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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Oct 09. 2023

비 내리는 아를, 우울하게 고흐

비 내리는 아를, 우울하게 고흐

비가 계속 내렸다. 좀 간절하게 날이 개이기를 바랐다. 가벼워지고 싶었다. 아를에서는 우울을 벗어버린 상태여야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우울한 얼굴로 아를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는 종일 내리고 낙엽은 바람에 몰려다니고 멜랑콜리가 가랑비처럼 젖어들고 있었다.    




아를에서는 고흐를 얘기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고흐를 좋아하는 걸까?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건지 그의 삶을 연민하는 건지 이제야 묻는다. 아를은 곳곳에 고흐를 표시해두었다. 친절이기도 하고 홍보이기도 하겠지.  


그가 살았던 집을 찾아갈 때 좀 우울해졌다. 안 그러기가 어려웠다. 비는 내리는데 무채색 돌집에 창이, 안 보였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게 창을 안 낸 것인가 창이 없는 집에 살아서 마음이 더 병든 것인가. 이제 그 집은 문화센터 같은 곳이 됐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여전히 고흐가 머물던 병원 같았다. 방문자들의 느낌도 멜랑콜리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바로 그곳에 어울렸다. 마치 온 마음으로 ‘지금 여기’ 머무는 순례자 같았다.       


‘성지’는 영원으로 들어서게 하는 땅. 어디든지, 영혼을, 정신을 고양시켜 그 주파수를 영원에 맞추는 땅.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를의 이 정원 역시 성지가 될 것이다. 그는 시공을 넘어 어딘가에 닿는다. 종교적 공간이나 그 의미만이 우리를 영원에 닿게 하는 건 아니다. 음악과 그림도, 어떤 풍경도 분명히 그런 순간을 허락한다. 그런 한에서 그 수단들에 거룩함이 배어있다.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 참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행하고 많이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는 일은 잘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말, 이런 생각은 결국 나를 울게 한다. 거의 단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는 끔찍한 현실, 몸을 망가뜨리는 정신의 문제, 그 상황에서도 그는 사랑을 얘기한다. 터무니없지 않은가. 그는 만신창이가 된 삶에서도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가장 많이 아프면서도 뭔가 해줄 일이 없을까, 나눠줄 게 없을까 돌아본다. 상처 입은 그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 순간 그는 그리스도를 닮았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끝없는 연민이 그의 존재에 배어 있었다.      


그를 좋아하느냐고? 그로 인해 …… 울고 있다. 



그를 생각하면, 밥 한 끼 배불리 먹기도 어려웠을 그를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도시들로 흘러들고 그의 작품들이 최고가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도대체 무슨 인생이 이 모양인가 싶은 모순이 압생트처럼 마음속으로 독하게 퍼진다.           

그래서 아를에서 고흐를 생각할 때 비 내리는 우울 속에서도 애써 꽃을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잘 살고 싶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꽃 같은 기쁨이지 못하다는 것 말고는 무엇도 슬픔의 이유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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