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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젠틀우먼 05화

05 개싸움

“부부 사이에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어요.”

by 김은주

“어떻게 봐도 우린 이 아파트에 살 만한 사람들로는 안 보이나 봐.”

“왜요?”

“그렇지 않고서야 단지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 번이나 경비원한테 붙잡혔겠어? 잡상인 같은 걸로 보이나? 아니면 도를 아느냐고 묻고 다니는 사이비 전도사 콤비?”

무원은 어깨를 으쓱하고 내렸다.

경비원들은 두 사람이 여자 리포터와 남자 카메라맨 조합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키 큰 젊은 여자가 형사인데 그 옆의 멀쩡하게 생긴 놈보다 직급이 높다는 걸 알고는 하나같이 주름진 눈두덩을 들썩였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희주를 높게 쳐주는 게 아니라 무원을 한심하게 보는 눈초리였다.

경비원들의 집요한 마크를 뚫고 아파트 1층에 입구에 선 희주와 무원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담당 형사님이시죠? 서울지법 이덕식 판사 살해사건 담당.”

희주는 대꾸하지 않고 여자를 향해 등을 돌렸다. 무원은 이런 상황에서 희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친구가 저 앞 동에 살아서 이쪽을 보고 있다가 두 분이 오시는 걸 보고 바로 나왔죠. 형사님 맞으시죠? 그 정도는 대답해 주실 수 있잖아요.”

여자가 오른쪽 어깨에 멘 큼지막한 쇼퍼백 안에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찢어진 가방 바닥 모서리에서 빨간 불이 반짝이는 걸 보니 카메라는 이미 작동하는 것 같았다.

“아내 분도 용의자인가요? 제 친구 말로는 두 분이 같이 외출을 하거나 같이 다니시는 걸 본 적이 없다던데, 평소 부부 사이가 나빴나 봐요?”

희주는 떠들어 대는 여자를 무시하고 세대 호출 패드에 다가갔다. 무원은 여자가 보지 못하게 패드를 누르는 희주를 등으로 가리고 섰다. 잠시 후, 공동 현관이 열렸다. 여자가 무원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데일리뉴스 김은정 기자예요. 잘 기억 안 나는 이름이죠? 학창 시절에 한 반에 꼭 두어 명은 있는 흔해 빠진 이름이죠?”

그 말에 희주가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자, 여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쇼퍼백을 희주 쪽으로 돌렸다.

“보복 범죄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던데. 이덕식 판사 판결에 여론이 꽤 강성이었던 것 아시죠? 혹시 과거 판결에 앙심을 품고 복수한 게 아닌지 벌써 소설들을 써 대고 있어요. 중국 격언 중에 ‘삼십년불보구 불시남자한’이라고, 30년 전의 복수라도 하지 않으면 사나이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어떠세요? 혹시 원한에 의한 보복 범죄일까요? 아, 경찰이 개인적인 복수를 옹호한다는 의사 표현을 하면 곤란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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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끝까지 여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점잖게 대응을 해도 일단 말을 하는 순간 저 여자 입맛대로 가공되어 쓰레기장 같은 인터넷 뉴스판에 뜰 것이다. 여자는 계속 떠들었다.

“제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판사님께서 여자 나오는 술자리를 유독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아시겠지만, 원래 많이 배운 사람들이 뒤로는 지저분한 유흥을 즐기잖아요.”

희주는 공동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무원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끝까지 주시했다. 여자는 결국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 두 사람이 문 안으로 사라지자 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껐다.

“떼어 내는 솜씨가 능숙하네.”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거죠. 전 그보다.”

“그보다 뭐?”

“혹시라도 선배가 여자를 때릴까 봐 긴장했어요.”


주말 동안 남편이 살해당한 60대 초반 아내의 자태는 꼿꼿했다. 여자는 오전 8시에 형사를 맞이하면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저런 여자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희주는 궁금했다. 그대로 외출을 해도 전혀 손색없을 고상한 차림과 그에 버금가는 당당한 태도. 흰 머리를 감춰 주는 적절한 컬러의 염색까지. 일생을 법조인의 아내로 살아온 여자라고 해도 남편이 살해당했다면 좀 더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른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상관없어요. 남편은 5시면 일어났죠. 저도 그렇게 30년을 그렇게 살았고요.”

여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투리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준어. 서울, 어쩌면 지금 이 집이 있는 지역구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판사의 아내는 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주에 대해 조금 흥미를 느낀 눈치였다.

“실례가 아니라면 경위님 나이가 궁금하네요. 제 딸과 비슷한 것 같은데.”

“서른셋입니다.”

“그렇군요. 첫째가 이제 서른이죠. 전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서른에 교사 생활을 관뒀어요. 첫 아이가 늦게 들어선 덕에 사회생활을 조금이나 길게 했죠. 그때는 법조인의 아내가 밖으로 도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커피 드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주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고급임을 알아보게 하는 가구들이 적절하게 거실을 채우고 있다. 거기에 꽃과 나비를 그린 유화 몇 점, 삼 남매와 부부가 같이 찍은 가족가진, 집안에 감도는 은은한 향기. 희주는 이 집의 모든 걸 만든 건 이 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죽은 남자는 이 집에 뭘 기여했을까.

여자가 커피를 준비하러 주방에 간 사이 조그마한 개가 희주와 무원에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와도 짖지 않는 녀석이라. 일생을 편안한 이 집에서 간식 먹고 낮잠 자며 그 무엇도 지킬 필요도 경계할 필요도 없이 살아온 녀석답다. 시추는 희주가 내민 손등을 킁킁대더니 안아 올려 달라는 듯 크고 둥그런 눈으로 희주를 응시했다. 소파에 올려 주자 시추는 희주 무릎에 앉아 큰 눈을 감았다. 여자가 쟁반에 커피 세 잔을 받쳐 들고 왔다.

“농담처럼 이 집에서 가족은 저 녀석뿐이라고 말했는데, 아이들은 전부 출가했고 남편도 죽었으니 정말로 가족이라고는 저 녀석뿐이네요.”

“남편 분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포함인가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여자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금색의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덕식의 손에는 없었던 결혼반지. 희주도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이 참 좋았다.

“아까도 같은 질문을 받고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도박을 한다거나 주식에 손을 대지도 않았어요. 애초에 그런 건 좀 못 미더워하는 편이라.”

“지인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곤란한 전화를 받는 눈치라거나.”

“판사들은 자신과 남들을 철저히 구분해요. 친구 사귀는 걸 사위, 며느리 들이는 것만큼 까다롭게 구는 사람들이죠, 남편은 그렇게 고르고 고른 위인들하고만 어울렸어요.”

“혹시 협박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남편은 항상 자신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괘씸해했어요.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서 자기가 판결한 건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화를 냈죠. 그중에서도 판사 딸이 몹쓸 일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댓글에 가장 크게 화를 냈어요.”

그 일은 그녀한테도 충격이었던 듯 평온하던 표정이 흔들렸다.

“의심이 늘었어요. 만나는 사람들을 죄다 의심했죠. 앞에서는 판사라고 치켜세우지만 사실은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고 자길 무시하는 건 아닌지, 우리 딸이 정말로 그런 일을 당하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집착적으로 자기 판결에 대한 기사를 읽었어요. 말려도 듣지 않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요. 10년 전쯤엔가 법원에서 나오던 길에 달걀을 맞았거든요. 하필이면 가슴팍에 제대로 맞아서 양복 앞부분이 아주 엉망이 된 채로 집에 왔어요.”

이덕식은 과거 자신의 판결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마치 지금 그런 상황이 일어난 것처럼 반응했던 것 같다. 감정의 폭풍이 지나가면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통 술, 이성, 약물에 의존한다. 이덕식은 어디서 위로를 구했을까.

“혹시 남편 분께서 우울증을 앓으셨나요?”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그럴지도 몰라요. 별일 아닌데도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기분을 맞춰주기 점점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트라우마 삭제술을 받으셨나요?”

“이미 아시는군요. 그건 기록에도 남지 않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는 말에 남편은 수술을 결정했어요. 이해가 안 되시죠? 판사가 감정 하나 컨트롤을 못했다는 게.”

“아뇨.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도 어떤 사건 때문에 머리가 좀 이상해져서 차도 못 타고 엘리베이터도 못 탑니다. 항상 상비약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요. 사모님을 뵈러 올 때도 22층까지 걸어 올라왔습니다.”

여자는 희주의 말에 놀라지 않았지만, 무원은 움찔했다.

“사람은 약한 존재죠. 남편도 다 늙어서 무슨 의처증 환자처럼 행동했어요. 젊어서는 저한테 관심도 없던 사람이. 제가 외출을 하면 누굴 만나러 가냐고 캐물었어요. 남편도 처음에는 상담만 받아 보겠다고 하고 갔어요. 결국 수술을 받더군요. 그리고 좋아졌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보다 더 나빠졌지요.”

“누구 소개로 갔는지 아시나요?”

“최준석이라고 업무적으로 만난 사람이라고 했어요.”

익숙한 이름이 등장하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좋은 신호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여자 문제에 대해 물어보려는 거군요.”

“네.”

“저도 호텔에서 죽었다기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모르지만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남편을 찾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디서 만나서 뭘 했을지 뻔해요. 지금은 전부 불법이지만. 사실 그때도 그건 불법이었죠. 그래도 다들 그렇게 했지요.”

“부부 사이에 문제는 없으셨나요?”

“없었어요.”

답변이 너무 빠르게 나왔다.

“남편 분께서 혼자 호텔을 방문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바람이라도 피웠다는 건가요?”

“아뇨. 남편을 가장 잘 아는 건 아내니까 여쭤보는 겁니다.”

“경위님은 미혼인가요?”

“한 번 갔다 왔습니다.”

“얼마나 살았나요?”

“1년 정도.”

“그렇군요. 시작하기도 전에 끝냈군요.”

“그런 셈이죠.”

“부부 사이에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동기를 이해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이해보다는 포기에 가깝죠.”

“이제 좀 말이 통하는 것 같네요.”

무원은 여자들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애초에 두 여자는 무원이 없다는 듯 대화 중이었다.

희주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있던 시추가 무원의 무릎으로 이동했다. 무원은 시추의 느긋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여자는 일어나서 거실 장식장 맨 밑의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명함 2개를 집어내고 다시 상자를 서랍에 넣고 닫았다.

“그이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무장 연락처에요. 남편은 판사에서 물러난 다음에 고향에 내려가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어요. 하지만 일이 없어 그마저 접었죠.”

여자는 희주에게 사무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이건 남편에게 빅을 소개한 최준석이라는 사람 명함이에요.”

희주는 명함 2장을 전부 챙겼다.

아까는 없었던 피로한 기색이 여자의 눈가에 역력했다. 희주는 문득 여자가 혼자 집에 있다는 사실이 걸렸다. 물론 개가 한 마리 있지만 가족사진 속 삼 남매 중 누구도 비통함을 감추고 있는 모친 곁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

무원이 얄팍한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라도 나쁜 생각이 든다거나 자녀분들에게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여기로 연락하시면 도움을 드릴 겁니다. 익명으로 상담이 가능한 기관입니다.”

무원이 내민 것은 각종 범죄,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해바라기 센터’ 안내 책자였다.

여자는 큰 기대는 없다는 듯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말했다.

“남편은 나쁜 기억을 지우고도 죽었어요. 남편은 그것만 해결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전 그게 마음에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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