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환상
현실을 망쳐 온 환상
난 꽤 오랫동안 크리스마스와 생일, 그리고 새해를 싫어했다. 생일이 11월이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갑갑하고 우울해졌다. 캐럴도 꽤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생일과 크리스마스, 새해를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나의 환상 속에서 생일은 친구들과의 파티로 보내야 하고,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불빛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새해에는 근사한 곳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거나 호텔 침대에 누워 일출을 보며 지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현실적으로 저렇게 지낼 생각을 하면 벌써 힘들다. 생일이 평일이라면 다음날 출근해야지 파티는 무슨 파티냐며 지날 것이고 주말이라면 파티룸 예약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불빛 가득한 거리를 걸으면 인파에 치이고 추위에 치이고,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이벤트 겸 호텔을 예약한다면 그 하룻밤에 얼마를 써야 하는 거며, 도대체 예약은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받고 싶은 나는 남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다 하고 싶었다. 그것을 하지 못해 불행했고, 불행의 원인을 또 나에게로 돌렸다. 내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서, 친화력이 없어서, 내가 대단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저런 실체 없는 환상으로 나의 현실을 얼마나 망쳐왔을까. 저렇게 산다고 한들 남에게 보여주기 급급했을 나는 저 상황에서 행복했을까.
이젠 난 여름이 지나면 크리스마스 캐럴을 플레이리스트에 올린다. 짧은 환상 후 실망으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즐겁고 신나는 마음을 길게 유지하고 싶은 이유였다.
생일 땐 엄마와 꼭 함께하고 싶었던 호텔에서의 호캉스를 하기로 했다. 친구와 갔던 곳이었는데, 엄마와 꼭 함께 방문하고 싶었던 호텔로. 또한 항상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친구와의 호캉스, 가족과의 식사 등등 이미 행복한 약속들이 너무 많이 잡혀있다.
이제 내 목표는 혼술과 영화로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자립심 가지기이다. 남의 시선을 제외한 채로 꿈꾸는 나의 완벽한 기념일. 상상만으로 설레는 것을 보면 목표에 다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