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그렇지 않아요. 괜찮아요.
지금 다시 봐도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무시무시하고 무기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권고'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이라고 한다.
과연 '권고사직'도 사직을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말이 '권고'지 회사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실 통보나 다름이 없고, 그게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사원이라면 그 권함에 어쩔 수 없이, 힘을 쓰지도 못하고 응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자로 지정이 된 걸 뒤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표와 싸울 에너지도 없었...)
그 권유에 어쩔 수 없이 퇴사하기로 했음에도, 퇴사했음에도 여전히 내 책임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로, 내가 자진해서 퇴사한 것도 아니었고 내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라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인데..'라는 생각에 자꾸 스스로를 등 떠밀려 쫓겨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설명하는 나 자신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말하다가도 울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고, 스스로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파워 외향형인 내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들어질 줄이야...
자책감, 괴로운 감정. 들 수 있다. 사람이니까.
며칠은 너무 속상한 마음에 혼자 이불속에서 엉엉 울고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도 된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된다. 그 무기력함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무기력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인지하고 돌봐야 한다.
그래도 된다. 전문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아도 좋고, 주변 선배나 어른께 자문을 구해도 좋다. 아님 비슷한 일을 겪은 주변 지인들을 만나 한탄을 하는 것도 좋다. 나는 내 상황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그 상황을 듣고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람들이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으니 내 상황을 다 이해해 주는 소중한 누군가와 꼭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사실 그래도 억울함이 다 풀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정말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가득 채워도 모자란 시기다. 그 사람들의 사랑과 위로를 연료 삼아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빼는 것이 중요하다.
제일 쉬운 방법 중 하나로 '권고사직을 당한 친했던 직장동료들과 같이 신세한탄을 하는 것'도 있다.
그들과는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말들이 있으니 자주 연락을 하기도 하고, 다 같이 제주도로 즉흥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함께 하면 할수록 '권고사직을 당한 건 나 혼자가 아니다. 괜찮다'라는 생각에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과 위안이 들기도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동료들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내고 난 후, 우리는 더더욱 단단해졌고 서로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서로 갈 길을 찾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느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지만, 전 직장에서 소중한 사람을 얻었고 이제는 그들과 그때를 추억하며 웃을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권고사직 통보 후, 몇 달은 나도 '내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내가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만큼 내게는 큰 사건이었고 큰 아픔이었다.
그랬던 내가 수많은 시간과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좋아졌고 그만큼 단단해졌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으니 충분히 가슴 아파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기를. 스스로 고생했다고 다독여주기를.
도움을 청하기 어려워도 괜찮다. 충분히 혼자 아파해도 된다.
그래도 스스로 너무 초라하고 괴로운 생각이 든다면, 내 글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고, 진짜로 괜찮아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낸 구) 직장동료 현) 친구 Y, S에게 바친다.
정말 너희와 함께 아픈 시간을 견뎠기에, 더 잘 버티고 웃을 수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맙고 애정해.
우리 앞으로 꽃길만 걷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