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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니킴 Oct 19. 2023

ep.01 권고사직을 당했다.

통보받을 때 그 싸늘한 느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23년, 4월의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회사의 재정난으로 팀에서 1-2명씩 권고사직을 당하고 있었고, 그게 누구일까 누가 먼저 불려 갈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우리 팀 제일 마지막에 대표 면담을 하게 되었고, 내가 퇴사하는 것으로 통보받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왜냐면 나는 팀장이었으니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나오지 말라는 거지..? 내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근데.. 앞으로 내 커리어는? 당장 전세이자는? 차 할부는 어떻게 내지? 눈앞이 막막했다.

그래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단다. 불행 중 다행이라나 뭐라나. 그날 혼자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체계가 없던 회사에서 내가 그동안 배워온 커리어로 체계를 만들어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그만큼 성과도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고 퇴사라니..  

밤낮없이 열심히 한 결과가 이거라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정말 이를 꽉 깨물며 몇 시간 동안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마도 가장 많이 울고 힘들었던 시기였을 거다.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으니까.

비유하자면, 시속 120km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그냥 문 열고 나를 내동댕이친 느낌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스스로 자책하기 일쑤였다. 너무 분해서 잠도 안 오고 가슴이 패인 것처럼 너무 속이 쓰렸다.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너무 힘들고 속상한 마음에 절을 다녀오려는데, 절 가는 길 내내 운전하면서도 오열을 할 정도였다. 정말 분노에 휩싸인, 가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사직서 제출하러간 날 찍은 사진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벌써 10월 중순이다. 반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정말 많이 회복했고, 오히려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 권고사직을 당하고 난 후 내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떤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왔는지 기록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꼭 권고사직 당하신 분들께서 많이 많이 읽어주시고 서로 공유하며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권고사직 당한 사람들은 당장 너무 황당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험담입니다)



첫 번째, 퇴사일자를 정하고 아무리 불쾌하고 힘들어도 잘 마무리하고 나오세요.

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 너무너무 마음이 힘들고 그러지 못해도, 잘 마무리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평소에 회사생활을 잘했다 하더라도, 끝맺음이 좋지 못하면 꼭 한 소리 듣더라고요. 도저히 그럴 마음이 안 생긴다면, 평소에 교류가 있거나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라도 좋은 마무리를 하고 나오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두 번째, 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챙길 수 있을까 고민해 보세요. 

그동안 일했던 작업물들을 꼭 챙겨야겠죠? 다음 구직활동을 위한 포트폴리오 리뉴얼을 위해서라도요.

그리고 꼭 주변 동료들에게 '수치' 데이터 부탁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해서 구독자가 몇 만 명이 상승했다던지, 조회수가 얼마나 올랐다던지 등 이런 수치들을 기록할 만한 무엇이든 요청해 자료로 가지고 계세요. 그게 어렵다면, 캡쳐해서라도 증거물을 꼭 남기세요. 어디서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지 모른답니다.

또, 저는 정말 좋아하고 교류도 잦았던 동료분들은 꼭 한 분씩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같이 견딜 수 있었고, 남아있는 분들도 마음이 좋지 않을 테니 같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중을 약속하는데 그것 또한 작은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그분들의 응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 번째, 당분간 정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가득 채워 보내세요.

회사에서 쫓겨나는(?) 상황 때문에 제 자신이 싫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마다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사람들 앞에서 펑펑 울면서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견뎌나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싫은 소리 하나 안 하는 사람들이니 더더욱 마음 터놓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요.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많이 감정을 쏟아내 보세요. 우는 건 좋은 겁니다. 안에 있는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된다는 거니까요. 그동안 열심히 일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여러분을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토닥여줄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 시기를 어떻게 잘 견디고 헤쳐나가냐에 따라 후폭풍이 더 거세게 올 수 있으니, 충분히 마음 아파하고 감정을 토해내세요.


네 번째, '권고사직'은 여러분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만은 확실히 아셔야 해요.

여러분이 잘못해서 퇴사한 것도, 여러분이 문제가 있어서 퇴사하는 것도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제 얘기가, 제 글이 잘 안 와닿는 것 너무 잘 압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가슴에 정말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아서 너무 무기력하고 힘드실 텐데요,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는 시기가 옵니다. 이걸 지내고 나면 훨씬 더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이겨냈으니까 여러분도 정말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커리어를 향해 달려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어깨에 가방을 좀 내려놓고 쉬어봅시다.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져요. 정말로요!

여러분의 무소속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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