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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Apr 08. 2024

여행이 준 선물

드디어 나로 채우는 일상 살아가기.

 2월 중순,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바다를 넘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의 하루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지 생생하다. 하루하루 눈뜨는 것이 너무 괴롭고 출근이 싫어, 바다를 건너 이 땅에서의 일을 다 잊고 즐길 시간만 기다리던 그때.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무슨 낙으로 살아가야 할까, 망조차 사라져 더 불행해지진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희망과 불행이 공존했던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번째 달이 지났다. 살아갈 동력이 없어 여행 따위로 인생의 희망을 걸었던 나는, 그 희망이 지난 뒤에도 생각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직도 출근은 싫지만 퇴근 후, 나와의 시간을 기대하게 되었으며, 오로지 나와 함께하는 휴일을 계획하며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이번 여행을 계기로, 의 일부를 태워 남을 갈구하던 나의 모습이, 타버린 나의 일부를 남이 채워주지 않으면 서러워하던 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지난 연애가 끝난 지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난 최근까지도 이 정도면 꽤나 괜찮아졌다 생각했었. 하지만 애써 외면하던 가장 큰 후유증은 남아있었다.


 바로 남으로 나의 시간을 채우던 습관.


 나는 항상 남의 연락을 기다렸다. 친구던 지인이던, 직장 동료던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기다림과 연락이 왔을 때의 즐거움으로 나는 나의 일상을 채우고 심지어 새롭게 내 일상에 넣을 남을 찾으려 노력도 했었다.


 그 행동의 원인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혼자는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고, 불안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그랬기에 불안했다. 렇게 지금이, 하루가, 일상이, 인생이 재미없었던 나와는 반대로 남들은 모두 재밌고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남들의 인생인 정답 같았고 내 인생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남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남들도 지루할 때가 있고 불안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남들도 똑같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 또한 남이 주는 답이기에 오래가지 못했고, 나는 계속 남을 찾아다녔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줄, 불안함을 없애줄 남을.


 그렇게 남에게 내가 다른 것도 아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으려던 시간이 한 해를 넘었고, 최근 바다를 건너기 전까지도 나는 내 일상을 남들의 관심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시간이 애석하게도 나는 이번 해외여행에서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어느 곳에 떨어져도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스물다섯 살쯤, 나는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간 아홉 개국 열 한 곳의 도시를 고장 난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제대로 된 영어 한 문장을 못했어도, 기차 좌석을 잘못 앉아 늦은 밤, 컴컴한 오스트리아 철도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을 때도, 나는 그때 경험을 웃으며 얘기할 만큼 잘 살아남았다.  

 

 타국의 공항에 떨어지자마그때의 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친구가 예약한 호텔에 픽업차량이 오기로 했지만 어느 게이트로 나가 어디서 기다려야 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심을 샀던 친구는 휴대폰 설정이 잘못되었는지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고 그때부터 유럽여행에서의 내가 튀어나와 활개 치기 시작했다. 


 블로그 후기를 보며 게이트 위치를 찾고 새로 바꾼 휴대폰으로 통역을 하며 픽업해 주는 기사님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분들 덕분에 호텔에 잘 도착했고 이후로도 결제, 길 찾기, 택시, 편의서비스 등 모든 걸 예약하고 찾아가며 나는 깨달았다. 남과의 관계가 없어도 나는 아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렇게 달이 좀 넘는 시간을 나는 나를 위해 살았다.


 휴일에는 느긋하게 헬스장을 가 몸이 개운하게 풀릴 때까지 오랜 스트레칭을 하고, 하고 싶은 운동과 공복유산소를 한다. 건강을 위해 레시피를 찾아보고 요리를 한다. 일찍 끝나는 날엔 괜히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고 벚꽃이 만개한 지금, 벚꽃나무가 즐비한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작년만 해도 전 남자친구가 벚꽃 개화를 앞두고 이별을 고한게 너무 야속했고, 같이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아 서운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 혼자서도 이리 행복한 하루가 연속인데.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건, 남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최근 결혼한 지인과의 만남에서 그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지인은 모든 판단을 남편의 시선으로 하고 있었다.


'남편이 이 음식 맛있대.'

'남편이 그 사람 뚱뚱하대' 등등.


 너무 당연하게 남편의 시선과 생각이 불변의 법칙이라는 행동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나는 지인이 저런 상태가 되어버린 과정이 이해가 간다. 나도 나에게 이별이 없었고, 이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저랬을 테니까. 아니, 연애를 하던 시절에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래서 나는 더욱 나에게 집중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어떤지, 이 판단이 내가 생각했을 때 옳은지. 그 생각과 판단이 만들어내는 일상이 나를 단단하게 쌓아갈 수 있는 행복이 있는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평생 이어질 로맨스의 시작이다.

'행복한 왕자'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이지만, 저 문장을 읽고 오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행위의 정답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가장 바랐던 안정적인 평생의 설렘. 고작 한 달째지만, 그래서 더 설레기도 한다.


 유럽여행을 가기 전, 엄마가 아시는 스님에게 고민상담을 한 적이 있다. 방송작가를 하던 때,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힘들어 힐링도 할 겸 유럽여행을 다녀올 계획인데 나에게 도움이 될 일인지에 대해. 그때 스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현실도피를 위한 여행은 핑계이지 않겠냐고. 여행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을 때, 떠나는 것이 좋다고.


 드디어 그때가 된 것일까. 여행은 남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순간을 선사한다. 그 과정에서 오로지 나와의 믿음이 생긴다. 그 믿음은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나와의 행복을 깨닫고 변화한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그런 나와 함께 하는 인생을 기대하게 하는 자세, 여행이 주는 진정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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