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방구석 강좌의 시작을 알린 것은 그 이름도 멋들어진 <아트테라피 그림명상>이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기관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원격강의로 변모했다. 처음 시작할 때 불협화음은 비교적 빨리 해소되고 원래부터 비대면이었던 것처럼 모든 강좌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이동시간의 이유로 포기했던 원거리 강좌도 수강의 기회가 생겨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장점도 생겼다. 더불어 타인과의 대면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우울해하거나 위기로 느끼기 않도록 궁리한 강좌들도 눈에 띄었다. 흔히 젠탱글이라고 불리는 이 강좌도 그림명상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 손을 움직여서 비교적 쉬운 패턴을 반복하는 작업은 호흡명상을 할 때처럼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가 분명 있었다.
강의를 듣거나 대화를 하는 도중에 사람들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와 같은 도형이나 숫자, 문자 등을 반복적으로 그리곤 한다. 그렇게 시작한 낙서가 종이 한 면을 다 채우고 나면 단순한 낙서가 아닌, 그림인 듯 아닌듯한 뭔가가 완성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젠탱글은 이처럼 평소에 우리가 하는 낙서보다는 조금 발전한 형태의 패턴을 가지고 크기를 변주하거나 위치를 바뀌어가며 종이, 패브릭 등을 채워간다. 일정한 형식도 규칙도 없어서 세상의 존재하는 무수의 패턴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첫 시간에 그린 '패러독스'는 직선만을 이용하여 곡선의 효과를 주는 대표적인 패턴이다. 직선을 이어나갔을 뿐인데 눈앞에 곡선의 모형이 나타나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젠탱글의 무궁무진한 패턴이라면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무한의 패턴이 있는 만큼 무한대로 작품에 이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패턴을 배운 후에 초보자가 가장 많이 시도하는 것은 형체를 그린 후 그 안에 다양한 젠탱클 패턴을 그려 넣어 작품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손, 나무, 해, 달 등을 그리고 안쪽 부분은 세분하여 공동작업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거나, 자신의 이름 주변을 패턴으로 장식하여 본인을 표현하는 일도 가능했다. 가족의 손을 본떠서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맞는 패턴을 채워나가는 작업은, 가족 각자의 개성을 나타내는 패턴을 고르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구상하는 동안 가족 일원을 깊이 탐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빨래하는 손, 공부하는 손, 연주하는 손, 다양한 손의 움직임을 쫒다 보면 가족의 일이 눈에 그려졌다.
젠탱글은 단기간 교육으로 바로 습득이 가능하고,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다양하고 저렴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집단이 모여 분할작업을 통해 유의미한 작업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현장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집단활동으로 도입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미술에 소질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점선면 그리고 면을 색으로 채우는 단순한 작업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결과물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턴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고 매일 새로운 패턴이 생성되기도 한다. 또한 원한다면 본인만의 패턴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므로 창조적인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핀터레스트나 유튜브에는 젠탱글 패턴과 영상 등 상당한 정보가 있어 집안에서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었다. 철저한 방역으로 스스로 외출을 제한했던 동안 매일 10개의 패턴을 연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 커다란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그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연필을 쥐는 일이 드문 요즈음, 손가락에 힘을 넣어 바르게 선을 긋는 일은 쉽지 않다.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똑바로 한 줄로 연결할 때마다 자를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오랜 시간 퇴화된 손근육을 천천히 움직이고 조율해서 점과 점이 만나는 사소한 일을 서두르지 않고 하는 것이 젠탱글의 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굵은 펜과 가는 펜이 양방향에 붙어있는 유성펜만 있다면 집에서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게 방치되어 있던 에코백이나 사은품 파우치에 과감하게 패턴을 그려 넣을 수 있다. 자신의 이니셜도 그려 넣으면 꽤 근사한 하나뿐인 가방을 만들 수 있다. 젠탱글로 그리는 그림은 미술시간에 매번 느꼈던 치욕을 조금이나마 잊게 했다. 대상의 형태를 잡아내는 일이나 색감을 조절하는 능력이 전무해서 곤혹스러웠던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친절하고 쉬운 미술도 있었다면 미포자(미술포기자)로 살지 않고 적은 가능성이라도 찾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