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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I. 고민없는 삶은 없다

실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이 한번 실패하면 무슨 일을 할 때 고민이 많아진다. 또 실패하지는 않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 고민에만 빠져 있기 쉽다. 그런데 그보다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그 일을 왜 하려는지 핵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지열이라고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지열이를 ‘오뚝이 홍재’라고 부른다. 홍재는 최근 모임에서 만난 친구로 누구보다 붙임성이 좋고 정이 많은 친구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사로 안 본다며 스스로도 ‘변호사 같지 않은 변호사’라고 말한다. 그만큼 지열이는 흔히 변호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인간미가 폴폴 넘치는 친구다. 지열이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지열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여동생 이야기가 나왔다. 

지열이의 여동생은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몸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오빠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동생은 오빠에게 ‘오빠는 사법고시에만 전념하라고,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씩씩하게 오빠를 위로했다고 한다. 지열이는 사법고시에 여러 차례 떨어졌는데, 그때마다 주저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여동생이 씩씩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버티고 있는 여동생을 생각하며 다시 용기를 갖고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 여동생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며 지열이는 현실은 깊은 슬픔만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픔에 매달릴 만큼 삶은 여유롭지 않았다.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 여동생을 버팀목으로 홍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열이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지열이는 실패에 대한 불안,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형님,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두려움은 갑절로 커졌어요. 한동안 안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짓눌렀어요. 그러다 보니 실패 자체가 두렵더라고요. 무엇이든 실패할까 봐 노심초사했어요. 하다못해 인강에 접속하는데 접속자가 많으면 나오는 ‘접속 실패’라는 알림 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라곤 했어요. 그만큼 실패 자체가 끔찍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있었죠.”

“아…… 그랬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실패하면 사람이 움츠러들지. 누구나 그럴 수밖에. 그럴 때 계속 움츠러들 것이냐 튀어 오를 것이냐, 그 선택은 바로 자기 몫이지만 쉽지 않지.” 

2012년에 그래픽노블 작가로 유명한 닐 게이먼이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졸업식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실수를 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수만이 아니라 실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했으니 그 결과로 실패를 한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닐 게이먼처럼 생각을 바꿔서 실패를 해석하면 어떨까. 실패와 마주했을 때 ‘아,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찌 보면 실패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 이상한 것이다. 

누구나 실패를 경험하면 부정적 태도를 갖기 쉽다. 실패를 두려워할 수는 있으나 그 두려움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보다는 실패를 또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도전하는 것이 훨씬 낫다. 홍재는 사법고시에 거듭 실패하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부정적인 마음 상태에 놓였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했기에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실패했다고 멈추면 실패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실패를 배움의 기회로 삼고 더 나아간다면 실패는 과정의 일부가 될 뿐이지, 결과를 좌우하지 못한다. 

서울대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변리사 동생이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선언할 때 나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밖에 나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좀 더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마음 역시 컸다. 이 친구를 잘 알고 있는 나는 힘 있는 목소리로 격려했다. 

“너라면 일단 무조건 일을 저질러도 돼.”

안정된 둥지를 떠나 낯선 환경에서 일하려고 하면 당연히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어떤 일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잠시―때에 따라서는 제법 긴 시간일 수도 있다―어렵고 힘들겠지만 그 또한 지나간다. 세상을 살아 보니 죽을 것처럼 힘들게 느껴지던 때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그보다 더 힘든 일을 마주하게 되더라. 그러니 지레 겁부터 내고 두려워하지 말자. 

내 예상대로 현재 이 친구는 자기 길을 묵묵히 잘 걸어가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야 실패가 없을까? 단언하건대 그런 삶은 없다. 어떤 삶을 살아도 실패와 마주치기 마련이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하다. 실패를 잘 받아들이고 좀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실패는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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