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니다.
ep.02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받는 방법을 말했다면,
이번 ep.03에서는 나 자신이 나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네는 방법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너무 무기력하고 마음이 아픈 상태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잘 모른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밥도 잘 안 넘어갔는데,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 시간을 견디며 보내는 와중, 문득 내가 원해서 얻은 상황과 무기력한 감정도 아닌데, 이 감정에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일, 팀장이라는 직책에서 벗어난 진짜 '나의 회복'.
내가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생각했다. 7년이라는 커리어 경력을 쌓는 동안 나는 '일'만 생각하며 쉼 없이 달려오느라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었고, 스스로 어떻게 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봤지, 스스로를 잘 돌보려는 방법은 찾아본 적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많이 속상하고 나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일'은 내가 아닌데... 내가 '일'을 하는 거지, '일'이 내가 될 수는 없는 건데.. '일'과 '나'는 분리가 되어야 하는구나.라고 동시에 깨달았다.
그럼 진짜 '나'는 어떻게 회복하고 쉬고 싶지? 가 궁금해져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잘 쉰다는 것이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했지만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면 되지 않을까?라는 가벼운 생각이 스쳤다. 오 그래!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까, 견디는 시간도 조금은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억지로 좋은 감정을 갖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나를 채워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기분이 제일 좋았지?
슬퍼하느라 그동안 잊고 살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많고, 취미도 많았기에 떠올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영, 요가, 뜨개, 노래 듣기, 맛있는 음식 먹기, 새로운 장소 방문하기, 여행..
이 단어들을 떠올리는데 나도 모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뜨개를 하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실들을 왕창 구매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에만 초집중하며 생각을 비웠다. 그러다 요가원을 갈 시간이 되면 (평소에도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요가원에 가서 '현재'에만 집중하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요가를 하다가 소리 없이 운 적도 많다. 마음이 힘드니까 몸이 굳어버렸고 잘 안 움직이지 않아 원래 잘하던 동작들이 안 되니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고 그 화가 눈물로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 동안 요가 선생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부탁했다. 요가하다가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리더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말이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시며, 울고 싶을 땐 언제든지 울고 몸이 안 따라주더라도 되는 만큼만 하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응원과 위로 덕분일까 마음에 지쳐 몸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수업을 꼬박꼬박 나갈 수 있었고 요가를 하며 울렁거리는 내 감정과 마음을 조금씩 다잡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하루를 쌓다 보니, 입맛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먹고 싶은 것이 생겨났다.
그날그날 다른 메뉴로 당기는 음식들이 떠올랐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기로 했다. 내 몸이 원해서 당기는 것일 테니까. 그러다가 졸리면 낮잠도 몇 시간씩 잤고, 놀고 싶을 땐 나가 놀았고, 뜨개 하고 싶을 땐 뜨개를 했다. 정말 1차원적으로 내가 원하는 본능에 충실하고자 했고,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나를 채우려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점차 회복을 할 수 있었고 원래의 일상으로 점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만큼 쉬운 회복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는 시기를 보내며 제일 크게 느낀 것은, 타인이 내게 응원과 위로를 해주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사실 더 중요한 건 나 스스로에게 응원과 위로를 해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게 일어난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인만큼 그 문제는 나 스스로가 인지하고, 해결하고,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이 방법이 느리고 어렵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정말이다. 본인에게서 빠져나간 건 본인만이 완벽하게 채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좋아한다는 것에는 정말 큰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기간이 얼마가 됐든 좋아하는 것만 가득 채우며 시간을 보내보길 권한다. 쉬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면, 스스로 목표하는 기간을 세워두고 시간을 보내도 좋다. 하지만 쉬는 동안은 스스로를 쪼거나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찌 됐든 인생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금 잠깐 쉰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