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국어 강사의 출근길
매 기수가 시작될 때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교실 문 앞에 서면, 그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의 얼굴이 아직 보이지 않는데도 이미 나는 알 수 있다. 오늘 이 문을 여는 손이 가벼울지, 무거울지를.
어떤 기수는 다음 날이 무척이나 기대되고 설레어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다. 새벽까지 뒤척이다가도 아침이 되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수는 합이 그리도 맞지 않아 천근만근 무거운 두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마치 커다란 돌 하나를 등에 짊어진 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왔던 미란다 비서의 대사인 “I love my job”을 연신 되뇌며 겨우겨우 교실로 향해야 했다. 같은 교실, 같은 교단인데도 어떤 날은 천국이었고 어떤 날은 전쟁터였다. 그 차이는 정말이지 동전 한 면만큼이나 얇고도 결정적이었다.
나와 합이 잘 맞던 기수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아’만 해도 그들은 ‘어’를 외치는 것만 같았다. 문법 설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 내가 던진 농담에 배를 잡고 웃어주는 학생들, 쉬는 시간에도 교실을 떠나지 않고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옆에서 수다를 떨어주던 학생들. 수업이 진행되는 모든 시간이 정말이지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 날엔 연강이 몇 시간 동안 어어져도 고되지 않았고, 퇴근길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합이 유난히 맞지 않던 기수는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기업강의 특성상 모두 성인이었음에도 그 좁은 교실 안에는 성인들 간의 세상만사 모든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었다. 강사들 간의 불협화음,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때로는 강사에 따라 학생들의 파가 나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학생들 사이에 부적절한 이상 기류가 도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성인반 학생들을 다년간 지도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국가 간의 민감한 정치 이야기나,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오피스 동료들 간에 간혹 발생할 수 있는 미묘한 기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 수업 중 예시를 만들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 쉬는 시간의 가벼운 농담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의도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다 같은 인간입니다. 중국어로 런레이(人类), 인간이에요.” 학생들은 이 말을 즐거워했고, 내가 선창 하면 그들은 자연스레 뒤를 이어 말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강조하며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료의식을 심어주려 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한 2인 1조 몸풀기 체조(등을 맞대거나 손을 잡고 하는 스트레칭)를 할 때도, 게임을 할 때도, 문장을 만들 때 학생들을 예로 들 때도 특정 성별이 부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했다.
하지만 함께 근무하던 B강사의 시간은 그 모든 것이 너무 자유로웠다. 그 강사는 강사들 사이에서도 독거다이, 개성이 아주 강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피해 가던 수위 높은 농담들을 스스럼없이 했고, 학생들 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방관했다. 결국 그것은 사내 큰 이슈로 번졌고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했다. 당시 B강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지만, 당사자 두 학생은 인사가 개입되면서 특히 한 학생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가 몇 년 후에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어디에나 이런 상황들은 발생할 수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감정이 있고, 감정이 있는 곳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해외에서 내 나라의 언어를 전달하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들이 모인 이 교실만큼은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의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학생과 강사 간의 합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강사와 강사 간의 합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 명의 강사가 만든 분위기가 교실 전체를 바꿀 수 있고, 한 번의 부주의한 말이 한 학생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시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합’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기분이 맞는다는 것을 넘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교실 문 앞에 선다. 이 문을 열면 어떤 하루가 시작될지, 이번 기수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문을 여는 순간만큼은, 나는 최선을 다해 이 공간을 존중과 배려로 채우려 노력할 것이다.
동전의 어느 면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동전을 던지는 손은 떨리지 않도록.
I love my job.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