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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니킴 Oct 20. 2023

ep.02 그래도 내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괜찮아요.

'권고사직'.


지금 다시 봐도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무시무시하고 무기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권고'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이라고 한다.

과연 '권고사직'도 사직을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말이 '권고'지 회사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실 통보나 다름이 없고, 그게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사원이라면 그 권함에 어쩔 수 없이, 힘을 쓰지도 못하고 응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자로 지정이 된 걸 뒤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표와 싸울 에너지도 없었...)


그 권유에 어쩔 수 없이 퇴사하기로 했음에도, 퇴사했음에도 여전히 내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로, 내가 자진해서 퇴사한 것도 아니었고 내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라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인데..'라는 생각에 자꾸 스스로를 등 떠밀려 쫓겨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설명하는 나 자신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말하다가도 울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고, 스스로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파워 외향형인 내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이야...


자책감, 괴로운 감정. 들 수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수록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혼자 너무 깊게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껏 그 감정들을 배출하기를 바란다.

며칠은 너무 속상한 마음에 혼자 이불속에서 엉엉 울고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도 된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된다. 그 무기력함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인지하고 돌봐야 한다.


도저히 혼자 괜찮아지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 

그래도 된다. 전문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아도 좋고, 주변 선배나 어른께 자문을 구해도 좋다. 아님 비슷한 일을 겪은 주변 지인들을 만나 한탄을 하는 것도 좋다. 나는 내 상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그 상황을 듣고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람들이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으니 내 상황을 다 이해해 주는 소중한 누군가와 꼭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사실 그래도 억울함이 다 풀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정말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가득 채워도 모자란 시기다. 그 사람들의 사랑과 위로를 연료 삼아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


제일 쉬운 방법 중 하나로 '권고사직을 당한 친했던 직장동료들과 같이 신세한탄을 하는 것'도 있다.

그들과는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말들이 있으니 자주 연락을 하기도 하고, 다 같이 제주도로 즉흥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함께 하면 할수록 '권고사직을 당한 건 나 혼자가 아니다. 괜찮다'라는 생각에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과 위안이 들기도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동료들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난 후, 우리는 더더욱 단단해졌고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서로 갈 길을 찾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느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지만, 전 직장에서 소중한 사람을 얻었고 이제는 그들과 그때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친한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권고사직 통보 후, 몇 달은 나도 '내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내가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만큼 내게는 큰 사건이었고 큰 아픔이었다.

그랬던 내가 수많은 시간과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좋아졌고 그만큼 단단해졌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으니 충분히 가슴 아파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기를. 스스로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기를.


도움을 청하기 어려워도 괜찮다. 충분히 혼자 아파해도 된다.

그래도 스스로 너무 초라하고 괴로운 생각이 든다면, 내 글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고, 진짜로 괜찮아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구) 직장동료 현) 친구 Y, S에게 바친다.

정말 너희와 함께 아픈 시간을 견뎠기에, 더 잘 버티고 웃을 수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맙고 애정해.

우리 앞으로 꽃길만 걷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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