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분단으로 나누어진 교실에서 미술과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한 분단씩 차례로 자신의 작품을 들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것을 휘리릭 보고 평가하여 점수를 기입했다. 선생님이 채점에 집중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 일당이 1 분단에서 4 분단으로 어찌 보면 꽤 먼 거리를 두고 스케치북을 전달했다. 1 분단의 친구가 4 분단의 친구에게 이미 검사를 받은 자신의 스케치북을 호기롭게 빌려준 것이다.
선생님은 범죄의 현장을 매의 눈으로 포착했다. 교단에 서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계단은 무시 못할 정도의 높이로 생각보다 학생들이 하는 짓거리가 뭐든 보인다. 무슨 사달이 나려고 저런 과감한 짓을 하는 건지 놀라움으로 온몸이 굳어지려는 순간,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마대걸레자루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작고 여린 몸의 선생님은 주저 없이 힘차게 마대걸레자루를 들고 백을 세라고 했다. 완결의 수, 엄청난 범죄를 하얗게 씻어 줄 구원의 수로 일백 번이 확정되었다.
정확히 백 대를 날려서 아이를 아작을 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모진 매질에 아이는 여러 번 무릎이 껶였다. 칠판을 잡고 엉덩이는 우리를 향해 있던 손은 탄식과 함께 칠판을 긁으며 주저앉았다. 중학시절 미술시간은 그렇게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폭력장면으로 길이길이 기억에 남았다.
미술에 워낙 소질이 없어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삐사감은 수채화, 유화 따위를 그릴 게 아니라 어떻게 형태를 잡아 스케치를 하느냐가 당면 과제였으니 초상화, 풍경화 그리기 따위를 따라가는 일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책상에는 항상 지우개똥만 가득 쌓이고 채점을 하는 선생님은 한숨과 함께 과제로 제출한 그림에 덧칠로 수정을 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예체능은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미술로 위축될 일이 없는 성인이 되자 색연필 한번 잡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형태를 그럴듯하게 잡아 스케치를 한다거나 세밀하게 대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안에 숨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통 미술은 아니지만 미술적 요소를 듬뿍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흡사 미술작업 같은 뿌듯함을 안겨주는 강좌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반복이라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배워가면서 작품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여도 될 만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아트테라피 그림명상(젠탱글), 보태니칼아트, 캘리그라피가 그것들이다.
조금은 멍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백화점 전단지를 반으로 접어 백장씩 분류해서 쌓아놓기, 넙적 어묵을 접어 꼬치에 끼기, 김에 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서 굽기, 만두 빚기, 송편 만들기 등. 백화점 전단지 접기나 어묵 끼우기 아르바이트는 손을 놀리는 만큼 결과물이 보여서 다른 사람보다 빨리 해치울 수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음식을 장만할 때마다 얌전히 앉아서 백 장의 김을 끝까지 굽고, 만두와 송편도 예쁘게 잘 만들었다. 50여 명의 대식구가 한데 모여 명절을 지내던 때라 음식의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손을 빌렸을지도 모르지만, 딸손주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던 할아버지도 그날만큼은 삐사감을 반겼다. 이름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명절의 설레는 분위기가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여자 어른들 틈에서 꼬박 반나절을 붙박이처럼 노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의 반복성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젠탱글, 보태니칼아트, 캘리그라피도 비교적 반복적인 패턴, 색상, 서체를 추가해 나가는 작업이다. 물론 다른 노력이 추가되겠지만 엉덩이 힘으로 완성되는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삐사감에겐 지루한 반복의 끝에 완성되는 소소한 작품들이 나이를 꽤나 먹고 다시 만난 미술의 세계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회색과 파란색은 좋아하던 색의 조합이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상하의를 디자인해서 색까지 칠해보는, 일명 패션디자인을 해보는 실습시간이 있었다. 모든 미술의 과제가 난제였던 삐사감에겐 또 한 번의 난데없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당시 좋아했던 파란색과 회색을 선택해서 파스텔로 색까지 칠해놓고 나름 만족했다. 하지만 디자인 전공을 지망했던 친구는 그림을 보고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이었고 선생님도 역시나 삐(B)정도의 각박한 점수를 주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기념품가게에 들러 마그네틱을 둘러보는데 회색과 파란색의 조합으로 완성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의 조작일지 모르나 삐사감은 자신의 당시 그린 회색과 파란색의 조합도 바로 이런 배색이었다며 반가워했다.
이날 본 두 가지 전시 중 하나는 마음껏 즐길 수 있었지만 하나는 다음생에나 이해할까 싶은 것이었다. 지금 생에 즐거운 것을 자랑스럽게 즐기면 될 것을 내 취향이 점수화되고 거부당했다는 느낌에 미술 혹은 예술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늦게나마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영화 <위플래쉬>는 줄곧 폭력적인 장면이 이어지고 폭력에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어 보는 내내 불편했다. 삐사감에게는 선생이 휘두르는 권위적인 폭력과 그것에 사로잡혀 순응하는 학생의 모습만이 부각되었고, 당시 올 가을 진정한 스윙을 극장에서 만나라는 광고문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강압과 위계에 짓눌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가해자의 의도에 가까워지기 위해 폭주하는 모습이 숨 가쁘게 느껴질 뿐. 어리숙하고 두려움이 가득했던 중학생 시절의 미술시간이 떠오를 뿐. 그리고 여전히 이런 교수법이 찬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