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노동력에 익숙해지기
처음 중국에서 살게 된 집은 가족 수에 비해 너무 컸다. 광활하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넓어 사용하는 공간보다 버리는 공간이 훨씬 많았다. 가장 안쪽에 있던 방과 현관문까지 거리도 상당해서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나가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넓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불편했다는 말이다.
방 4개, 화장실 3개, 그리고 다른 공간에 비해서는 좁은 주방과 드넓은 거실을 가진 고층 아파트였다. 집안에는 주인님이 남기고 간 중국풍이 강한 가구와 장식품들이 방마다 그득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인들은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에 주로 거주했고 그런 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보다는 대체로 넓었다. 갑작스럽게 파견이 결정되었고 짧은 시간 안에 구할 수 있는 부동산 물건이 많지 않은 탓에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중국의 아파트 내부는 우리와는 달리 모두 다른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집이 회벽 상태로 분양되면 주인은 그 위에 인테리어를 앉히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주인의 성향에 따라 집 내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살던 28층은 홍콩으로 나가는 긴 다리와 바다가 보일 정도로 경관은 뛰어났지만, 하얀색 대리석이 깔린 바닥과 오래된 누런 벽지, 그보다 더 고색창연한, 진품명품에나 나올 듯한 가구와 장식품으로 늙어 보였다. 집 자체가 노인 같았다.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26층 한국인의 집은 따듯한 주황색 타일의 벽과 현대식 주방과 가구로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알게 된 한국인의 집이 모두 다른 모습이었지만 임대료는 비슷했고 그래서 조금 억울했다. 왜 하필 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중국인들이지만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차지하는 면적은 작은 편이다. 이렇게 큰 집을 소유한 중국인은 꽤 부유층이라 대부분 입주 가정부를 들였고 그들이 주로 가사 도맡았다. 구조를 보면 아마도 우리 집의 주인도 사람을 들여 가사를 맡기며 함께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이 집도 주방과 그 옆에 작은방과 화장실이 집 한쪽 구석에 나란히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집구석에 마련된 외부인을 위한 공간은 다른 곳보다 무척 협소하고 초라했다. 화장실은 당연히 수세식이었지만 좌식 변기 대신 쭈그려 앉는 변기가 놓여있었고 방은 유난히 비좁아서 이부자리가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과 하녀의 위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어떻게든 차별을 두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 공간을 우리 식구가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인 부자가 된 양 사람을 들여 함께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집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넓었다. 입주 가정부가 사용하던 방과 화장실을 봉인해 두고 손을 대지 않는다 해도 거실만으로도 상당히 지치는 크기였다.
안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제대로 해내기엔 역부족이라서 난처해하던 최대의 난제, 청소 때문에 고심하던 그때 등장한 것이 '아이(阿姨)'였다. 우리말의 '아이'와 거의 같은 발음이라 헛갈리기 쉬운 단어 '아이(阿姨)'란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다. 적어도 이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의 도움을 받지 않는 집은 거의 없었다.
가사를 직접 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집안일을 해결하는 것이 보편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가사를 해결하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주저했지만, 청소만이라도 해주는 아줌마를 고용하기로 했다. 주 2회 2시간, 한 달에 2백 위안(당시 환율로 3만 5천 원)이 노동 조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임금이지만 그때도 지나치게 헐값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우리 집에 와준 아이는 충칭 사람이었다. 50여 개의 민족이 있고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인 만큼 보통화라 불리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만큼이나 민족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은 보통화를 조금씩 익혀서 간단한 대화는 별 무리가 없었는데 충칭 아줌마는 사정이 달랐다. 사방이 모두 똑같은 지름으로 완벽하게 동그란 눈을 가지고 있던 충칭 아이는 사투리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삐사감도 도착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한국어만 하는 한국인이었으니 둘이 만나 백날을 떠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한 줌도 안 되었다.
아줌마가 집에 오기 전부터 안절부절못했다. 사람을 집으로 들여 도움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미천한 언어 실력도 불안한 마음의 원천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몸짓으로 소통했다. 집 안에 머물고 있으면 아줌마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보여서, 집을 비우자니 흉흉한 소문에 불안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앉아 있었다. 아줌마가 거실을 청소하면 방으로 피신하고 방을 청소하면 다시 거실로 나가는 식으로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도 가끔 '타이타이(太太)'라고 아줌마가 삐사감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온 신경을 다해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크고도 큰 존재인 타이타이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거저거 지시하지는 못할망정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아줌마가 빨리 일을 끝내고 가주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충칭 아이가 자기만의 말을 뱉어내곤 눈을 부릅뜨며 삐사감을 쳐다본다. 그의 표정과 아우라로 대충 감을 잡은 후 무지하게 짧은 보통화로 대거리를 한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는 말은 사투리.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두어 번 집에 와서 일을 해주던 아줌마는 아니나 다를까 그만두겠다는 것이었다. 아줌마는 주 2회, 2시간 청소만이라는 근무조건이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청소, 요리, 세탁 등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면서 긴 시간을 일하고 비용도 더 치러주기를 바랐다. 주변에는 이 모든 것을 해주는 조건으로 주 3회, 4시간 동안 일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아이가 집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불편하게 느끼던 삐사감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애초에 서로 바라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太太
1. 명사 마님.
2. 명사 옛날, 관리의 처에 대한 통칭.
3. 명사 하인이 여주인(女主人)을 부르는 호칭.
어학사전에서 말하는 마님, 하인 같은 전근대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은 더 이상 아니다. 어원이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 정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