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地不熟
다른 나라, 다른 공간으로 가서 살아보기.
언뜻 듣기에는 많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4년으로 예정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기에 출국 준비는 중구난방이었다. 어느 날은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별일 있겠냐며 지나칠 정도로 낙관하면서 손발을 충분히 쉬게 했고 또 다른 날은 모든 게 낯선 공간에서 헤맬 것을 염려하여 작고 하찮은 것까지도 살피고 준비하느라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소용돌이쳤다.
출국을 위한 병원 순례가 며칠 동안 이어지던 어느 날 치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평소 지지하던 정치인이 세상을 던졌고 그가 버린 세상에 남은 사람은 거리에서 주저앉을 정도로 좌절했다. 모든 기억이 흐릿해지지만 그해에 있었던 일들은 그의 죽음으로 항상 또렷해지고 그래서 중국 선전으로 생활터를 옮긴 시기도 잊히지 않고 정확하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충격적이고 가슴 저린 죽음을 뒤로 하고 잘 몰라서 신비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탑승교에 미처 닿지 못한 비행기는 승객을 버스에 태우고 활주로를 이리저리 돌다가 겨우 출국장으로 데려다 놓았다. 탑승교를 따라 한 손으로 캐리어를 멋지게 굴리며 출국장으로 향하는 모습만을 그렸을 뿐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낑낑대면서 내려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수하물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비행기 안으로 들고 온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니 이 나라, 이 도시의 여름 날씨는 각오한 것보다 훨씬 덥다.
누군가 사방에서 뜨끈한 미스트를 뿌려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습하고 후덥지근한데 하늘은 비현실적인 구름으로 가득했다. 윈도 배경 화면과 같은 휴양지 하늘과 그에 못지않은 더운 습기를 품은 공기가 이 도시의 첫인상으로 진하게 남았다.
8월 한여름의 끝자락, 태풍과 스콜이 반복되는 선전을 분당 같은 신도시라고, 인구가 서울과 맞먹을 정도의 거대 도시라고, 아직 젊은 신생 도시라고 사람들은 얘기했다. 찻길은 곧고 넓었으며 외관이 화려하고 드높은 빌딩 숲이 강남의 어느 거리와 비슷했다. 그것도 부족한지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공사 현장이 많았다.
도시 곳곳은 아열대 기후에 맞게 거대하고 생소한 나무와 꽃으로 가득했고 더위를 가볍게 여기는 현지인들은 군데군데 모여 아침체조를 즐기고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저녁에는 아침보다는 과격한 댄스를 즐겼다. 남방의 사람들은 대체로 몸이 작고 말랐으며 한국인보다는 커다란 눈으로 많이 웃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든 한결같이 몸을 움직이며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디에나 거짓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항상 신기하다. 이날 낯선 곳에서 마주친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현지인들도 충분히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낯설어 하루종일 두리번거리던 눈길이 조금은 안정되는 순간이었다.
人生地不熟
1. 사람도 생소하고 땅도 익숙하지 않다
2. 환경이 낯설고 물설다
3. 사람도 낯설고 길도 잘 모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