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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호 Nov 17. 2019

한라산과 락시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현실에서 나를 떼어 놓으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어둑한 방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언젠가 술을 자주 마셔 고민이라는 내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그렇죠. 현명한 친구입니다. 릴 아저씨는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지진 후엔 술 없인 잠들 수 없다고 했죠.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떠난 남은 자식의 걱정 또한 술에 기댔을 것입니다.


재건을 약속했던 네팔 정부는 그들이 머문 임시 움막 터에 박물관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아픈 기억을 팔아 돈을 벌겠단 심산이겠죠. 그들의 보금자리에 대한 대책을 물으면 침묵으로 대답했습니다. 지진 후 구호물품을 보냈을 때, 네팔 정부는 공항으로 들어온 구호 물품을 통과 시키지도 않고 쌓아만 두었습니다. 구호 단체에선 급히 사람을 보내 수화물로 직접 물품을 날랐고, 평범한 회사원인 저는 애타게 바라만 보았습니다.









어리석은 나와 시름이 그치지 않던 그가 지새우던 긴긴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넘치는 옷과 생필품을 넣었다 뺐다 무게를 가늠하면서도, 그와 함께 마실 한라산 소주는 깊숙한 곳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 앉았습니다. 한라산을 따르고 갓 빚은 락시를 받아 들고 긴긴밤이 찾아왔습니다. 말은 느렸지만 밤은 길었고, 슬픔이 우리의 안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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