.  수프라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맛있는 음식, 신선한 술 그리고 흥겨운 춤과 노래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눈다. 이 자리에는 ‘수프라의 리더’라고도 할 수 있는 ‘타마다(თამადა, Tamada)’라는 구성원이 있다. 타마다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건배를 제의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든다. 특별한 술잔인 ‘깐치(ყანწი, Kantsi)’도 수프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양이나 염소 등 동물의 뿔로 만든 반달 모양의 잔인데, 깐치에 담아서 주는 술은 꼭 한 번에 다 마셔야 한다. 깐치에 담긴 술을 마시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으면 그 독특한 모양 때문에 술이 다 흘러버리기 때문이다. 

       

거대한 깐치가 전시되어있다.
타마다 동상이 깐치들 들고 있다.




어떤 와인이 맛있을까?


와인은 무조건 달달한 것이 제일인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 조지아 와인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조지아 크베브리 와인은 아주 묵직하다. 요즘에는 크베브리 와인뿐 아니라 현대식 기계로 만든 와인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고 그 맛도 일품이다. 내가 접해본 와인 중 인상 깊었던 와인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이아고 와인(IAGO’s Wine)

조지아의 이아고 비타리쉬빌리(Iago Bitarishvili) 장인이 직접 만드는 유기농 크베브리 와인이다. 치누리라고 불리는 청포도로 만든 치누리 와인이 일품이다. 치누리 와인은 일 년에 단 5천 병 정도만을 생산한다고 하니 이 와인을 마셔보는 건 무척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치누리 와인은 사쯔나켈리로 포도를 밟아서 포도의 즙만을 크베브리에 담아 발효시킨 와인과 포도즙과 짜짜 모두를 크베브리에 통째로 넣고 발효시킨 와인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 두 와인 모두 도수는 12.5도로 같지만, 포도즙과 짜짜를 모두 넣어 만든 와인의 색이 훨씬 진하고 바디감도 깊다. 두 와인을 비교하며 맛 보다보면 크베브리 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므츠헤타(მცხეთა, Mtskheta) 근처에 ‘이아고 와이너리’가 있다. 이아고 장인은 2003년 소박하고 전통적인 홈메이드 방식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이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이곳은 유기농 포도 재배학을 연구하여 2005년 조지아에서 최초로 바이오 인증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직접 와인을 구매할 수 있으며 와인 투어도 즐길 수 있다.


* 이아고 와이너리(IAGO’s Winery)

홈페이지 : www.iago.ge

주소 : Village Chardakhi, 3318, Mtskheta, Georgia


이아고 와이너리. 와이너리 로고는 이아고 장인이 와인의 발효를 위해 크베브리를 젓고 있는 모습이다.


이아고 와이너리의 치누리 크베브리 화이트 와인. 맛이 일품이다.



- 텔리아니밸리 무꾸자니(TELIANI VALLEY MUKUZANI)

조지아 친구의 추천으로 마셔보고 반한 와인이다. 조지아 동쪽에 위치한 무꾸자니(მუკუზანი, Mukuzani) 지역에서 사페라비 적포도 품종으로 만든 레드 드라이 와인이다. 크베브리가 아닌 오크통에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확실히 조지아의 크베브리 사페라비 와인과 비교했을 때 가볍고 타닌이 적게 느껴졌다. 신선한 과일 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구조감과 섬세함이 좋다. 이 와인은 국제적인 상을 휩쓸었을만큼 품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트빌리시의 와인 상점에서 텔리아니밸리 브랜드의 와인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 텔리아니밸리 와이너리 TELIANI VALLEY Winery

주소 : www.telianivalley.com

홈페이지 : 3 Tbilisi Highway, 2200, Telavi, Georgi


텔리아니밸리의 레드와인 종류들.



와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정말이지 조지아는 '와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닐까. 조지아 와인이 담긴 잔을 번쩍 들고서는 이렇게 외쳐보자. 


가우마르조스!


나만의 힐링 타임. 찌난달리 화이트 와인에 티라미수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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