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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설 Oct 01. 2020

Ⅰ. 고민 없는 삶은 없다

삶은 고민의 연속

나는 여섯 살 유치원생부터 칠십 대 어르신들까지 격의 없이 만나고 있는데 그들 중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십 대는 성적, 부모 또는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고, 이십 대는 취업과 연애, 삼십 대는 결혼과 육아, 사십 대는 이직과 건강, 오십 대는 은퇴와 건강, 육십 대는 노후와 건강 등 연령대별 고민이 있는 듯싶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끝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마치 고민은 불사의 신이라도 되는 듯이 우리네 삶을 관통한다. 고민의 내용, 주제 정도가 바뀔 뿐이지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 

언젠가 헤드헌터를 만나서 이삼십 대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을 졸업하면 어렵지 않게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내 집도 장만하며 살 수 있었다. 그때는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고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취업, 결혼, 집 장만은 이제 노력하면 잡을 수 있는 꿈이 아닌, 금세 사라지는 신기루가 되고 만 것일까?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고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말이 천박하게 들린다면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로 순화(?)하면 어떨까.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능력을 펼칠 직장에 취직하고, 일해서 번 돈으로 사회적으로 최소한 평균 수준의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건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최근 몇 년 동안 60퍼센트대에 머물러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열 명 중 세 명 이상이 취업을 못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취업률은 급격하게 더 떨어지고 있고 기존에 직장에 다니던 분들도 이제는 자신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들이 자신이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아예 직장 자체를 구하는게 사실상 많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는 더더욱 어렵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싶고 안정된 일자리, 즉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당장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하루하루가 그저 고통스럽고 절망스럽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흙수저, 헬조선 등 마음을 할퀴는 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잘릴 일 없는 안정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한편에서는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왜일까?

모든 이십 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한몫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은 그럴싸해 보이는데 자기 삶은 남루하고 비참해 보인다. 멋있어 보이는 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그 일을 언제까지 할지는 자신도 알 수 없다. 어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버틸 뿐이다.

그렇다면 힘든 취업 관문을 뚫고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에 안착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도 고민과 문제가 많다. 아이엠에프 시대를 거치면서 이제 안정된 일자리는 많지 않다. 그래서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철밥통’을 차지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직장에서는 동료들과의 경쟁(성과, 승진 등), 상사와의 관계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서 좀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하려고 바쁜 틈틈이 알아보는 직장인이 많다. 신입사원 두 명 중 한 명은 1년 내에 회사를 그만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말 그대로 한시도 편한 날이 없어서 때로는 목표가 뚜렷했던 수험생 시절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유학을 가는 청년도 적지 않다. 좀 더 넓고 깊게 공부하고 싶은 학구열에 유학길에 오르기도 하지만 유학은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기 위해 스펙을 쌓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특히 내가 몸담았던 외대부고에 졸업생 중에는 유학을 간 제자들이 많다. 

그런데 엄청난 돈을 들여 유학을 갔는데도 자신이 예상한 것과 너무나 다른 환경과 기대에 못 미치는 학업 성적에 실망하여 부모님 모르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아무리 한국에서 공부를 잘해서 유학을 갔더라도 엄청난 과제에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고 고달파서 중간에 포기하려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 내가 그들에게 해 주는 조언은 너무 힘들면 자기만의 길을 한국에서 다시 찾아보라고 권한다. 외국에서 자기만의 길을 가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극한의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유학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어떤 목표이든 살아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자포자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그 순간을 버티고 살아 있어야 다른 일을 모색하고 도모할 수 있다. 힘겨운 유학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수능을 보고 자기 길을 찾아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제자는 내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수능을 보고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현재는 학교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를 준비하고 있다. 

힘든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고 해서 그 후 인생이 마냥 편한 것만도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 버클리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가에 취업한 제자가 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해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 제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등락을 반복하는 증권시장의 특성상 환희와 절망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가혹하다며 하소연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을 오간다며 힘들어 우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나 역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너무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말하니 그는 아직은 뭔가를 이루는 단계라 이곳에 좀 더 머무르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렇듯 취준생은 취준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나름의 고민이 있다. 그중 누구의 고민이 더 가볍다 또는 무겁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이 아닌 자기의 고민을 가장 중요하고 무겁게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서 있든 저마다 고민이 있고, 그렇듯이 내게도 고민이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고민을 대하는 데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고민에 빠져 있는 대신 고민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고민을 마주하기. 그것이 고민에서 헤어 나오는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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