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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May 01. 2024

천재의 결핍이 주는 위로

대장같이 살아가기


 요즘 한창 가수 박효신 님, 대장에게 빠져 살고 있다.


 시작은 알고리즘을 타고 온 쇼츠였다. 콘서트에서 홀로 조명을 받고 있는 장이 자신의 노래 '야생화'를 부르며 울음이 터진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엄청난 궁금증이 생겼다. 세상에, 무슨 일이길래 다 큰 성인 남자가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대에서 저렇게 오열을 하는 거지? 닫으려고 하는 입술이 닫히지 않아 덜덜 떨면서도,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도 참지 못하는 저 울음의 의미는 무엇이지?


 그렇게 궁금증을 품고  몇 달간, 나도 슬슬 팬분들이 박효신 님을 부르는 '대장'이라는 호칭이 익숙해질 정도로 대장의 영상만 보고 음악만 들으며 살고 있다. 데뷔 25년 차인 가수답게 방송을 잘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자료가 있었고,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세계에 빠져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세계에 빠져 살면서 나는 생각했다. 대장처럼,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텅 빈 내 마음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 수가 없던 날 들
- Gift-


 대장의 노래를 들으면서 놀란 것은 로 풀어낼 수도 없었던 지난날의 혼란과 그곳에서 오는 불안함이 노래 안에 가득해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로가 주된 메시지어서 안심이 되었고.


 원하는 것이 있었음에도, 그저 살아가야 하기에 쉬운 길을 택했고 당장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급급하게 살았었다.


 진로를 정하라기에, 그저 방송국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택했었고, 나와 맞지 않는 직업의 현실이 무서워 도망온 지금의 회사에서 그저 돈을 벌어야 하니 살았. 정말 텅 빈 이 감정의 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무작정 일을 하고, 걱정을 했었다. 걱정할 거리가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걱정을 했다. 그래야 내가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외롭다고 느꼈다. 이 공허함의 이유를 그렇게도 찾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연인 간의 사랑이 해결해 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모든 미디어가 그렇다고 말했으니. 몇 번의 연애를 해도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은 것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생각하며 공허를 달래며 살았다. 하지만 연인과의 사랑은, 내가 경험했던 사랑 중에 가장 쉽고 빨랐고 불타올랐지만, 가장 얄팍했다.


 결국 나의 공허와 외로움은 남이 아닌 내가 해결하는 일이었음을, 그걸 모르고 남 탓을 해온 인생을 살아왔음에, 나는 또 자책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달리다 보니 결국은 거하게 체했었고.


너의 그 슬픔과 기나긴 외로움에는
모든 이유가 있다는 걸
너의 그 이유가 세상을 바꿔 갈 빛이라는 걸
-연인-


 이 곡엔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함께 외로울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이제야 나의 이 공허와 외로움은 혼자 이겨내야 할 일이라고 결론을 낸 나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 노래는 '외로울 수 있으니, 우리 같이 외롭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닌 것에, 이런 외로움과 생각을 가지고 나보다 먼저 살아간 대장이, 어깨가 무거워 보여도 잘 이겨내고 영차영차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나도 저렇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위안이 됐다.


 래서 이젠 '박효신'이라는 사람의 행복이 궁금했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는 이정표가 생겼다.


 나는 꽤 많은 아이돌을 좋아했었다. 꽤나 진심이었다. 실제로 그 아이돌을 좋아하다 만난 친구와는 아직도 아주 친하게 지낼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속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노래를 잘하지 못했다. 소위 말해 최고로 애정한다는 최애들은 오로지 얼굴만 보고 좋아했다. 어떤 최애는 춤은 열심히 췄지만 팔다리가 짧아 그렇게 매력적인 춤선은 아니었다. 또 어떤 최애는 갑자기 예능으로 노선을 바꾸더니 엄청난 막말을 해대며 구설수에 오르기를 여러 번이었는데, 지금은 그 아이돌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내가 저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돌들을 좋아할 그때는 참 많이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부족한 노래실력에도 그래, 얼굴 잘 생겼는데 노래까지 잘할 수는 없지, 했고 부족한 춤실력에도 흐린 눈을 하고 봤었다. 그래서 나는 무대를 꾸미는 것이 주업인 아이돌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무대 영상은 많이 보진 않았다. 재미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인생의 많은 순간을 스스로 세뇌하며 살았다.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괜찮다고, 경험이라고. 이유를 모른 채 혼이 나도 내가 잘못했을 거라고, 선배작가는 얼마나 답답했을 거냐고. 하지만 이렇게 나를 속이는 행위는 트라우마라는 이름으로 꽤나 오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남이 나를 막대한 것보다도, 내가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슬퍼서. 그래서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렇게 살아왔던 나인데 이게 무슨 일인지, 대장의 무대영상은 데뷔 무대부터 방송 무대는 다 봐버리고, 콘서트 영상에 이젠 볼 게 없어서 군인시절 영상도 보고 군인방송 라디오까지 찾아 듣고 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가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고, 무대는 그 가수가 노래로 꾸미는 공간이다. 세상이 변해 비주얼로 무대가 꾸며졌다고 한들, 진심을 담은 가사를 엄청난 노래실력으로 꾸미는 무대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심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매일을 버릇처럼 숨만 쉬며 사는 거 말고
한 순간 불꽃처럼 사라질 신기루 말고
마지막 그날에 후회 없도록
내가 택한 길
-리라-


 예전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쓰면 안 된다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고.


당연한 얘기이지만, 구성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 시절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창작보다는 방송국에서 많은 정보들을 정리해 구성하는 것을 꿈꾸는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구성작가도 해보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 나는 다시 글 쓸 구멍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서서히 생각이 많아진다. 그 생각들이 여러 가지로 발전해 뒤엉켜 걱정과 불안이 되고 이는  좌절된 현재와 우울한 내일을 만든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와 공허를 쌓는다. 결국은 이 괴로움에서 날 회피시킬 남을 찾게 되고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아가는, 그런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은 게 참 어이가 없지만, 해야 한다면 나는, 제발 내가 좀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그 부분에서 정말 대장은 너무 배울 점이 많다.


 이미 괴물천재 소리를 들으며 데뷔를 했음에도, 대장은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창법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그중 콘서트에서 했던 말이 가장 나에게 많은 생각을 줬다.


사람들은 (제가) 노래를 잘 한대요, '쟤 진짜 노래 잘해. 근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노래를 잘하면 좋아야 되는데, 이게 뭘까?라는 고민과 질문들을 엄청 생각했던 한 때가 있었어요.


 그 생각이 너무나도 대단했다. 천재 소리를 듣고 자라 온 사람이 남의 의견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조율하며 결국 더 발전한 창법으로 나타나고,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나였다면... 이미 천재 괴물소리에 도취해 제자리만 걷다가 지겹다는 대중들의 반응에 전이랑 똑같이 했는데 왜 시비지,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인데...


 또한 음악을 위해 프랑스 시골에 자발적으로 격리를 하기도 하고 원하는 도입부 한 소절을 얻기 위해 며칠을 녹음하기도 한다는 일화를 들을 때마다, 정말 나는 대장 같은 재능도 없는데 뭐가 잘났다고 맨날 이렇게 뒹굴대는 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대장같이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고도 싶고, 영감을 위해 영화를 찾아보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등 감성적으로도 살아보고 싶다. 실제로 요 며칠을 그렇게 살았다. 퇴근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 보고 괜히 주변 카페에서 글을 써보고 영화를 찾아보고. 이런 생활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에 지쳐있었다는 것을. 항상 돈을 벌기 위해 발전해야 하고, 자투리 시간엔 주식 등의 재테크 공부를 해야 하고, 블로그 등에 꾸준히 글을 올려 수입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세상이, 생각보다 나는 체질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쉼이 나태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실제로 나는 블로그에 아무 글이라도 올리자 해놓고, 나는 며칠째 올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꾸역꾸역 일기라도 써봤지만, 그마저도 며칠가지 못했다. 브런치 글도 당연히 마찬가지. 어쩌면 나에겐 쉼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이것을 나태로 받아들였다. 결과는 또 자책이었다.


 하지만 근무시간 외에 내가 좋아하는 낭만을 찾아보니, 글을 써야 하는 소재들이 생각나고, 그 소재들이 다양해졌을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을 용기가 났다. 대장처럼 살아가는 과정이 이번만큼은 나에게 잘 먹힌 것 같다. 그리고 꽤나 만족스러웠고.



 나에겐 확신이 필요했다. 내 만족을 위해 살아도, 그 만족이 넘쳐 남에게 다정하게 살아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음에도, 완벽을 위한 결핍으로 고민하고 고생한 자가 주는 위로에 그 누가 위안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위안을 너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드디어 나의 과거를 달래고 현재에 힘을 얻어 미래를 위하는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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