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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은나의것 Jan 07. 2021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 하니?

독일 살이 십여 년째. 아직도 배우지 못한 것. 

번역가의 고질병...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양한 안 좋은 생활 습관으로 인해 작년 가을부터 오른쪽 어깨 부분에 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아직 오십견이 오기에는 젊은것 같은데 슬프게도 통증 때문에 아침잠을 깰 정도로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샤워 후에 속옷하나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불편함은 덤이었다. 그래서 참다 참다 정형외과를 찾았고 의사는 물리치료와 재활운동을 처방해 주었는데 재활운동을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여건이 아직 허락하지 않아 포기하고 물리치료만 받기 시작했다. 한 번 처방전을 써줄 때마다 6회를 받을 수 있는 이 치료는 한국의 물리치료와 비교한다면 이것은 물리치료인가 그냥 살살 주물러 주기인가가 헷갈릴 정도의 강도가 세지 않은 마사지 정도이다. 그래도 작년 11월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 처방전으로 치료를 다니고 있다. 이전에는 두 명의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두 분 다 남성 물리치료사였다. 아무래도 속옷 차림으로 몸을 내맡겨야(?)하는 터라 처음에는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여자 물리 치료사를 찾을걸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두 명의 치료사는 꽤 전문적으로 내 아픈 곳 이곳저곳을 자극해가며 치료해 주었다. 내가 특별히 지정을 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날짜와 병원의 비어 있는 날과 시간에 맞춰 물리치료할 날을 정하는데 12월 마지막 두 번을 다른 여자 물리치료사에게 받게 되었다. 처음 한 번은 다른 남자 물리치료사들이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 팔을 시원하게 돌려가며 치료해 주기에 여자이면서 또 잘하는 분이라면 이왕이면 이 분에게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연휴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12월 말 치료 시에는 이 분의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처음부터 툴툴거리며 무표정으로 시작을 하기에 나 또한 긴장된 마음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가 휴가를 낸 것을 병원 행정 하시는 분이 누락해서 오늘 나오게 된 거라고 했다. 뭐. 휴가가 중한 독일인들이니 화날 법도 하건만. 나는 뭐 죄가 없지 않나. 그래서 냉랭한 분위기 속에 주눅 들어 20분 간의 물리치료를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사실 앞으로 남아 있는 3번의 약속도 이 여자에게 잡아 놓은 상태여서 그 날의 유쾌하지 않은 20분이 이 여자 물리치료사에게 일어난 그 날의 불운을 함께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넘어갈 수 있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믿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대망의 새해 첫 치료 날. Fr.HübXX는 내가 또다시 찝찝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오게 하였다. 물리치료사가 카운터에서 이야기를 하느라 치료 시작이 조금 늦어졌다. 어찌하나 보려고 끝나는 시간을 보니 20분이 1분여 남은 상태에서 끝이 났다. 끝나는 시간을 칼처럼 정확히 정해 놓았다면 시작하는 시간도 칼같이 맞춰야 햐는 것이 맞는데 3분이나 늦게 시작한 치료가 1분 정도 일찍 끝났으니 이 여자는 20분의 치료 중 4분을 스킵한 샘이다. 그 짧은 20분 동안 '친절'과 '불친절' , '치료하고자 하는 마음', '빨리 끝내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 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을 오늘 한 번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나는 사실 남은 두 번의 치료를 다른 물리치료사로 바꿀 요량으로 카운터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냥 내 치료일을 바꾸면 자연히 다른 사람으로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을 바꾸고 "제 치료사는 누구죠?"라고 질문하니 직원분이 "저 여자분이에요. " 하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 왜 혹시 바꾸고 싶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대답했어야 한다. 내 진심을. 그런데.... 자동으로 튀어나온 말 " 아니요. 괜찮아요. " 일 초간 주저하는 나를 느끼기라고 했는지 약간 의심하며 얼마든지 다른 대답을 받아들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쐐기를 박는다." 뭐 치료사가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아요" 하.... 절망. 

왜 말을 못 하니? 이 여자가 싫었다고. 나는 바꾸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이 병원의 구조상 바로 앞에 접이식 가림막 같은 것으로만 막힌 치료실과 이 카운터의 소리는 모두 들릴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치료실로 다시 들어간 여자가 이 대화를 듣고 있을 수 있고 나는 그 상황에서 대놓고 이 치료사가 싫으니 바꾸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인 독일인들. 나의 권리, 내 불편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을 교육하는 독일에서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독일인들은 나 같은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은 아직도 뼛속까지 남아있는 이 배려 아닌 배려가 너무나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데 도통 고쳐지지를 않는다. 새해의 다짐. 조금은 미움받을 용기라든지, 욕먹을 용기라든지. 이런 것들을 체화해보고 싶다. 찝찝한 마음으로 내 몸을 내맡길 자신이 없다. 내일 당장 전화해서 사실대로 말하고 바꾸겠다. 나에게 외친다. 이 바보야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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