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진료와 수술을 마친 뒤
나는 또 다른 길 위에 선다.
서울을 떠나 시골길을 한참 달리면,
어느 집 마당 끝에 이르게 된다.
그곳엔 오늘도,
처음 뵙는 어머님 한 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어느 마을 어귀, 낡은 대문 앞.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도
밭일을 멈출 수 없는 삶.
두 팔 가득 상처가 남았지만
진료보다도 이야기를 더 기다리는 눈빛.
나는 조심스레 앉아
얼마나 오래 아팠는지 묻는다.
그러면 어머님은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신다.
“병원은 너무 멀고 부담스러워서 파스로 통증을 달래고 있어요.”
진료는 곧 대화가 된다.
삶에 찌든 통증만큼
말에도 오래된 울림이 묻어난다.
“이 동네에 의사가 오는 건 처음이에요.”
말끝마다 꾹 눌러 담긴 외로움에
나는 ‘의사’보다 ‘아들’이 먼저 되기로 한다.
시간은 늘 짧다.
찻잔이 식을 무렵이면
나는 가방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그때 어머님은 꼭 이렇게 말하신다.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어, 아들.
다시 볼 날이 있을까?”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님.'
그저 오늘 하루,
누군가의 어머님 곁에 다녀온
의사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인사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창밖에 익숙한 불빛이 번지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진료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마음 한켠,
작은 마을의 안부는 쉽사리 놓이지 않는다.
며칠 뒤 다시 만날 어머님을
조용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