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8차선 대로변에 자리 잡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교통입지가 좋다고는 하나 다른 곳보다 주변 환경은 삭막했고 열린 창문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소음에 피로감을 느꼈다. 신축아파트에서 하루종일 문을 여는 일이 힘든 상황이 되자, 온갖 유해물질로 가득한 집안 공기가 걱정되기 시작했고 초록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드는 일을 꿈꾸게 되었다. 공기정화식물의 힘을 빌려보자는 생각에 미친것이다. 마침 희귀 식물을 키워 식테크를 하는 사람, 인테리어에 식물을 적극 활용하는 플랜테리어 등이 유행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들을 시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콘크리트 안에서도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식집사를 자처할 시간적인 여유가 넘쳤다.
여린 잎이나 앙증맞은 꽃을 달고 있는 모습에 반해 집안에 들인 식물을 초록별로 보내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자신이 똥손이라는 사실과 작은 개체의 식물이 생각만큼 아파트 환경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번 휴지통으로 버려지는 그들의 잎과 뿌리가 안타까웠고 바깥 정원에서 터를 잡은 식물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는 시기였다. 식물에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들의 잎맥이나 줄기, 꽃모양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지, 잎의 두께와 모양, 솜털을 방수옷처럼 입고 있는 모습에 처음으로 눈길을 주게 되었다. 초록은 나무고 노랑, 빨강, 분홍은 꽃이라는 극히 단순한 구분으로 대충 스쳐 지나갔던 식물을 조금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자세히 보니... 예뻤다.
2021년 가을, 드디어 코로나로 인한 격리가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기관의 프로그램도 대면방식으로 바뀌었다. 식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그것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담는 일로 이어졌다. <보태니칼 아트>라는 우아하고 그럴듯한 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강일에 나무님이 사용하던 색연필과 지우개, 몇 장을 뜯어낸 스케치북을 가방에 담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강사는 사용하고 있던 전문가용 펜과 색연필, 떡지우개 등을 소개했고 너무나 다양한 도구들이 있으며 그중 진행하면서 필요한 것을 추가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초적인 선긋기와 명암의 원리를 설명하고 시연하는 것으로 끝난 첫날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런 조악한 재료로도 선을 긋고 입체를 표현하는 데는. 그러나 나무님이 초등학생 때 쓰던 색연필로 대충 퉁치려고 생각한 내가 안일했다. 형체를 잡고 색을 얹기 시작하면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태니칼 아트는 취향에 따라 색연필과 종이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지만, 고가일수록 발색이 잘되고 색감이 뛰어나다는 당연한 사실에, 그것도 도구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지금까지 이런 고가의 재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고가의 장비를 구비하고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를 먼저 걱정하는 성격이라 재료비가 수강료와 비슷하거나 조금 뛰어넘는 한도 내에서 선택해 왔다(이 말은 전문가로 발전한 적이 없다는 슬픈 고백이기도 하지만). 고급형 혹은 전문가용과 보급형의 가격차이가 꽤 커서 고민이 깊었지만, 우선은 보급형이지만 72색 색연필을 구매해서 많은 색상을 확보하고 조금 좋은 두꺼운 종이를 구비하면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입체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부족해서 색을 입히는 일은 고사하고 스케치단계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강사는 열심히, 그러나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는 어투로 빛과 그림자의 따른 명암 넣기를 설명해 준다. 오..,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쉬워서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것이 많이 쥐어짜서 노력해야 겨우 기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에 해당했다. 마치 공전과 자전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공식처럼 외우는 것처럼.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구과학 선생님을 아무리 사랑해도 공전과 자전부터 막혔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에 입체가 그랬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천 번은 색을 쌓아 올려야 세세한 잎맥과 미묘한 색변화를 보이는 꽃의 그라데이션이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겹쳐진 색이 매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어서 잘못 표현된 곳은 떡지우개로 과감하게 지워진다. 솔직히 백 번 이상은 덧칠을 해서 겨우 엇비슷하다는 생각에(착각에) 펼쳐 보인 그림은 강사님의 잔인한 지우개질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손목이 저리도록 반복한 연필질과 엉덩이가 아프도록 의자에 붙이고 앉은 몇 시간이 쉽게 무로 돌아가는 순간이지만, 조금 빠르게 지름길로 가려고 연필질을 게을리하면 어김없이 애매한 미완을 맞이한다는 확실한 원칙을 깨닫게 했다. 정직하게 정진해야 비로소 얻어지는 꽃잎 하나, 잎맥 하나가 더해져서 완성되는 작업이지만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맞이하는 즐거움은 남달랐다.
2021년에도 투자광풍이 이어졌고 많은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한 방송을 접할 수 있었다. 성공한 파이어족을 소개하면서 투자를 독려하는 한편, 투자에 실패한 사례를 소개하고 직접 상담하고 위로하기도 했다. 과거의 실패를 복기해서 새로운 투자기회와 재기를 응원하는 방송의 취지는 알겠으나 편안한 마음으로 듣기엔 들려주는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다. 떠올리기도 싫은 실패담을 잔인하고 철저하게 상기시키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조언을 흘려듣는 동안, 제비꽃의 꽃잎을 보라 계열의 색연필로 무한히 덧칠하고 있었다. 쓱싹쓱싹 몇 시간이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색얹기를 하면서도 불행을 목전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들이 실패를 만회하려면 천 번의 색 얹기보다 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어떤 일이던 중간정도까지는 잘 해내지만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업도 집안 책장 속에서 꽃잎 하나, 나뭇잎 하나가 우연히 발견되는 어중간한 엔딩을 맞이하지 않을까 초조했다. 그럼에도 연한 색 위에 조금 진한 색을 얹고 또 얹으면서 기분 좋게 멍해지는 순간. 손을 계속 움직이면 조금 몽롱한 상태가 되지만 정신은 한 가지로 모아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부자를 꿈꾸며 치열하게 뛰는 세상에서 벗어나 비록 나의 성취가 너무 작아서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아주 먼지 같은 성취에서도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연필을 일부러 칼로 시간 내서 깎고 쓱싹쓱싹 무모하게 색을 엉덩이 힘으로 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