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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Ⅰ. 고민 없는 삶은 없다

잘나간다고 무사태평한 것은 아니다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쪼개 가며 밤낮으로 일해도 늘 제자리인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돈만 많이 번다면 모든 고민이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돈 문제에서 자유로우니 삶이 편할까. 

지인 가운데 성형외과 의사가 있는데, 그는 한 시간에 700만 원을 넘게 번다고 한다. 한 달에 700만 원을 벌어도 부러울 판에, 한 시간에 700만 원이라니 엄청나게 많이 버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친구는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너무나 고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했다. 

그래도 한 시간에 700만 원이나 버는데 그 정도 노고와 스트레스는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겠지만, 그 친구는 진심으로 지금 하는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처럼 큰돈을 번다는 이유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도 자기가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최 닥터, 그렇게까지 힘들면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지. 뭐 생각해 본 일이 있어?”

“형, 내가 성형외과 의사니까 화장품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

“그래, 좋은 생각이네. 그럼 화장품 사업인데 혼자서는 힘들지 않을까.”

“맞아요. 화장품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업자가 있기는 한데 동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도 문제이지만 동업은 계약관계를 아무리 명확하게 해도 뒤탈이 날 수 있거든. 게다가 너는 열심히 칼만 써 왔지, 사업은 해 본 적이 없잖니.”     

그 후배는 꿈속에서 피 칠갑의 수술실과 선혈이 낭자한 수술대가 수도 없이 나와서 수술만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며, 더는 손에 피 묻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성형외과 의사와 화장품 사업가의 갈림길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망설이고 있다. 

나는 그 후배가 성형외과 일을 계속 하든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든 관계없다. 다만 무슨 일을 하든 번민하지 않고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만한 의미를 찾고 그 일을 해 나가는 힘으로 삼기 바랄 뿐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최 닥터 못지않은 위치에 있는 후배가 있다. 오랜 시간 나와 같은 학교에서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대한민국 수능 국어계의 스타 강사로 잘나가는 민호라는 친구다. 민호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어른스러워서 마치 동갑내기처럼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다. 자아가 강하고 스스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능력자여서 특별히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 친구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휴대전화에 부재 중 전화가 한 통 와 있었다. 민호였다. 발신 시간이 내가 한창 잠에 빠져 있던 새벽녘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되어 얼른 전화를 걸었다.  

"민호야, 전화했던데 무슨 일 있니?”

“아, 형. 새벽에 미안.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서 직접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만난 민호는 얼굴에 고민이 가득해 보였다. 민호는 수능계에서 아주 잘나가는 강사인데도 치열한 경쟁 관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무척 커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돈 잘 버는 스타 강사이지만 하루하루 원고 작성부터 수업 준비까지 촌각을 다투고 피를 말리는 경쟁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사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인생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민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학원가에서 강사로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자기 이름을 내걸고 오너가 되어 학원 경영을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고민이 얼마나 깊으면 잠 못 들다가 새벽에 전화까지 했을지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그런 기훈이의 상황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민호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만만찮을 것이다. 밤을 새워 강의 준비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런 생활이 나이가 들수록 힘겹고, 이제는 건강도 챙겨야 할 나이인데 긴장과 압박감으로 점철된 생활의 반복에서 느끼는 피로감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생각을 하니 미래가 불확실하고 성공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 한 발을 내딛기도 쉽지 않으리라. 

민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의자에서 떨어져 엉덩이뼈가 다치는 사고에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복대를 하면서 강의를 하는 모습에 남다른 애처로움이 더했다. 죽어도 강의실에서 죽어야 한다며, 지금 아프다고 강의를 접으면 너무나 무책임해서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른바 잘나간다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멋지고 대단하고, 일도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내는 것 같고, 마냥 여유 있어 보이기까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천부적인 재능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 땀, 눈물을 쏟는다.  

마치 그 모습은 우아해 보이는 백조와도 같다. 백조는 수면 아래에서는 물살을 헤치느라 가열하게 발길질을 하면서도 고고하게 물 위를 떠다니지 않는가. 카페에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평온해 보이듯이 우리는 우아한 백조의 고고한 움직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러한 고상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그 발길질이 힘들어서 물에서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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