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애국가가 울렸다. 운동장에서 막바지 연습에 열을 올리던 어린 우리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애국가가 끝나길 기다렸다. 국기 하강이라는 장엄한 의식이 끝나고도 운동회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부채춤을 비롯한 온갖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한 연습이 방과 후부터 저녁 시간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으니 배는 고프고 집중력은 사라지고 선생님은 짜증이 늘어갔다.
운동회 연습을 마르고 닳도록 했건만 100미터 달리기만큼은 체육 시간에 몇 번의 연습으로 끝이었다. 커다란 총소리에 긴장감을 더하는 달리기는 개인에게 단독으로 소소한 상품을 쥐여주고, 1~3위까지는 팔뚝에 인증도장을 받아 하루 종일 자랑거리를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삐사감은 모든 체육 종목에서 부족함을 보였지만 달리기에서는 유독 더 취약함을 드러냈다. 출발 총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가슴이 콩닥콩닥 떨려서 정신을 못 차리다가 총소리에 화들짝 놀라 출발마저 늦어버리는, 운동신경이 둔한 전형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항상 20초를 넘어섰다.
초등 시절 체육 시간은 나가서 노는 시간 같은 느낌이었고 운동 감각이 부족해도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줄넘기나 고무줄놀이는 오히려 잘하는 편이라 편을 가를 때는 깍두기 신세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연합고사(고입선발고사)에서 체력장이 20점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 시험을 앞두고 생애 최초로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방과 후 체력장 종목을 연습하는 나머지 공부라니... 누구처럼 체대 입시를 위한 서전트 점프가 아니라 공 던지기, 윗몸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등을 연습했던 오후의 운동장은 덥고 쓸쓸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뜀틀 앞까지 힘껏 달려가 우뚝 서거나, 발야구 타석에서 헛발질해서 공격 기회를 놓치거나, 피구에서 첫 번째로 아웃되는 체육 모지리로 살았다.
몸을 움직이는 일에서 재미와 놀이는 사라지고 ‘점수로 평가되는 체육’이라는 다른 의미가 커졌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서 오래 버티거나 스카이콩콩을 타고 가까운 친구네 집까지 콩콩대고 가거나, 천천히 오래 달리는 일은 비교적 잘했는데 그런 것들은 평가 종목으로 합당하지 않았다. 둔한 운동신경이 원망스러워서 부모 중 누구의 유전자인지 따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체육'에서 해방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달리는 일은 없었다. 신호등이 점멸할 때 고민하다가 드물게 달리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어쩌다 용기를 짜내어 깜빡이는 신호등을 바라보며 건널목을 가로질러 달릴 때면 등뼈가 시큰해지면서 다시 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몸이 이래도 되나…
열대야가 며칠째 이어지던 여름밤, 러닝 크루가 더위를 뚫고 뛰어나간다. 중년의 남자가 동영상을 보면서 주위의 시선을 잊고 골프스윙 자세를 따라 하고 있다. 건물 위층에 자리한 태권도장의 기합 소리, 찢을 듯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줌바댄스학원의 함성 소리. 모두 자기 몸을 움직이는 데 몰두한 모습들이다. 사실 삐사감은 그냥 숨쉬기 운동만 하며 살고 싶었다. 격한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시원하게 샤워하는 쾌감을 잘 알지 못해서 심장이 심하게 뛰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걷는 느긋한 밤 산책길에 느껴지는 몸의 격정이 딱 감당할 정도였다. 그래서 선택한 운동이 요가, 필라테스와 같은 비교적 정적인 운동이다.
요가나 필라테스 강좌에는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해 온 고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어려운 동작도 쉽게 해냈다. 발레리나나 가능할 법한 다리 찢기나 상체를 하체에 폴더폰처럼 접어내는 동작까지 강사보다도 완벽하게 수행하기도 했다. 대체로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삐꺽 대는 건 애매한 중년층과 젊은 층이었다. 요가나 필라테스에도 다소 격한 동작이 있지만 소도구나 기구의 도움을 받으면 조절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들 운동은 들숨과 날숨의 조절이 중요하다. 매일 매초마다 이뤄지는 일상적 숨쉬기와는 차별된, 길고 깊게 숨쉬기는 근육을 이완시켜 동작을 더 깊고 정확하게 하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좌우 대칭이 맞는 자세로 교정하는 동작을 하다 보면 얼마나 자기 몸이 관성적으로 굳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얼추 10여 년 동안 요가와 필레테스, 그리고 스트레칭 발레를 해왔고 그중 필라테스는 아직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 운동들 사이에 간헐적인 휴지기가 있었다는 게 함정이었다. 운동으로 자극시킨 안 쓰던 근육은 쉬는 동안 원래의 딱딱하게 굳어진 몸으로 되돌아가 매번 초심자의 마음이 되게 만들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꼴찌로 들어오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등수 안에 든 아이들은 도장을 찍어주는 친절한 요원의 팔뚝 도장 세례를 받는 동안, 남들보다 더 힘들고 오래 뛰어 결승점에 도착해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땡볕에서 부채춤을 백 번 추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운동회의 달리기는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가끔 요행수로 등수 안에 들 수도 있는 장애물 달리기에서도 한 번도 순위권에 들어보지 못하던 어느 날, 당당히 2위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무 님의 유치원 운동회에서 옆줄에서 뛰던 사람이 함박웃음과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2위를 차지하고 만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영광의 순간이 찬란한 웃음과 함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