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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09. 2023

오늘 바라야 하는 건 무엇일까

님_

오늘 바라야 하는 건 무엇일까오늘 바라야 하는 건 무엇일까

님(Nîmes)은 프랑스의 남부 도시다. 그런데 님의 한복판에서 고대 로마를 만난다. 가을이었고 조금 날이 흐렸다. 놀라울 정도로 원형이 남아 있는 님의 원형경기장은 음울한 대기 탓인지 조금 더 비장한 분위기였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허무가 거기 생생하게 있었다. 슬픔도 있었고 영광도 있었을 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것들 안에서 만나는 건 허무였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익숙한 시간이겠지만 스쳐지나오는 이방인에게는 사라진 날들의 자취가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메종카레는 세월의 더께가 말끔히 보수돼 그 옛날 티 없던 시절처럼 들어앉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절친한 벗이자 사위이자 로마 제국의 2인자였던 아그리파가 이 비례미 완벽한 신전을 지었다. 데생을 배울 때 모델이 되는 석고상의 한 사람이기도 한 그 자신도 균형 있는 외모를 가졌던 모양이다. 나중에 이 신전은 그의 아들들에게 봉헌됐다. 아버지가 지은 신전이 아들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물이 소금꽃처럼 피어 있는 메종카레다.


                             


위대한 카이사르의 뒤를 이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직계가 아니라 누나 율리아의 외손자였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기 핏줄을 고집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딸 율리아가 사별하자 그는 잘 살고 있던 아그리파를 이혼시켜 둘을 맺어주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3남2녀가 태어났다. 그중 두 아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입적됐다. 그런데 아그리파가 세상을 떠났다. 아우구스투스는 또 다시 딸을 재혼시켰는데 이번에는 아내 리디아가 데려온 의붓아들 티베리우스가 그 짝이었다. 문제는 이번에도 그가 기혼자였던 데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내는 아그리파의 딸이었다. 꼬일 대로 꼬인 가족 관계 안에서 그들의 강제 결혼은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했던 아들이자 손자인 가이우스와 루키우스가 요절했다. 결국 그의 후계는 재혼한 아내 리디아가 데려온 의붓아들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쳤어도 신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얻었던 손자들, 그 ‘젊은 왕자들’이 죽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그들의 것이었던 이들이 청춘의 어느 날 꽃처럼 졌다. 남은 이들의 상실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욕망을 이룰 수 없게 된 좌절이었을까.



                                아름다운 날이 흐른다. 그날들도 오늘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오늘, 지고 있는 잎들이 꽃처럼 여운을 남긴다.

                    살아 있다는 것, 여기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전율이 흐른다.

                        내 안에서 퍼지는 것, 그것을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그 행복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 우리는 저마다 진주를 품은 조개를 만난다.

                                          내 안에서 진주가 영글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원로원이 그에게 준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처럼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였다. 이후 황제들은 제국 곳곳에서 신적 존재로 숭배 받았다. 그들은 로마 신화의 신처럼 드높여졌다. 세상의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그가,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걸 보면, 지옥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게 분명하다.    

  

                                       

                  "자신의 마음을 보다 큰 어떤 것에 둔 사람에게는                                                    

                    다른 모든 것들이 작은 것처럼 보인다."



메종카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 놀라운 균형의 외관만이 환하게 복원되었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 핏줄에 대한, 권력에 대한, 그 본능과도 같은 욕망의 허무가 저 말끔한 사원에 비친다.      


가난하다고 슬퍼하지 마라. 가장 가난하고 가장 가여운 건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자의 몫이다. 메종카레의 저 순백의 벽은 순백의 마음을 요구한다. 가난한 이들의 마음. 가난하다는 걸 알고 가난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이들. 가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잃지 않는 마음.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고마워하며 같이 먹고 같이 웃으며 잠자리에 드는 이는 행복하다. 그는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하루를 기쁘고 만족스럽게 사는 것보다 더한 부유가, 풍요가 있을까. 2천 년도 전부터 여기 있었던 이 아름다운 신전은 마음을 보게 한다. 거울처럼 하얗게 비춘다. 사람들은 멋진 기둥 아래 앉아 시간을 보내고 나는 거울 속이듯 그들을 바라본다.



로마인들의 삶이 있었던 님. 잠시 옛 로마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돌아서니 길 건너 바오로 성당 주변에 드레스와 정장 차림의 선남선녀들이 보인다.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카르페디엠. 행복한 날, 행복하게 즐겨라.




바오로 성당 파사드를 올려다보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옹위하고 있는 네 복음사가, 마태오와 마르코와 루카, 그리고 요한. 그들은 에제키엘서에서 묘사한 것처럼 각자의 상징과 함께 있다. 그야말로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가톨릭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가톨릭교회의 그림이나 조각들은 어디서든 보편적인 의미로 존재한다. 미사 전례 역시 세계 어디서나 다 똑같다. 말만 다를 뿐이어서 차례대로 기억해 따라가다 보면 별로 낯설지 않다. 고대 로마의 한순간을 보며 돌아선 님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사가들, 열두 제자들을 만난다. 이런 일상이 새삼 귀하다.




메종카레는 참 단아하게도 거기 있었다. 거기 앉아 있던 사내는 아직 거기 앉아 있을까? 그가 앉아 있던 장식용 기둥 바로 아래로 라틴어가 남아 있었다. 이제는 사어가 된 이 오래된 언어, 우리에게는 회자되는 명구들로만 전해지는 이 언어가 이들의 도시에는 여전히 존재한다. 라틴어가 살아있던 시간의 기억도 이어진다. 그들의 광장과 정원에 있는 악어 역시 고대 로마의 자취다. 로마는 참 찬란하게도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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