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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물박사 김민지 Oct 19. 2022

시인이고요, 에이전시인입니다

s#8 꼬르륵 소리는 못 참지

회사에서만큼은 조금도 요란해지고 싶지 않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류승수의 말마따나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으련만. 누구도 나를 그다지 안 궁금해하고 멘탈마저 가난해지는 와중에, 나라는 인체의 덩이만 인식이 되어서 의도치 않게 잠깐씩 주목이란 걸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꼬르륵 소리가 나고 그럴 때가 그렇다. 타고난 유당불내증과 과민한 위장 탓에 테트라팩에 담긴 두유를 마시는 아침에도 빨대만 물었다 하면 꼬르륵 소리가 나서 난처했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도 아닌데, 그 소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터득한 방법은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만큼 동시에 악력을 써서 테트라팩을 손에 쥐고 천천히 홀쭉하게 만드는 것이다. 빨대에서 입을 떼는 순간에도 테트라팩은 계속해서 홀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다지 홀쭉하지 않다. 아침 거르고, 점심 대충, 저녁에는 세상 망할 것처럼 폭식을 해대는 탓에 여차하면 배고프지 않아도 배에서 종종 소리가 난다.

어느 날 오전이었다. 점심시간까지 대략 37분이 남은 시점, 너무도 선명한 꼬르륵 소리가 배에서 울려 퍼졌다.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맞은편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나는 내게 있는 평정심을 다 끌어모아 아무렇지 않은 척 전방에 있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타이핑을 이어 나가려 노력했다. 그 순간 그의 상사가 그를 불러낸 덕분에 몇 초간 화끈거리던 얼굴을 식힐 수 있었다.

일이 바빠서 잠시 자리를 피하는 타이밍마저 놓쳤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발휘하는 나의 기지는 무언가를 분주하게 찾는 사람처럼 책상 옆에 놓인 서랍을 힘차게 열었다 곧바로 닫는다거나 키보드를 더욱 가열차게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서 공명하는 소리는 아무래도 사물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지독한 인체. 지독한 회사. 지독한 피드백. 지독한 나의 에이전시 생활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어제 파티션 너머 얼굴을 사선으로 맞대고 앉아 일하던 대각선 앞 자리 사람이 퇴사를 했다. 말 한 마디 섞은 적이 없지만, 두 달여 전 이곳에 막 왔을 때에도 곧 일을 그만 둬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표정이었다. 다른 날의 퇴사 풍경과는 다르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러 나섰다.

딱히 인연이 없는 나는 자리에 앉아 대충 때운 점심 식사가 바닥나기 시작했음을 직감하고 또 다시 밀려드는 꼬르륵 소리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옆자리 동료 분이 금방 사온 붕어빵 한 마리를 건넸고, 그 말 못할 뜨끈함과 달달함에 그동안 느꼈던 고충의 혈자리가 진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허기는 답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밥을 찾을 것이다. 이 답이 없는 밥벌이의 현장에도 붕어빵은 유입된다. 집에 가는 길 골목에서 붕어빵을 샀다. 두 마리에 천 원. 도무지 답이 없는 물가지만 좋아하는 붕어빵이니까 산다. 인물 사진 모드로 붕어빵을 찍고 오늘의 허기와 온기를 동시에 기억한다. 꼬르륵 소리는 못 참지만 내일은 좀 더 노련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직접 요리해서 끼니 챙겨 먹는 분들 존경합니다
추신, 안녕하세요. 만물박사 김민지입니다. 최근에 부쩍 공기가 쌀쌀해졌는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 연재가 끝나면 연말이 코앞일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좋은 것을 나누고자 오랜만에 끝에 링크 하나 달아 둡니다. 피곤한 날엔 포근한 목소리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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