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성소는 한 지점에, 인간의 성소는 각[자의 내면 속] 지점에
인류는 예외적 공간을 만들어 왔다.
삼한 땅에 소도(蘇塗)*가 있고, 그밖에도 인류사 통틀어 어느 문명이나 성지가 있다.
하다못해 당산나무나 솟대, 룽파를 두었고,
부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부도(浮屠)로 승려의 사리나 묘로 삼았다.
서양 도시에서 성당이 그 기능을 하고
현대에도 경찰이 성당이나 예배당, 사찰로 진입하길 꺼리는 것도 떠올릴 수 있다.
소도의 ‘소’는 ‘길게 또는 곧게 뻗은’ 것을 가리킨다.
하니 그것을 보려면 시선을 들어야 한다.
‘마음을 드높이’ 하라는 비언어의 명령, 육체적 방식의 길잡이이다.
그렇게 눈길을 들어 바라보면 바라보는 그것 말고는 허공, 시선을 어지럽히는 다른 게 없다.
딴짓하지 마라는 거다.
거기는 천신의 장소이고, 천신에게 바치는 제사 외의 다른 일은 감히 허락되지 않는다.
하늘에 속하여, 땅이지만 이미 천상이다.
그래서 소도에는 도둑질한 자가 숨어 들어도 잡지 않는다고 하였다.
파렴치한 군부독재정권도 성당과 교회에 숨어든 이는 잡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세기말과 새로운 세기초에 이러한 금기는 무너졌다.
우리는 아무데나 들어가고, 아무데나 발을 뻗는다.
아무데나 들어가 자유롭다지만 아무데나 짓밟아 편히 쉴 데가 없다.
우리는 안식을 잃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합의해서 인위적으로 무얼 꾸며 봤자 지켜질 리도 없고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고, 누구의 마음도 거기서 들이지 못할 터이다.
인류는
저마다 다른 몸을 끌고 들어올 공통의 자리를 공간 안에 만들었지만
또 한 가지, 공통의 시간도 마련했다.
예배의 시간들, 파공(破工)하는 날, 안식일도 있다.
근대 자본주의도 노동력과 생산성을 관리하고자 휴일을 두었다.
곳곳에서 종소리나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현세적 영성을 간직한 유교도 아악을 울렸고, 상례와 제례를 중시했고,
본래 불교의식이던 재계(齋戒)는 무신론적인 사람에게조차
몸과 마음을 삼가도록 의식화하였다. 육체에 정신을 주입한 것이다.
들숨과 날숨은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인류-라는 집단이 거룩한 장소를 만들고
길 떠날 때에는 거룩한 물건을 지녀 자신을 지키려 했거니와
오늘날 개인은 자신을 지킬, 절대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까닭은
거창하게 하이데거를 끌어들일 것도 없이
오직 시간만이 우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김새나 몇몇 기능으로 속성을 말할 수 없고
시간 속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고 행위하느냐에 따라서만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존재이다.
우리는 진심을 다하고 진정코 결단하여도 그것이 가치롭고 귀할수록 더욱
참으로 변하기 위한 축적, 실력을 요구하며, 그것은
쓰고 지우는 마법의 문자와 다르게
시간 안에서 시간과 함께 시간을 통하여서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는 갖은 힘들에 떠밀리고 형성되기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또는 그 수락-함조차
우리가 자신의 것임을 주장할 수 있는
고유한 시간 안에서 결정(結晶)되어서 결정(決定)하여야 하기에
시간을 갖는 것.
따로 떼어낸
불가침의 시간을 지키는 것은 소중하다.
물론 살다 보면 원칙은 깨진다.
술에 취하는 것도 소요, 술에서 깨는 것도 소다.
그런 곳이 소도이고,
시간의 성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이기 위한 게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서,
장벽을 세워 갇힌은 게 아니라
중심과의 단단한 끈을 매어 두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당겨지는 그 끈을 매고
스스로 매인 몸인양 달려가 그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남에게] 보이게 채우는 대신
[나에게조차도] 보이지 않게 그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다.
파격(破格)을 원해도
정격(正格)을 이룬 뒤, 정격(定格)한 뒤다.
다만 일 분, 숨소리만 가득하고
그윽한 세간의 소음 가운데
침묵하고 잊기를.
잊고 잊어 나조차도 잊기를.
즐기고 새롭기를.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의도커나 의도치 않은 채 쏘아낸 살들로 너덜해진 과녁이 되어
날로 더 남루하고 눈살 찌푸릴 거적데기가 되고 말 터이다.
눈부신 폰 화면이나
시끄러운 채팅창
미션이 역동하는 던전 대신
달콤씁쓰르한 알코올의 향연 대신
자기 개발의 이차, 삼차 고행 대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마련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대 안의 하늘에 바쳐진다.
무엇도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으므로
그대가 상상하는 그 어느 것보다 좋은 것이 된다.
*소도의 한자는 우리말의 소리를 한자를 빌어 쓴 것이라지만, 하필 각 글자의 뜻이 묘하다. 蘇는 ‘술’도 뜻하고 ‘깨다’는 뜻도 같이 지닌다. 塗는 ‘진흙’과 ‘길’ 둘 다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